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의 묘미, '너목들'의 성공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8.06 08: 06

[유진모의 테마토크] 2000년 개봉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캐스팅 과정에서 어려웠던 작품이다. 지금이야 송강호가 단골로 출연을 자처하고 그 어떤 배우를 쓰더라도 문제가 없는 박찬욱 감독이지만 '달은... 해가 꾸는 꿈'과 '3인조'의 연이은 흥행실패와 평단의 혹평 이후 오랫만에 메가폰을 잡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캐스팅이 순조로울 리 없었다.
더구나 북한군 오경필 중사 역으로 '쉬리'에서 북한국 장교 역을 맡았던 최민식에게 시나리오를 보냈으니 그가 두 작품 연속 북한군을 연기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국군 이수혁 병장 역으로 이정재를 낙점했지만 당시 한창 뜨겁게 솟아오르던 이정재로서는 다소 유약한 이수혁의 캐릭터나 데뷔작과 그 후속작을 실패한 박 감독에게 신뢰를 보내기 힘든 상황.
결국 아쉬운대로 송강호와 이병헌을 캐스팅했다. 송강호는 당시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던 시점이었기에 한 계단 올려 밟는다는 입장에서 크게 거부감을 가질 리 없었고 탤런트로선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을 만큼 안방극장에선 승승장구했지만 유독 스크린에서 잇단 고배를 마셨던 이병헌으로서는 한 번 승부수를 띄워볼 만했던 것이다.

결국 이 카드는 박 감독에게 명장의 반열에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해줬으며 이병헌에게 생애 최초로 스크린에서 성공한 뒤 이후 오늘날의 할리우드 스타로까지 발돋움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당시 무명에 불과했던 신하균을 단숨에 인기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해줬고 김태우 역시 영화배우의 자리에 올려놔줬다.
이듬해 개봉된 '친구' 역시 캐스팅에서 난항을 겪었던 작품. 곽경택 감독은 '억수탕'과 '닥터K'를 연달아 실패한 이후 한동안 메가폰을 잡을 수 없다가 자전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친구'로 빛을 볼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아나키스트'로 가능성을 보인 정준호와 한창 영화계에서 부상 중인 김상경에게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거절당하고 유오성과 운 좋게도 장동건을 잡을 수 있었고 작품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당시 장동건도 이병헌과 비슷한 처지로 영화계에서의 성공을 간절하게 갈망하던 처지였고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것.
이렇게 캐스팅은 하늘만이 알고 하늘만이 점지해주고 하늘만이 성패를 가늠한다.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지난 1일 23.1%의 높은 시청률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1회 시청률은 고작 7.7%였다.
이 드라마는 애초에 편성된 '사랑해도 될까요'가 무산되면서 급하게 '땜질용'으로 편성된 대타였다. 극의 갈등의 가장 중요한 민준식 역의 정웅인이 대본리딩 이틀 전에 캐스팅됐을 정도로 숨가쁘게 진행된 작품. 방영 한달 반만에 급하게 캐스팅이 진행됐으니 주연인 이보영 이종석 윤상현 정웅인 모두 제작진이 애초에 생각한 이상적인 조합은 아니었다.
사실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주인공 이보영 이종석 윤상현 카드은 제작진이 애초에 구상한 필승카드는 아니었다. 비록 이보영은 '내 딸 서영이'로 흥행의 맛을 봤다고는 하지만 그녀 자체가 흥행의 보증수표는 아니었다. 또한 윤상현과 이종석은 연기력이 보장이 안 되고 특히 이종석은 또 고교생 역을 맡아 자칫 식상함을 주기 십상인 모양새였다.
핸디캡은 경쟁작과의 단순비교에서도 드러났다. MBC '여왕의 교실'의 고현정, KBS2 '칼과 꽃'의 엄태웅 김옥빈 온주완 최민수 등의 캐스팅과 비교해 결코 돋보인다고 볼 수 없었다. 고현정은 흥행이 보장된 탤런트고, '칼과 꽃'은 화려한 비주얼이 강점이었다. '너목들'은 초능력 소년이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로 일단 겉핧기만 했을 때는 메리트가 거의 없어 보였다. 게다가 더욱 진부하게 연상녀 연하남에 삼각관계라니!
설상가상으로 전작 '내 연애의 모든 것'은 5% 안팎의 부진한 평균 시청률로 수목극 꼴찌를 사수(?)해왔기에 '너목들'이 가진 핸디캡은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이런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극복하고 '너목들'은 월화, 수목 미니시리즈 통틀어 부동의 1위를 내달렸다. 월화극 1위 MBC '불의 여인 정이'가 언감생심 넘볼 수 없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다.
이보영은 이제 누가 뭐래도 당당한 흥행 여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정웅인은 코미디 배우라는 딱지를 떼고 진지한 연기파 배우로서 확실하게 자신의 위치를 확보했다. 명품조연이라는 '황금의 제국'의 손현주와 대등한 자리에 올라섰다.
무엇보다 이 작품으로 가장 큰 득을 본 배우는 이종석이다. 그는 '학교 2013' 때와는 사뭇 달라진 위상으로 이모들의 우상으로 우뚝 서며 뭇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이쯤 되면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가 나올 법하다. 만약 '너목들'의 편성이 여유있게 잡히면서 캐스팅에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래서 다른 배우들이 캐스팅됐다면 이 작품과 이보영 이종석 정웅인 자리에 들어갔을 어느 배우들의 현재 위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캐스팅의 묘미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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