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성동일은 잘 꾸민 차림새의 여타 배우들과 달리 평소 입는다는 스포츠 재킷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메이크업도 전혀 하지 않은 ‘쌩얼’로 얼굴 가득 주름이 잡히도록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배우 성동일은 요즘 안 하던 일을 하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미스터 고’(김용화 감도)에서 첫 주연을 맡아 각종 인터뷰에 응하고 무대 인사를 다니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일정을 소화하느라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란다. 조금 있으면 중국에도 날아가 5000여개 상영관에 걸리는 영화를 위해 해외 홍보에도 나설 계획이다. TV에선 MBC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통해 죽어가던 ‘일밤’을 부활시켰다는 대대적인 칭찬을 듣고 있다. ‘빨간 양말’ 성동일에게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 김용화 감독? 무덤만 빼곤 다 따라갈래

‘미스터 고’는 올 여름 흥행 대작으로 일찌감치 점쳐진 가족 영화다.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이 매니저 소녀와 함께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해 슈퍼스타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성동일은 이번 영화에서 돈 밖에 모르는 스포츠에이전트 성충수 역으로 출연한다. 성동일과 김용화 감독이 ‘미녀는 괴로워’(2006), ‘국가대표’(2009)에 이어 세 번째로 의기투합하는 작품이다.
“김용화를 좋아하니까 출연했지. 나는 평소에 무덤만 아니면 김용화 감독이 가는 곳 다 따라간다고 말하곤 하니까. ‘미녀는 괴로워’에서 같이 작업한 뒤 ‘국가대표’에 시나리오도 안 보고 출연을 결정했어. 이번 ‘미스터 고’도 마찬가지고. 평소 내가 돈 돈 하지만 김용화 감독과의 작업에서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거든. 같이 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는 파트너가 바로 김용화야.”
김용화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고 있는 성동일은 김 감독의 작품 속에서 유독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그려지곤 한다. 겉보기에 결코 멋있거나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파에 찌든 어른의 느낌이 지배적이지만 성동일은 그와 같은 역할을 귀신처럼 밉지 않게 표현하며 부족한 인간을 그럼에도 응원하는 김 감독의 작품관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성충수에 대해 돈 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그게 진실인 것 같아. 뭔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건 모든 인간이 다 같은데 그걸 표면에 드러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차이거든. 인간군상은 다양하니까 성충수는 드러내고 또 밀어붙이는 성격인 거지. 어떤 게 더 편하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는 건데 성충수 같은 타입의 경우 성취 결과가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거든. 하고자 하는 데 달려들고 들이대니까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 나 같은 경우도 성충수랑 비슷해.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돌진하는 스타일이거든.”

