'그 겨울' 조인성 '야왕' 권상우는 왜 거짓인생을 사나?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3.26 07: 28

[유진모의 테마토크] SBS 월화드라마 '야왕'의 권상우와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조인성은 극중에서 주변사람들을 속여가며 거짓인생을 살아왔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오수(조인성)는 죽은 동명의 PL그룹 외아들 노릇을 했다. 그는 갓난아기 때 어머니로부터 외딴 나무 아래 버려졌고 그래서 나무란 뜻의 이름을 얻었다. 보육원에서 자라다 박진성(김범)의 집으로 입양돼 박진성과 친형제와 다름 없이 자라온 그는 특별히 배운 것도 없이 박진성과 콤비를 이뤄 도박판을 전전하며 갬블러 혹은 사기꾼으로 살아왔다.
그는 타고난 외모로 여자를 버스 갈아타듯 바꿔가며 그렇게 주색에 빠져 별다른 목적의식도 희망도 없이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다가 그는 한 여자에게 된통 당하게 된다. 여배우 진소라(서효림)다. 오수에게 버림받은 진소라는 자신의 스폰서인 김사장의 돈 70억 원을 빼돌린 뒤 그 죄를 오수에게 뒤집어씌운다. 분노한 김사장은 오수와 연적의 악연으로 맺어진 깡패 조무철(김태우)에게 채권 회수를 지시하고 조무철은 100일의 시간을 주고 만약 그 기한까지 못 갚을 경우 오수의 생명을 접수하겠다고 선언한다.
오수는 박진성과 더불어 동명의 후배 오수와 셋이서 살아왔는데 그 즈음 동생 오수가 죽고 형 오수는 동생 오수가 국내 굴지의 재벌 PL그룹의 외동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동생 오수의 아버지는 죽고 오수의 유일한 혈육 오영(송혜교)에게 전 재산을 물려줬다는 정보까지 캐낸 오수는 죽은 오수 행세를 하기로 작정하고 오영의 집에 들어간다.
그가 죽은 오수로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 본의 아니게 지게 된 빚 78억원을 사기쳐서 받아내기 위해서다.
하류(권상우)는 어릴 때 보육원에서 인연을 맺은 주다해(수애)를 20대 초반에 다시 만나 그녀를 수렁에서 구해준다. 통장을 털어 주다해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준 뒤 오갈 데 없는 주다해를 자신이 살고 있는 홍안심(이일화) 아주머니의 집에 데려온 뒤 대학에 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호스트바에 나가며 학비를 마련해준다. 게가다 하류는 주다해가 어릴 적 자신을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죽이자 산에 암매장해 그녀의 범죄를 감춰준다.
사실혼 관계로 살며 딸 은별까지 낳은 뒤 주다해는 국내 굴지의 재벌 백학그룹에 입사한다. 입사시험 날 주다해는 그룹 백창학(이덕화) 회장의 외동아들 백도훈(정윤호)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후 한 오피스텔에 살며 가까워진다.
이때부터 주다해는 더러운 야욕을 키워간다. 백도훈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자신도 따라 가며 하류에게 유학비를 요구한다. 그가 다시 호스트바에 나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결국 주다해는 백도훈을 유혹하는데 성공하고 보란듯이 금의환향해 백학그룹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하류는 주다해 의붓아버지 사체 암매장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은별을 잘 키우겠다던 주다해는 부주의로 은별의 죽음을 맞는다.
감옥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하류는 그때부터 복수를 꿈꿔 백도훈의 누나로 살지만 사실은 엄마인 백도경(김성령)을 유혹해 주다해에게 복수할 발판을 삼고자 칼을 간다. 비슷한 시기 어렸을 때 헤어진 쌍둥이 형 차재웅 변호사가 하류를 찾아온다. 하지만 차재웅은 하류를 눈엣가시로 여긴 주다해의 사주를 받은 의붓오빠 주양헌(이재윤)의 손에 의해 죽는다.
