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16일)과 마찬가지로 물고 물리는 경기가 벌어졌다.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는 승부였다. 스코어만 놓고 보면 재밌는 경기라고 할만 했다. 그러나 이 경기를 지켜보는 양 팀 벤치와 팬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진 팀은 할 말이 없는 경기, 이긴 팀도 찜찜한 경기였다. 수준이 높은 경기가 아니었다.
SK와 넥센은 17일 문학구장에서 4시간이 넘는 혈투를 펼쳤다. 승자는 전날과 같이 SK였다. 전날도 역전승을 거둔 SK는 6-9로 뒤져 패색이 짙었던 8회 4점을 뽑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10-9 역전승을 일궈냈다. 하지만 어느 한 팀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경기였다. 패한 넥센은 물론 이긴 SK도 여러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 SK, 만루 울렁증에 투수교체 실패

사실 한 경기에서 만루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살려야 한다. 만약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흐름이 끊김은 물론 분위기도 뺏긴다. 그런데 SK는 올 시즌 초반에 만루 기회가 유독 많음에도 잘 살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만루시 팀 타율은 2할1푼7리로 리그 최하위다. 1위 삼성(.314)와 1할 가까이 차이가 난다. 리그 평균인 2할7푼2리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렇게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경기에서의 결과는 대개 좋지 않았다. 이날도 그랬다. SK는 0-2로 뒤진 2회 1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기회는 이날 오래간만에 선발 출장의 기회를 잡은 김도현에게 왔다. 그러나 잘해야 한다는 의욕이 넘쳤을까. 김도현은 초구에 3루수 방면 병살타를 쳤다. 3회에도 2사 만루에서 이재원이 좌익수 뜬공에 그쳤다. SK가 이날 7회까지 낸 점수 6점은 홈런(5점)과 폭투(1점)로 나왔다. 모 아니면 도였다.
결과론이지만 투수교체 실패도 뼈아팠다. SK는 선발 크리스 세든이 4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다. 일찍부터 불펜을 가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후 윤길현이 2이닝 무실점, 박정배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여기까지는 성공을 거두는 듯 했다. 그러나 비로 선발 로테이션이 꼬여 8회 불펜 요원으로 나선 네 번째 투수 윤희상이 문제였다.
마무리 박희수는 전날 경기에서 22개의 공을 던진 상황이었다. 8회 시작부터 올리기는 부담이 있었다. 6-5 상황에서 마무리 박희수까지의 가교 임무를 맡긴 투수가 윤희상이었다. 그러나 윤희상은 계투 임무가 익숙한 선수는 아니다. 최근 구위도 지난해만 못해 초반에는 흔들리곤 했다. 결국 윤희상은 문우람 김민성에게 각각 솔로 홈런 하나씩을 맞으며 역전을 허용했다. 이어 던진 전유수는 서동욱에게 2점 홈런을 맞고 주저앉았다.
◆ 넥센, 도망갈 기회 날린 어설픈 주루 플레이
염경엽 넥센 감독은 “지는 경기도 잘 져야 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납득할 수 없는 플레이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모여 팀의 성적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전날(16일) 공·수·주에서 엇박자가 나며 아쉬운 패배를 당한 다음날, 염 감독은 똑같은 말을 했다. 수비와 주루, 그리고 프로선수다운 정신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넥센은 그런 염 감독의 심기를 건드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5-3으로 재역전에 성공하며 상대 선발 세든을 마운드에서 몰아낸 5회였다. 넥센은 1사 만루 상황에서 허도환에 스퀴즈 사인을 냈다. 1점을 더 내면 승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 염 감독의 승부수였다. 그러나 그 의도가 SK 배터리에 간파당했다. 윤길현은 피치아웃을 선택했고 허도환의 스퀴즈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1루 주자 유한준이 2루로 스타트를 끊은 뒤엿다. 런다운에 걸렸다.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베이스에 붙어 있어야 했을 2루 주자 강정호와 3루 주자 오윤의 주루 플레이가 아쉬웠다. 유한준이 2루로 향하는 사이 강정호는 2루 베이스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 3루 주자 오윤은 홈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상황이었다. 유한준이 아웃된 뒤 연속 런다운 플레이가 벌어지게 된 배경이었다.
SK 두 번째 투수 윤길현은 이미 적시타를 허용한 뒤였다. 흔들릴 수 있었다. 그러나 넥센의 이러한 플레이는 SK를 도와준 셈이 됐다. 이후 상황에서도 점수를 낸 다음 어김없이 실점하며 투수들 또한 집중력에 문제를 드러냈다. 5-3으로 앞선 5회에는 한동민에게 대타 역전 3점 홈런을 맞았고 홈런 세 방으로 4점을 뽑아 승기를 굳힌 8회에는 또 다시 곧바로 4점을 허용하며 결국 다 잡은 경기를 내줬다. 충격의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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