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전성시대, 아니 홍수시대다. 근래 1~2년간 새롭게 선을 보인 팀들만 수십여 팀이고, 가요계 전체 걸그룹 수를 따졌을 때 100여팀을 가벼이 웃돈다. 평균 팀원을 5명이라 봤을 때, 걸그룹 멤버만 대략 500명을 훌쩍 넘기는 셈.
많은 걸그룹의 경쟁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염증을 느끼게 하고 '걸그룹 서열표', '걸그룹 지형도'를 그려내는 데 에너지를 할애하게 만들었다. 지금 대한민국 가요계 걸그룹들, 잘 하고 있는 걸까.
그룹 신화가 최근 멤버 변동없이 15주년을 맞아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후배 보이그룹들은 너도 나도 롤모델로 신화를 꼽으며 달콤한 장수를 꿈꾸는 중이다. 반면 걸그룹은 보이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팀 수명이 짧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지난 2006년 데뷔해 7년간 함께 희로애락을 겪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 팀이 있으니, 그게 바로 브라운아이드걸스(이하 브아걸)다.

브아걸은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내가네트워크에서 OSEN과 만나, 새 앨범 '블랙박스(BLACK BOX)'의 타이틀곡 '킬빌(KILL BILL)'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8년차 걸그룹으로서의 현실과 삶, 솔로 활동, 해외 진출에 대한 고민과 견해, 장수 걸그룹 비결들을 가감 없이 배출했다.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질때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지만,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사뭇 진지한 눈빛도 내비쳤다.
"손끝이 깨끗하고, 향기가 나는 사람", "얼굴이 좌우대칭인 사람"을 각자의 이상형(?)으로 꼽으며, "조급해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달려드는 것", "서로를 수시로 팀킬하면서, 오히려 팀워크를 다진다" 등의 기이하지만 와닿는 솔직한 장수 비결이 담긴 브아걸과의 인터뷰는 험난하고 넓은 가요계를 여행하는 걸그룹들을 위한 한 편의 친절한 안내서였다.

-일단 신곡 얘기부터 해보자. 신곡 '킬빌'은 어떤 노랜가.
"'킬빌'은 대중과 접점을 찾으려한 노래다. 뮤직비디오 역시 영화 '킬빌'의 오마주(hommage)로 웃음코드를 담았는데, 생각보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급 코드'로 웃음을 노렸는데, '브아걸이 코믹을 할리가 없다'며 자꿈만 있지도 않은 숨은 의도를 찾으려 애를 쓰더라. 요즘 세대들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 자체를 모르는 것도 예상을 못했다."(제아)
-'킬빌'에 특히 중점을 뒀던 부분이 있나.
"컴백 전 부담감이 컸다. 앞서 '식스센스(Sixth Sense)'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다. 당시는 보컬에 충실한 그룹으로서, 그 끝을 보여주고 싶었다. 도입부부터가 '파'음으로, 웬만한 여자가수들도 올리기 힘든 곡이다. 그땐 죽을힘을 다해 불렀다. 그보다 더 가버리면 너무 (대중들과) 멀어질 거 같았다. 'SNL코리아'에서 잠깐 보여줬던 모습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서 좀 더 편안하게 다가서자는 생각이었다."(제아)
-이전과 달라진 점을 꼽아보면 뭐가 있을까.
"메이크업에 큰 변화가 있다. 기존 무대 메이크업을 지우고, 단순한 뷰티 화장이다. 스모키도 아니다."(제아)
"매번 엄청난 메이크업을 소화했는데, 이번엔 눈화장도 옅게 했다. 그런데도 기존 '센 언니들'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눈치조차 못채는거 같더라. 난 이정도면 거의 안한 수준이다."(가인)
-햇수로 벌써 8년차 걸그룹이다. 예전과 달라진 게 좀 있나.
"현장에 가면 모르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난다. 이건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음악 프로그램 대기실을 가도, 우리가 인사할 사람보다는, 인사를 받기 바쁘다. 싱싱한 후배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즐겁고 재밌다. '엄마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경쟁을 하기엔 너무 아이들이다. 우리와는 아예 다르다. 다들 예쁘고 멋있고, 또 너무 잘한다."(나르샤)
-멤버들의 솔로 활동도 많았다. 그룹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한층 단단해진 느낌이다. 모아놓으니 정확히 각자가 무얼 해야하는지 알기에, 수월한 것 같다. 편하게 작업했다."(제아)
-솔로 활동엔 만족했나. 가인의 경우엔 특히 파격적이었는데.
