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이쁘지만 부럽지는 않아요."
비인기 종목 아이스하키, 또 불모지인 여자 아이스하키에 세계 정상의 캐나다 대학 스포츠(CIS)리그에 진출하는 경우가 생겼다. 바로 신소정(23)이다. 신소정은 지난 30일 캐나다로 출국했다.
신소정은 CIS 1부리그 세인트 프랜시스 재비어(StFX)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떠났다. StFX는 2012-2013 시즌 캐나다 챔피언십 3위에 오른 명문팀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신소정은 대학교 4학년(숙명여대 체육교육과 휴학)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화장기도 없었고 머리도 짧은 퍼머 머리였다. 새내기처럼 밝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은 높았다. 동갑내기인 김연아가 세계 정상까지 오른것처럼 그도 세계 최고의 골리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초등학교 1학년(얀앙 석수초)때 하키 스틱을 잡았다. 집 근처의 과천 빙상장에 놀러 갔다가 아이스하키에 매료됐다. 외동딸인 신소정의 부모님은 발레, 피겨 스케이팅 등 여성스러운 운동을 하기 바랐다. 하지만 신소정은 무조건 하키였다. 얼음위에서 빠른 스피드로 맹렬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아이스하키가 좋았다.
"부모님이 운동을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운동을 하겠다고 했을때 반대는 안하셨어요. 아이스하키도 쉽게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셨는데 너무 오래했네요. 물론 이제 다시 시작이지만 배울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이스링크에 있으면 마음이 편했어요. 그저 빙판위에서 노는 것이 즐거웠어요. 과천에서 운동할때 김연아 선수가 저희보다 앞 순번이었는데 이쁘다는 생각은 했지만 흥미는 없었어요. 그저 퍽을 치는 소리, 골리가 받아내는 소리가 좋았어요"
중학교때 안양에서 서울로 이사왔지만 열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취미로 할 것이라 생각했던 부모님도 신소정의 열정에 믿음을 보냈다.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때는 태릉에서 대표팀으로 훈련도 했지만 남자 고등학교에서 훈련을 했다. 포워드로 시작해 골리로 포지션을 옮긴 그였기 때문에 부르는 곳이 많았다. 남자 고등학교에도 골리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 고등학교의 양해를 구해 훈련을 하면서 그는 흔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캐나다로 연수를 떠났다. 아이스하키 강국인 캐나다에 있는 클리닉에 참가했다. 남자 선수들도 거의 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믿음이 이어지면서 신소정은 클리닉에 다녀왔다. 많이 배웠다고 했다. 또 대학에서도 특기생으로 받아준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1학년때 부터 제의가 왔었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고 2말에 특기생을 제의했던 학교에서 갑자기 취소했다. 실의에 빠졌을때 아버지도 돌아 가셨다. 갑자기 돌아 가셨기 때문에 슬픔은 더 컸다. 무남독녀 외동딸에 사랑이 컸던 아버지는 꿈을 심어주던 분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싫었다. 운동도, 공부도 다 싫었다.
"특기생 제의도 왔었고 유학에 대해 고민도 많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내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아시안게임에 출전도 했고 운동 선수로서 자부심도 많았어요. 그런데 여러가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고민도 했었습니다. 포기하고 모든 것을 다시 해볼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한마디 해주셨어요. '다시 시작해보자'라고요. 그래서 다시 이곳까지 온 것 같습니다."
대학입시 때 체육특기생 가산점조차 없는 상황에서 신소정은 숙명여대 체육학과에 합격했다. 운동을 하면서 공부도 늦추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어머니의 뜻에 따라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숙명여대에 입학하면서 아이스하키도 더 열심히 했다.
아시안게임에 대한 기억도 더듬었다. 2007년 장춘 아시안게임에는 대표팀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신소정처럼 어렸을때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 바꾼 선수들이 많았다. 처음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그는 경기당 130개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29-0으로 패했던 일본과 경기서는 110세이브였다. 총 139개의 슈팅을 허용했다. 아무리 신소정의 기량이 뛰어 나더라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처음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을때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어요. 유니폼 1벌로 1년을 버텼으니까요. 그런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되자 트렁크를 주더라고요. 그 안에 유니폼부터 트레이닝복 등 다 들어가 있었어요. 그거 받고 나서 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울었어요. 인정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말 기뻤습니다. 또 부상을 입었을때 훈련을 마치고 마사지 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정말 좋더라구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대표팀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시안게임은 대표팀이기에 지원을 받지만 현재 소속은 안양 한라 인턴이다. 다행이 여러곳에서 도움을 받았다. 물론 신소정이 모든 부분에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도움도 없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 이번에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개인 스폰서십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동영상을 많은 업체들에 보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캐나다와 미국 대학 등에서는 곧바로 연락이 왔다. StFX대학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토플 점수가 없었는데도 괜찮다고 했다. 모든 것을 도와줄테니 골리로 활약해 달라는 말이었다.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되면서 갈 수 있었다. 물론 모험이다.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로 성공을 하더라도 한국에 돌아오면 뚜렷한 출구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소정은 그저 즐거웠다. 일단 실력을 인정 받고 세계 무대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강국이라는 캐나다에서도 인정 받았기 때문에 부푼 마음을 갖고 캐나다 출국을 결심했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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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