실질적으로 주다해 때문에 딸과 형을 잃은 하류의 복수심은 더욱 커져 가고 그는 보다 쉽고 빠른 복수를 위해 차재웅 변호사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백도경의 마음을 끌어내는데도 성공하고 백도훈과도 친해져 주다해를 압박해갔으며 결국 그녀를 백학그룹에서 내쫓기게 만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백도훈이 죽었고 자신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정체가 들키기는 오수도 마찬가지. 자신을 견제하는 오영의 측근 왕비서(배종옥)와 장변호사(김규철)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정체가 드러났으며, 오영은 진소라의 폭로로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오영은 외딴 별장으로 오수와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자신이 오수의 정체를 알고 있음을 밝힌다.
오수는 살아남고자 거짓인생을 살고, 하류는 복수하고자 역시 남의 인생을 빌려왔다. 하지만 그들의 위장인생은 그리 행복하지도 성공적이지도 못했다.
오수는 결국 자신보다 더 불쌍한 오영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오영은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오빠가 집을 떠난 뒤 줄곧 트라우마를 쌓으며 살아왔다. 아버지는 왕비서와 바람나 이혼한 뒤 금세 세상을 떠났고 오영의 곁에는 오로지 전재산을 물려받은 자신을 물어뜯기 위한 사람들만 존재했다.
그녀의 최측근으로서 키워주고 보살펴준 왕비서는 정작 아버지의 위독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숨겨 죽게끔 만들었으며 자신의 병마저 방치해 눈이 멀게 만든 더러운 욕망의 소유자다. 겉으로는 엄마와 다름 없이 자신을 돌봐왔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추악했던 것. 게다가 회사 주주들도 틈만 나면 오영을 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혈안이 돼있다. 눈이 멀어 돈을 쓸 수도, 쓰는 재미를 느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방이 적이니 외롭기 그지 없다. 게다가 어려서 헤어진 엄마와 오빠와의 추억이 큰 상처로 켜켜이 쌓여 추억을 먹고 사는 것마저도 고통일 뿐이다.
그런 그녀가 오빠랍시고 마음을 열었는데 알고보니 돈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접근한 가짜오빠였다.
그런데 아프기로 치자면 정작 오수의 통증이 더 크다. 그는 19살 때 만난 첫사랑 희주를 많이 사랑했다. 친한 형이었던 조무철이 희주를 사랑했지만 희주는 오수를 선택했다. 그런데 희주가 아이를 가졌다. 오수는 자신같은 아이가 다시는 태어나면 안 된다며 희주를 떠났고 희주는 그런 오수를 쫓아가다 사고로 죽었다.
그후 오수는 사랑에 마음을 닫고 살아왔다. 이 세상에 '사랑 따윈 없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그는 희생도 배려도 모르고 선행과는 거리가 먼 악행으로 양아치 생활을 해왔고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는 가릴 게 없는 게 삶의 신조였다.
그런데 오영을 만나고 달라졌다. 그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종양처럼 생겨났다. 78억 원을 사기쳐 살고자 오영에게 접근했던 그는 어느덧 78억 원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졌고 이 가여운 여인 오영이 살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왜? 그녀를 사랑하니까.
하류도 두 여자를 울렸다. 백도경과 차재웅의 약혼자였던 석수정(고준희)이다. 그는 백도경과 결혼하기 위해 자신을 차재웅으로 알고 있는 석수정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석수정은 그렇게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준 차재웅의 갑작스런 이별선언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아팠다. 그녀는 식만 안 올렸을 뿐 오래전부터 차재웅의 집을 드나들며 차재웅의 아버지 차심봉(고인범)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돌봤으며 차재웅의 집안일을 이미 며느리가 된 것처럼 일일이 챙겨왔다.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사랑하는 이의 변심이었다. 하늘처럼 믿고 땅처럼 의지하며 살아온 차재웅의 변심은 그녀에게서 삶의 의미를 앗아갔다.
그런데 더 청천벽력같은 사실이 다가왔다. 알고 보니 차재웅은 하류였고 차재웅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살아서 변심했다면 원망이라도 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그 어떤 불평불만도 원천봉쇄하며 그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차재웅을 원망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수도 없었다. 당연히 하류가 미워야 하겠지만 미워할 수도 없었다. 왜냐면 그는 차재웅의 유일한 혈육이었고 그 나름대로 차재웅 역할을 해야 하는 절박하고 가슴 쓰린 사연이 있었으므로.
