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인 로맨틱 코미디 ‘원더풀 라디오’에서 여성 팬들을 홀리더니, 갑자기 호불호가 엇갈리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에서 악에 받친 연기를 펼쳤다. 그러더니 가족애를 내세우는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에 출연해 시청률 30%의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보다.
배우 이정진(35)은 어찌 된 영문인지 잔꾀를 부리는 배우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자신의 연기가 얼마나 주목을 받을지 계산을 하거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 작품을 선택해 한 단계 올라서겠다든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흔히 벌어지는 다른 배우들을 잡아먹는 캐릭터를 하겠다고 발악하지도 않는다.
오롯이 좋은 작품, 대중이 볼 맛이 있는 작품만 선택한다. 때문에 이제 막 높은 시청률의 드라마를 끝낸 그가 향후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가늠되지 않는다. 묵묵히 연기를 하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기 좋아하며, 더 나아가 해외 봉사활동을 여행 가듯 꼬박꼬박 찾아갈 줄 아는 따뜻한 남자 이정진이 그렇다.

이정진은 지난 23일 종영한 ‘백년의 유산’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상처를 딛고 살아가다가 밝고 씩씩한 여인 민채원(유진 분)을 만나 다시 사랑을 하는 남자 이세윤 역을 연기했다. 언제나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고 주변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세윤은 보기만 해도 멋이 넘치는 배우 이정진을 만나 안방극장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따뜻한 인간미에 배려가 넘치는 성격은 실제 이정진과도 닮았다.
“‘백년의 유산’은 잔상이 많이 남는 드라마예요.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서 기분이 좋죠. 오랫동안 촬영을 해서 종영을 했다는 사실이 서운하고 섭섭하죠. 배우들과 제작진이 좋은 호흡이어서 높은 시청률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정진과의 인터뷰를 위해 인적이 많은 카페에 들어서자 그와 사진을 찍겠다고 몰려드는 젊은 여성 팬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 주말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중장년층의 사랑까지 얻었다.
“식당에 가면 주방에 계신 어머님들이 먹고 싶은 것 없느냐고 물어보시고 그러세요. 그동안 작품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어르신들은 저와 같은 젊은 배우들은 잘 모르시잖아요. ‘백년의 유산’ 덕분에 어르신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신기하네요.”

이정진은 멋을 풍기는 세윤 역으로 ‘백년의 유산’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며 종영했지만 언제나처럼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백년의 유산’과 같이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어요.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에 인기에 연연하지는 않아요. 큰 인기를 누리다가 갑자기 추락하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이죠. 인기를 신경 쓰지 않게 됐어요. 제가 10여년 동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죠. 저를 좋게 봐주시면 묵묵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정진은 이번 드라마에서 그룹 S.E.S 출신 배우 유진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함께 연기하면서 친분을 쌓은 유진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유진 씨는 과거 큰 인기를 누린 걸그룹으로 활동했잖아요. 그래서 무대 위 모습이 익숙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연기자로 보여요. 그만큼 본인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죠.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쌓아온 것이 이번 작품에서 빛을 발했던 것 같아요.”
이정진은 현재 박진영이 수장으로 있는 JYP엔터테인먼트에 몸답고 있다. 박진영과의 두터운 친분이 이유가 됐다.
“진영이 형이 정말 드라마를 좋아해요. ‘백년의 유산’ 끝나면 바로 전화가 오더라고요. 연기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 안 해주시지만 모니터는 꼭 해주세요. 종영하는 날에도 전화가 왔더라고요. 미국 가니까 돌아오면 만나자고 하더라고요.(웃음)
이정진은 때마다 해외봉사 활동을 떠난다. 인맥이 넓은 그는 지인들과 힘을 합쳐 어려운 국가에 도서관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벌써 수년째 해외 봉사활동을 하고 국내에서도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지만 그는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지인들에게 함께 해외 여행을 가자고 해요. 봉사를 하러 가자고 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여행을 떠난 후 며칠 동안 봉사를 하는 거죠. 도서관 짓는 일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에요. 비행기 타는 값과 목재비, 인건비 등만 있으면 되니까요. 형편에 따라 가지고 있는 돈에 맞게 도서관을 짓는 거예요. 좋은 일을 함께 하는 것이니까 일하면서 틈틈이 하고 있어요.”
선뜻 하기 어려운 해외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이 거창한 일을 하고 있다는 시선을 경계했다. 그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놀러가는 것”이라는 겸손한 발언. 지인들과 함께 많은 봉사 활동을 하고 있지만 괜히 일반 대중에게 봉사 활동이 어려운 일이라는 벽이 생길까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이정진은 보기만 해도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다. 벌써 30대 중반을 넘겼지만 아직까지 결혼은커녕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요즘 대세인 공개 연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저는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공개해도 상관 없어요. 하지만 일반인이든 연예인이든 여성 분 입장에서는 남자 연예인과 공개적으로 연애를 한다는 게 부담일 수 있어요. 자연스럽게 알려지면 모르겠지만, 공개적으로 연애를 할지 말지는 여자친구의 의사가 중요한 것 같아요.”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몸담았던 ‘백년의 유산’이 종영했다. 현재 그는 또 다른 봉사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변수는 많다.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복귀를 하겠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저는 작품 출연을 결정할 때 전체적인 이야기를 봐요. 제가 어떤 캐릭터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주목을 받지 않는 캐릭터여도 상관 없어요. 이 작품이 어떤 재미가 있는 작품인지 어떤 감동을 안기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선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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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