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지상주의 MBC, 대학가요제를 버리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7.03 15: 44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달 16일 252경기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최소 경기만의 최다 관객 동원을 기록할 정도로 전 국민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야구는 그러나 사실 그닥 건전하지 못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1982년 시작된 프로야구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국민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다른 곳으로 배출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독재정권의 그릇된 의도와는 상관 없이 프로야구는 한국의 야구를 발전시켜 WBC나 올림픽에서 야구의 종주국과 선진국들을 물리치고 한국이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도록 하는가 하면 박찬호에 이어 류현진 추신수 등이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하도록 만드는 발판을 마련해준 게 사실이다. 게다가 출범 초기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물론 전국의 지역이기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하고자 했던 의도 역시 사라지고 오히려 영호남의 오랜 장벽이 무너지고 전국이 야구로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기까지 했다.

1977년 시작된 국내 최초의 대학생 가수데뷔 오디션 프로그램 MBC 대학가요제는 그 성공과 영향으로 같은 방송국 내에서 장소만 야외로 바꾼 MBC 강변가요제를 낳게 하는가 하면 젊은이의가요제 해변가요제 등 유사 가요제를 숱하게 양산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꿋꿋이 지난해까지 명맥을 이어왔지만 MBC 측의 결정에 의해 지난 해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1977년은 박정희 정권 치하였다. 대학가요제 역시 반정권 시위의 선봉에 서는 대학생들의 관심사를 조금이라로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는 당시 정권의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용을 탄생시킨 '국풍 81' 역시 전두환 정권의 불건전한 의도가 잠재된 행사였다는데 이견이 별로 없다.
하지만 젊은이 특히 대학생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대학가요제에 열광함으로써 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흔들리거나 독재정권에 대한 감시의 눈을 늦추지 않았고 대학가요제 문화를 즐기는 가운데 민주화 운동에 열과 성을 다해 오늘날의 민주화를 일궈냈다.
결국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젊은이들은 대학가요제를 나름대로 즐기는 가운데 그들의 바른세상 만들기에 대한 행동을 조금도 서슴지 않았다. 그 가운데 대학가요제는 젊은이들의 활력소였고 가수를 지망하는 대학생들의 등용문으로 훌륭한 순기능을 해왔다.
지금 중고생들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간판'을 딸 요량으로 소위 일류대학에 가고자 머리띠를 졸라맨다. 과거의 중고생 역시 그런 경향이 강했지만 당시 적지 않은 고교생들은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진학에 안간힘을 썼다. 대학가요제 본선에만 오르면 가수 데뷔의 길이 활짝 열리기 때문이었다.
대학가요제는 1회부터 '나 어떡해'의 샌드페블즈라는 스타와 빅히트곡을 낳았다. 그리고 가요계에 밴드열풍을 몰고 왔다. 이전까지 국내 가요계에서 밴드는 비제도권에서의 음악활동 형태였다. 한국전쟁 후 쏟아지는 서양문물 속에서 팝을 받아들이고 주한미군 부대 근처의 클럽에서부터 시작된 밴드가 대도시 나이트클럽 무대로까지 진출하긴 했지만 밴드는 당시 한국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 무대에 서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의 스튜디오 시스템과 프로그램 진행방식과 안 맞았던 것. 그래서 조용필 윤수일 조경수 최헌 함중아 등의 가수들은 밴드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인기를 쌓아 솔로 독집 음반을 취입하고는 솔로로 독립해 제도권인 방송 프로그램으로 진출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가요제 및 유사 가요제를 통해 다수의 밴드가 히트곡을 내자 방송에서도 밴드 음악이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송골매는 그런 흐름의 대표적인 밴드다.
밴드건 솔로건 대학가요제는 전성기에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고 그들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김경호 김동률 노사연 신해철(무한궤도) 임백천 유열 전람회 김동률 심수봉 정석원(015B) 이정석 이영현(빅마마) 높은음자리(김장수) 이범용 한용훈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한 한때 대학가요제와 함께 MBC의 양대 대학생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강변가요제는 이선희와 이상은이라는 수퍼스타도 배출했다. 이래저래 대학가요제는 명실상부한 스타의 등용문이자 가수 지망생의 성균관이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다. 대중문화 컨텐츠 중 유행에 가장 민감한 게 대중가요고 그래서 대학가요제는 유행과 흐름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가요제는 1990년대 댄스뮤직의 창궐로 국내 가요계가 대규모 호황을 누리면서 그 색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당시 댄스그룹이 음반을 냈다 하면 100만장 판매는 누워서 떡먹기란 말이 나돌 정도로 음반시장이 활황세를 보였다. 이는 국내 기획사의 팽창과 발전 그리고 댄스뮤지션들의 질적 양적 확장에 기인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HOT SES 젝스키스 핑클 등의 아이돌 그룹이 요즘 아이돌의 유행을 열었고 다수의 유명 기획사가 안정된 자본과 탄탄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가요시장 발전에 크게 기여하면서 대학가요제의 의미가 퇴색해갔다.
