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대한민국 연예계는 정상급 남자 연예인들의 병역면제 사유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서태지는 학력미달과 위천공이라는 병 때문에, 배용준은 낮은 시력 때문에, 그리고 주영훈은 조기흥분증후군이란 병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당사자들 입장에선 억울한 경우도 있겠지만 다수의 대중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지사. 그후에도 이들은 연예계의 병역비리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이름이 들먹여지곤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톱스타 송승헌 장혁 한재석 등이 포함된 연예인의 병역비리가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남자 연예인의 병역기피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사건 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대부분 현역으로 입대해 정상적인 병역의 의무를 마쳤지만 아직도 병역비리 사건이 낙인처럼 찍혀있는 것은 지우기 힘들다.
이번에는 연예병사의 구멍난 군기강, 그리고 일반병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군생활 문제가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군의 사기진작과 대 국민 홍보를 위해 선의적으로 만들어진 연예병사의 관리감독이 소홀하고 이에 따라 이들이 일탈된 행동을 보임으로써 대중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

이번 사건은 기존의 병역비리와는 양상이 또 다르다. 예전의 병역비리는 꼼수를 부려 군복무를 면제받거나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복무하고자 하는 1차원적 범죄행위였다면 연예병사로서의 일탈은 다소 고차원적인 기만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도 연예인의 병역비리가 자주 거론되며 군복무를 안 하는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자 요즘 젊은 연예인들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자는 정공법을 선택하게 됐다. 연예병사를 거부하고 수색대를 선택해 특별한 군생활을 한 강타나, 육군을 피하고 해병대에 자원한 현빈, 그리고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거부하고 현역의 자격을 갖춰 당당하게 정상적인 현역복무를 자청한 옥택연 등은 타의 모범이 될 만한 군인의 자세를 보여 군복무를 바라보는 요즘 젊은 연예인의 달라진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흐름에 교묘하게 편승해 꼼수를 부린 게 연예병사로 드러났다. 겉으로는 당당하게 현역으로 입대해 남들과 똑같이 빡빡한 군생활을 하고 그래서 당당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로 비쳐졌던 연예병사가 사실은 '특혜'를 받으며 민간인에 버금가는 편안한 군생활을 하는 대신 대외적인 이미지는 좋게 쌓아나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고 그래서 남자의 군복무는 백 번, 천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지극히 당연하고 필수적인 의무사항이다. 원칙적인 이론에 근거한다면 대한민국 남자로서 군대에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군에 못 가는 것은 고개를 숙일 만한 수치다. 정상적으로 군에 가는 게 그다지 칭송받을 만한 일이 아닐 만큼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군대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으로 대처하는 연예인들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만큼 거의 모든 남자들이 군에 가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진실이고 그런 만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자 하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적지 않다는 실상이다.
사실 직업군인을 제외한 일반 병사의 경우 군대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서 가는 이는 거의 없다. 마지 못해 간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 태어난 '원죄'로 우리나라 남자는 반드시 군대에 가야 하고 그것을 당연하거나 때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쉽지 않은 국방의 의무가 아름답고 숭고하게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예병사 사건이 다시 한 번 보여줬듯 군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남자와 여자의 시각은 판이하게 다르다.
지난 6일 밤 방송된 SBS '결혼의 여신' 3회에서 송지선(조민수)은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인사 상 불이익을 주는 상무를 찾아가서 "왜 저만 미워하냐"고 항변했다. 이에 상무는 워킹맘들이 일을 잘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그러자 송지선은 "출산 일주일 전까지 회사에 나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면서 업무 성과가 가장 좋은데 도대체 왜 자신이 인사점수가 낮은지를 물었다.
이에 상무는 "군대도 안 갔다 왔지 않나"며 송지선을 공격했고 송지선은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 축구하고 떨어지는 낙엽 보면서 전역일 기다리잖아요. 그런데 왜 군 가산점이 붙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세요"라면서 격하게 반감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조정선이란 여자 작가가 극본을 쓰고 있다.
송지선의 항변이 틀린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 모든 병사들은 전역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며 군인들은 축구를 많이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전술했다시피 대한민국 직업군인을 제외한 병사들은 대부분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군에 들어가는 것이지 흥에 겨워 입대하고 군생활을 행복하게 여기는 게 절대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2년이란 한시적인 군복무 기간이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 한창 젊음을 불태우고 미래를 위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할 나이에 2년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게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그것에 모든 사람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전역일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면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축구를 많이 하는 것은 축구가 좋아서가 아니라 특별하게 여가를 보낼 소재가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즐길 수 있는 축구를 선택한 것이고 축구 속에서 협동심을 쌓고 서로의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들 모두가 축구를 하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다.
만약 대한민국 대다수 여자들의 남자들의 군복무에 대해 이렇게 가볍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심각한 일이고 국방이라는 당당하고 숭고하며 희생적인 임무에 대한 폄훼에 다름 아니다.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연예병사나 병역비리자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면죄부를 발부할 수도 있는 심각한 수준의 왜곡이다.
물론 상무의 송지선에 대한 군복무 거론도 상식 밖의 일이다. 남자와 여자는 태생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해야 할 일도 다를 수 밖에 없고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생리와 출산 등의 '핸디캡'을 지닌 여성에게 국방의 의무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에게 직장에서 최소한의 가산점을 주는 것은 여자들 입장에선 자신과 가족을 지켜준 남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배려는 아닐까? 한창 혈기왕성할 시기의 2년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남자들에게 그 정도 소소한 베풂 정도는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정도 배려는 못해줄 망정 군복무를 그렇게 폄하하고 평가절하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이 나라의 국방의 근간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모든 인간의 뿌리는 엄마다. 아버지도 자식들도 가정을 베이스캠프로 두고 그 속에서 엄마의 가사노동을 자신의 힘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잡생각 없이 군복무에만 열중할 수 있는 근간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엄마고 제대 후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애인 혹은 아내다. 그 '여자'들의 믿음과 성원이 강한 군인을 만드는데 여자들이 남자들의 군대의 값어치를 진지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총구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