‘미스터 고’ 속 성충수가 링링을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성동일도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300여 억 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에 사랑해 마지않는 김용화 감독의 작품이고, 성동일 본인에게 역시 이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없었기에 대본을 보고 또 보고 인물을 분석했다. 그가 이것만큼은 놓치지 않고 가겠다고 작심한 대목은 세 가지. 성충수가 프로젝트 성공으로 한껏 고무된 뒤 중국에서 건너온 택배를 건네받는 신과, 링링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만취하는 장면, 이제껏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내 본 적이 없었지만 링링에게만큼은 마음을 털어놓는 신이다.
“애드리브가 많은 게 내 연기였지만 이번에는 철저하게 대본에 맞췄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김용화 감독 지시에 따랐으니까. 기뻐도 티내지 말고 감정 절제하자는 게 김용화의 뜻이었거든. 영화 후반부에 웨이웨이(서교)에게 중국으로 가라고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눈물 연기를 했는데 김용화가 ‘어디 다 큰 어른이 애 앞에서 우냐’고 하는 거야. 이전 ‘미녀는 괴로워’나 ‘국가대표’ 같았으면 맞는 연기인데 이번 ‘미스터 고’에서는 아니었거든. 성충수라는 인물에게는 또 그게 어울리는 행동이고. 드라마를 강하게 하기 위해 성충수를 확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
성동일은 ‘미스터 고’에 대해 아들 준이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단언한다.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준이의 아들에게도 ‘너희 할아버지가 이런 일을 하셨던 분이다’라며 꺼내 보여주고 싶은 게 ‘미스터 고’란다.
“아이들이 봐서 거슬릴만한 부분이 전혀 없거든. 욕이라든가 언어폭력이 전무하고 이야기도 굉장히 재밌지. 생각해봐, 고릴라가 야구를 하고 홈런을 치는 데 어떻게 재미있지 않을 수가 있겠어. 거기다가 그걸 구현한 3D가 또 너무나 생생하잖아. 링링이 홈런을 쳐서 전광판이 깨지는 장면에서 파편이 튀는 게 무섭게 느껴질 정도인데 뭘. 야구공이 터지면서 실밥이나 미세한 먼지들이 화면을 꽉 채우는 장면도 장관이잖아.”
‘미스터 고’는 3D 디지털 캐릭터 링링을 100% 국산 기술로 탄생시켜 한국 영화 기술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3D 안경을 끼고 영화를 볼 때 야구공이 관객석으로 날아올 때면 극장 안에 있는 관객 대다수가 몸을 움찔움찔 할 정도로 실감나는 화면이 스크린을 채운다. 풀(Full) 3D 화면이지만 러닝타임 133분 동안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미스터 고’의 촬영 기술이 얼마만큼 빼어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내 행복의 잣대는 가족이 지난해 보다 더 많이 웃는 것

‘미스터 고’ 홍보를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놓아지는 순간도 있다. 매주 일요일 성동일이 출연 중인 ‘아빠!어디가?’의 큰 인기에 홍보가 저절로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빠!어디가?’에서 성동일의 엄격하면서도 다소 무심한 듯한 교육방식과, 잘 생긴 아들 준이의 의젓한 모습은 프로그램의 인기 견인차 역할을 하는 부분. 성동일을 향해 쏠리는 시선이 만만치 않다. 2013년은 그의 운이 열리는 해일까?
“내 행복의 기준은 내 아내가 지난해보다 예뻐지고 자식들이 좋은 이불을 덮는 거야. 그건 20년 전 무명 시절일 때도 똑같아. 배운데 연기에 대한 칭찬에 기준을 둬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난 그래. 내 연기는 똑같아. 뭐가 다르겠어, 중간에 유학을 갔다 온 것도 아닌데(웃음). 술 먹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랑 세 자식들이 한 방에 누워 자고 있는데 코골며 자고 있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나는 가장 행복해.”
방송 프로그램을 비롯해 인터뷰마다 이 같은 생각을 밝혀온 그에겐 어느새 가장 이미지가 두텁게 내려앉기도 했다.
“속물 같은 역할을 자주 맡아서 서운하지 않느냐고? 난 연기자를 떠나서 사람이라면 그게 본질이라고 봐. 열심히 일해서 솔직하고 당당하게 돈을 버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지. 가장의 경우는 말 할 것도 없고. 다만 그렇게 번 돈에서 세금을 제대로 안 내놓고 감추거나 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고. 6,7년 전만 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어. 그런데 열심히 하니까 돈을 벌게 되고 대접해주더라. 나는 이게 좋더라고. 아빠들은 간사할 수밖에 없어. 더 나은 조건을 찾아야 하니까. 물론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걸 테고.”
성동일은 평소 인터뷰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배우다. 하지만 ‘미스터 고’에서는 고릴라 링링과 중국 배우 서교와 함께 주연을 맡은 만큼 몸이 부셔져라 홍보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물론 “주는 만큼 한다”고 말해왔던 철학에도 맞는 선택이다.
“고릴라가 인터뷰 할 수도 없고, 서교는 중국 가야 하니까 나랑 김용화 둘이서 뛰는 수밖에 없지. 안 하던 일 하려니까 솔직히 짜증도 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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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h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