1990년대 음반시장의 활황세에 힘입어 각 음반기획사가 탄탄해지는가 하면 건전한 신생음반사가 대거 등장하면서 가요계가 풍성화되는 기간을 거치면서 2000년대에 접어든 현재 대학가요제는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각 기획사들은 이미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연습생으로 거둬들여 일찍부터 조기교육을 시키고 있으므로 가수지망생들은 대학생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방예담이나 악동뮤지션이 굳이 대학가요제 출전을 위해 대학에 가고자 노력할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각 방송사가 앞다퉈 오디션 프로그램을 론칭함으로써 역시 가수지망생들은 어렵게 대학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오히려 수지처럼 대학을 포기하는 아이돌까지 나올 정도이므로 대학생의 가수등용문이란 행사는 그 정체성이 희미해졌다.
대학가요제가 오랫동안 더이상 스타를 배출해내지 못한 점도 존재의 이유가 무색해진 배경이다. 실력있는 신인들은 이미 대형기획사를 통해 10대 때 데뷔하므로 대학생 중에는 더이상 잠재된 예비스타가 존재하지 않는다. 실력파들은 대학생이 되기 전에 이미 유명 기획사에 모두 몸을 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학가요제는 프로페셔널이 아닌, 취미로 음악을 즐기는 학생들의 아마추어 수준의 축제에 머무를 수 밖에 없고 그렇다보니 대중이 이 오디션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된 것이다.
MBC 측은 대학가요제의 폐지 이유에 대해 '더 이상 스타가 배출되지 않고 시청자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주최 측의 변명에 대해 토달 생각은 없다. 더구나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의 원칙에 따라 돈 안 되는 행사를 주최 측이 더이상 열지 않겠다는데 딴지를 걸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MBC는 SBS가 아니라 공영방송이다.
MBC의 대주주는 방송문화진흥회다. 1988년 12월 방송문화진흥회법에 의해 설립된 방송문화진흥회는 MBC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대주주다. 즉 MBC는 국민의 세금으로 세워진 공영방송사란 얘기다. 방송문화진흥회 홈페이지 인사말에는 분명히 MBC를 '국민의 재산'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MBC는 민영방송처럼 '돈되는 방송'만을 추구할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한 방송'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대학가요제가 돈이 안 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불가항력의 진리다. 현재 대학생들은 가수가 되고자 한눈 팔 여력이 없고 그렇게 뜬구름 잡는 허황된 꿈에 자신의 청춘을 희생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현실은 용돈을 벌고 학비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알바'에 남는 시간을 투자하느라 쉴 수 없을 만큼 고달프고 졸업 후 번듯한 직장을 잡기 위해 학점을 따고자 눈이 벌개져 있어 취미활동에 눈돌릴 틈도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대학가요제라니 그건 먼 나라의 동화 속 얘기다.
MBC는 대학가요제가 한참 잘 나갈 때 출연자들의 경연곡을 담은 음반 판매로 엄청난 수입을 거둬들였으며 수상자들을 스타로 만들어 방송에 출연시킴으로써 시청률 상승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아무리 공영방송이라지만 정당한 방송으로 시청자와 출전자 모두 즐겁게 만들면서 수입까지 올리는데 그것을 탓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수입이 없을 때다.
현재 대학가요제는 MBC에게 효자가 아니라 애물단지다. 이름만 번듯하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연례행사다. 하지만 대학가요제는 무려 36년의 전통을 이어내려온 우리나라 유일한 대학생의 가수 등용문이자 대학생만의 가요축제다. 그것도 1년에 딱 한 번 있는.
MBC는 대학가요제를 방송사 법인통장을 살찌우는 봉으로만 볼 게 아니라 방송사의 정체성을 고려해 대학가요제의 정통성과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신중하게 판단을 내렸어야 옳았다. KBS는 전혀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국악 프로나 클래식 프로를 꾸준하게 방송하고 있다. 만약 KBS가 국민의 방송이란 본연의 의무를 망각하고 오직 돈벌이에만 눈이 멀었다면 이런 프로그램들은 진작에 폐지해야 했을 것이다.
MBC도 마찬가지다. 대학가요제가 '위대한 탄생'처럼 매 주 방송되는 것도 아니고 1년에 고작 한 번 있을 뿐인 의미있는 행사이자 대학생들의 축제의 장이라는데 중점을 뒀어야 옳았다. 대학가요제는 주최 측의 시각의 변화를 통해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방송 자체의 의미를 충분히 고취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미 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10대의 실력파 가수지망생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대학가요제는 가수등용문의 기능을 다소 축소하더라도 전국 대학생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가운데 스트레스를 풂으로써 이 축제의 값어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제작방향과 프로그램 내부의 형식을 바꾸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했더라면 이 의미있는 서른여섯살의 당당한 장수 프로그램은 100회도 바라볼 수 있었건만 김재철 사장이 떠났음에도 아직도 시청률 지상주의에 눈이 시뻘건 MBC 상위 계층의 장삿속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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