"선정적인 코드가 있었는데 그걸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이전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당시도 언니들의 섹시함과 노련함을 따라갈 수 없어 고민이 많았다. 그땐 '나도 나이가 좀 많았으면'이란 생각을 하곤했다. 연륜에서 오는 그 분위기를 따라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피어나' 솔로활동 당시는 스물여섯이었기에 그 전에 비해 조금은 더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론 잘 돼서 다행이다."(가인)

-'킬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무대는 어땠나.
"곡 전체 콘셉트에는 편안함이 묻어났지만, 솔직히 안무적으로는 엄청 힘들었다. 자기 파트가 아닌 부분에 안무 강도가 상당하다. 라이브도 쉽게 들릴지 모르지만, 춤을 소화하면서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솔직히 첫 방송 3일 전까진 완벽히 소화를 못했다. 첫 방송 후, '라이브가 아니었다'는 반응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쏟아졌다. '나이가 있다보니 힘들어서 안했다'는 식이더라. 우리, 라이브 한 거 맞다."(제아)
-아직도 첫 무대는 떨리나.
"첫 방송은 항상 떨린다. 다만 예전엔 사전녹화 무대를 5~6번씩 했다면 이제는 짧게 2번 정도에 끝내는 편이다. (체력적으로) 힘드니깐 확실히 예전보다 사전녹화 시간이 줄었다. 언니들보다 요즘 내가 더 힘들다. 영양제도 잘 챙겨먹고 있는데..작년까지는 괜찮았는데 뭔가 올해부터 많이 변한 것 같다."(가인)
-8년차 걸그룹. '줄어든 체력'처럼 또 변화된 게 있나.
"대기실을 예전엔 여러팀이 함께 썼는데, 이젠 어딜 가더라도 단독방을 주시더라.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든 같이 쓰던데, 우리는 유일하게 독방을 준다."(가인)
"남자 아이돌들을 눈여겨 본다. 안무팀 단장님들이 연장자 대우를 해준다 등등."(제아)
"제아 말처럼 후배 그룹들의 시선을 신경쓴다. 뭔가 '멋있어 보여야 한다'는 걸 의식한다. 보는 눈이 많으니깐 어쩔 수 없다. 우리 무대를 전후해서 꼭 남자그룹들이 있더라. 엑소(EXO)에 비스트까지..에너지를 참 많이 받고 있다."(나르샤)
-전과 크게 변화가 있는 멤버가 있나.
"미료가 '랩 포텐'이 제대로 터졌다. 원래도 잘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더 늘었다. 우리끼리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제아)
"좋게 들어줘서 고맙다. 열심히 한 보람이 있다. '쇼미더머니'를 나갔을 때 만족할 만한 무대를 못 보여드려 실망을 안긴 것 같다. 늦게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더 노력했다."(미료)
"그때를 떠올리면 진짜 안타깝다. 미료가 혼자라는 것과 서바이벌 무대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제대로된 실력 발휘를 못한 것 같아 멤버로서 아쉬웠다. 실제로는 녹음실에만 들어가면, 장난이 아닌데.. 당시에 뭐라고 했던 사람들도 이젠 다들 '너무 좋다'고 난리들이다."(나르샤)
-멤버들간 관계의 변화도 있나.
"경쟁, 예민함, 부담감, 파트 욕심을 다 내려놓은 거 같다. 예전엔 녹음할 때도 서로 눈치도 보고, 파트경쟁도 심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아예 없어졌다."(가인)
-싸이가 '젠틀맨'에서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차용했다. 가인은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 얼마전에 신곡인 '킬빌'을 미국 MTV에서 '꼭 들어야할 팝송'으로 꼽았더라. 해외에서의 반응, 좀 실감하나.