한 여인으로서 볼 때 불쌍하기로 치자면 백도경이 석수정 이상이다. 그녀는 틴에이저 시절 풋사랑의 잘못된 판단으로 백도훈을 임신했고 그래서 한창 잘 나가던 승마선수를 은퇴해야 했다. 그리고 몰래 낳은 백도훈을 아들이 아닌 아버지의 아들 즉 남동생으로 입적시키고 이 사실을 숨긴 채 살아야 했다.
그녀의 행복은 주다해의 등장과 하류의 복수극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망가졌고 삶은 피폐해졌다. 사랑하는 아들을 주다해로 인해 잃어야 했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사랑의 감정을 이용당해야 했다.
그녀는 첫사랑의 시련 이후 사랑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오로지 아들 도훈을 훌륭하게 키우는 일과 아버지를 도와 백학그룹을 건실하게 다지는 것 외에 그녀의 가치관이나 관심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젊고 잘 생긴 변호사 차재웅이 다가왔다. 그리고 주책스럽게도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스멀스멀 키우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의도적인 접근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설상가상으로 겹친 이 충격과 고통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최악의 감정의 몰락이었다.
선인들과 교과서는 착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듯 많은 캐릭터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인간세상은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곧이 곧대로 정석대로 남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며 학교에서 배운대로 살아가기에는 세상살이가 매우 척박하고 지저분하다.
'야왕'에서 석수정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 아버지 석태일(정호빈)이 거액의 뇌물을 받은데 대해 실망스럽다고 비난하자 석태일은 '정치란 게 그런 것. 진흙밭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변론한다. 정치만 그럴까?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는 그럼 청렴할까?
오수와 하류는 그래서 거짓인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살아남기 위해서.
작가가 만든 오수와 하류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류가 만약 복수심을 키우지 않았다면, 그래서 차재웅이 안 됐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하류는 고작 고졸 학력에 특별한 기술도 없이 말에 대한 지식만 조금 갖췄을 뿐이다. 그가 주다해의 배신에 슬퍼하고 낙담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그는 출소 후 홍안심의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서비스를 했거나 말과 관련된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복수심을 키움으로써 인생이 달라졌다. 감옥 안에서 공부해 대학을 졸업했으며 하루 아침에 백학 그룹 고문변호사가 돼 상류사회에 편입됐다. 그의 복수심은 그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켜줬다. 이것은 세상사 모든 일에 대해 포기하지 말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서 목적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라는 교훈이다. 하지만 하류의 차재웅 행세는 분명 변호사법 위반이다. 결국 하류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데 작가는 이걸 간과했다. 그는 더 나아가 특검 팀의 수장이 돼 영부인이 된 주다해를 잡아들이기 위해 헌정사상 최초로 청와대를 압수수색한다. 이건 더 웃기다.
그에 반해 오수는 확실하게 선의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는 희주와의 첫사랑 실패 이후 '사랑 따윈 필요 없다'며 사랑을 거부하고 살아온 정서가 메마른 인물이다. 그에게 여자란 그저 하룻밤의 상대일 뿐 진지함은 없었다. 그래서 잘 나가는 배우 진소라마저도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 그가 오영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처음으로 불쌍하다는 연민의 정도 느꼈다. 오로지 희주에게만 미안해할 줄 알았던, 희주의 무덤 앞에서만 울 줄 알았던 오수가 오영 때문에 끊임 없이 오열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78억 원을 오영에게서 뜯어내겠다는 목적도 사라졌다. 오로지 오영의 눈을 뜨게 하고 죽고자 하는 그녀를 살리는 것 외에는 목표가 없다. 따라서 예전에는 어떻게든 살고자 했던 그가 자신을 희생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영이 오수의 정체를 알게 됨으로써 자칫 근친상간의 옆길로 샐 뻔했던 드라마의 중심은 제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오수는 대중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돈의 화신'들이 눈이 벌개서 오로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현실의 척박함에 대해 경고하며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호소한다. 이 드라마의 원제목 '사랑따윈 필요 없어, 여름'의 반어법으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에는 절대적으로 사랑이 필요하다고. 삶의 메타포도, 인생의 클리셰도 사랑이라고.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