"K-팝이 많이 식었다곤 하지만, 아직 해외에 나가보면 열기가 뜨겁더라. 우리는 몰랐는데 어떤 곳은 아직도 '아브라카다브라'가 전체 순위 5위권에 있는 곳이 있다더라. 동남아 태국이었나.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협의 중이다. 올해부터는 그게 시행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제아)
"왜 해외를 나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 점에 대해서 싸이 오빠와도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점은 '만만한게 아니다'라는 거였다. 정말 모든 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 어쭙잖게 나갔다가는 좌절만 느끼게 될 거다. 예전엔 가수들이 해외에서 뮤비만 찍어와도 신기하고 반응이 뜨거웠는데 이젠 큰 감흥이 없다. 이제는 단순히 해외로 나가기보다는, 일단 한국에서 이슈가 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가인)

-히트곡 '아브라카다브라'를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애초에 포기했다. 그 곡은 3박자가 맞아떨어졌다. 춤, 노래, 콘셉트.. 그런 게 나오면야 좋겠지만, 너무 연연하다 보면 발전보다는 자꾸 아류작만 내놓을 거 같았다. '식스센스'처럼 전혀 다른 방향의 뭔가를 계속 보여주고 싶다."(제아)
-가인의 소속사 이적 등으로, '해체'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기도 했다.
"설사 소속사가 다르더라도 브아걸로서 계속 활동하는 데 변함은 없다. 우린 결혼을 해도 이대로 계속 할 것 같다. 여성 팬층이 두터워서 결혼 후 활동도 더 지지해줄 것 같다. 근데 결혼 생각은 아직 다들 없어서, 근 몇년간은 왕성하게 활동할 거 같다."(제아)
"4명의 염원을 담았다. 결혼하고 출산해도 할 수 있게. 아직은 음악에 더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보여줄 것도 많다."(미료)
-이쯤에서 걸그룹으로서의 장수비결이 듣고 싶다.
"좋은 성격? 조급함이 없는 것 같다. 뭔가 해야한다고 했을때 두려움 없이 달려들었던 것 같다. 넷 다 열심히 하고, 조금 안된다고 해서 그것에 영향도 받지 않는 스타일들이다."(제아)
"기다릴 줄 아는 성격이다. 상황이나 시간이 왔을때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넷이 모인건 운명같다. 서로 성격들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고, 마찰이 생겨도 넘어갈 수 있는 나이다. 여태껏 큰 사고는 없었다."(나르샤)
"아!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서로 팀킬을 하며 팀워크를 다진다. 술자리에서 한 잔 마시며 얘기하면 또 다 풀린다."(제아)
-'킬빌'은 나쁜남자를 혼내주는 센 언니들 이야기다. 실제 멤버들의 연애는 어떤 편인가.
"제아와 가인은 완급 조절을 할 줄 아는 편이다. 소위 말하는 '밀당'. 나와 나르샤는 너무 (마지막 연애가) 오래 전이라 서툴다."(미료)
-연애를 할 생각은 있는건가? 각자 이상형은 어떤가.
"예전엔 몸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조건이 좀 까다로워졌다. 손끝이 깔끔하고, 향기가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 조쉬 하트넷?(웃음) 손에 땀이 많은 남자도 별로다. 과거 트라우마가 좀 있다."(제아)
"딱 3가지 조건이 중요하다. 사회성, 좌우대칭인 얼굴, 날 포용할 수 있는 남자. 내가 얼굴이 대칭이 아니라, 대칭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미료)
"누굴 새로 만나고 하면 잘 되질 않더라. 연예인이라 그런 게 아니라 전부터 그랬다. 자주 보고,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더 편하다. 그러면 조권, 임슬옹?(웃음) 이러다가 결국엔 알고 있는 사람 중 누군가와 결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가인)
"눈치가 있는 사람. 주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성격인데 겪어보면 또 막상 아닌 사람도 있어 고르는 게 쉽지 않다."(나르샤)
-벌써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앞으로 브아걸의 행보에 대해서 한 마디 부탁한다.
"앞으로 멤버들이 음반쪽으로 다양한 활동을 할 계획이다. 가인이가 하는 영화도 많이 봐주고, 우리 콘서트를 하면 많이 보러 와달라. 그리고 우린 해체 안하니깐 걱정들 마라. 이번 앨범 마지막 트랙에 대한 얘기가 많던데 그건 우리들 우정에 대한 얘기다.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 멋지게 지켜봐달라."(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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