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는 많은 것을 잘해야 한다. 도루 저지와 번트 수비를 위해 정확하고 빠른 송구를 할 수 있어야한다. 한 경기서 적어도 150개 이상의 공을 받아야 하므로 안정적인 포구 능력은 필수다. 굴절된 타구, 번트 타구나 홈 뒤편으로 날아가는 플라이를 처리하기 위한 순발력도 필요하다. 3시간이 넘도록 공을 받는 강인한 체력, 상대 타자를 잡기 위해 투수를 리드하는 끈질긴 정신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 포수에게 타격은 ‘덤’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LG 포수 윤요섭(31)은 2008년 신고선수로 SK에 입단했고 2010년에는 LG로 트레이드됐다. SK 시절 종종 1군 무대서 포수마스크를 썼는데 LG 유니폼을 갈아입었을 당시 전 소속팀은 그에게 포수 불가 판정을 내렸다. LG 또한 2011시즌까지 1군에서 윤요섭을 지명타자나 좌투수 상대 대타요원으로만 그라운드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가 됐으나 입단 4년 만에 포지션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심지어 윤요섭은 2012년 스프링캠프서 포수 장비뿐이 아닌, 1루수 미트까지 챙겼다. SK와 마찬가지로 LG도 윤요섭을 포수로 보지 않았었다.
2012시즌의 시작을 2군에서 맞이한 윤요섭은 “2군에서 홈런을 쳐도 전혀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냥 멍하게 지명타자나 1루수로 출장하면서 하루하루를 때울 뿐이었다”고 이 때를 회상한다. 당시 윤요섭은 어쩌다 포수 이야기가 나오면 “솔직히 지금도 꿈에서 포수를 본다. 도저히 포수마스크를 놓을 수 없다”고 포지션을 잃어버린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었다.

고민 끝에 윤요섭은 김기태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 포수 복귀를 간절하게 요구했고 김 감독은 윤요섭에게 다시 포수마스크를 건냈다. 김 감독은 윤요섭에게 포수 복귀를 허락한 것에 대해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웃으면서도 “스스로 힘든 것을 알면서 각오한 길이다. 사실 현재 우리 팀 포수 중에는 가장 떨어진다. 앞으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어디까지나 윤요섭 본인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포수 윤요섭의 진짜 야구인생은 만 서른부터 시작됐다. 물론 포수로서 본격적으로 직면한 1군 무대는 ‘험난함’ 그 자체였다. 윤요섭은 기본적인 포구부터 시작해 블로킹, 투수리드, 1루 송구, 땅볼타구 대처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역시나 포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잘해야 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쉬지 않고 땀 흘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홈경기가 열릴 때면 일찍이 잠실구장을 찾아 따로 포수 훈련에 임했다. 동료 투수들의 투구와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투수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다른 동료 선수들보다 2배 바쁘고 2배 힘들게 시즌을 보냈다. 포수로 20경기 나섰을 때와 40경기 치렀을 때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12년 마무리 캠프 당시 김정민 배터리 코치는 “처음에는 투박했지만 갈수록 좋아졌다. 경기운영 역시 예상보다 괜찮았다”며 “30살이지만 포수로서 1군 경험은 전무 했었다. 신인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빠른 성장세였다”고 윤요섭에게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제 전진만 남은 것 같았다. 2013시즌 윤요섭의 목표는 확실하게 주전자리를 꿰차는 것이었다. 2012시즌 부족함도 많이 느꼈지만 간절히 원했던 포수마스크를 되찾았다. 무엇보다 1군 무대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얻었다. 2012년 마무리캠프를 치르며 윤요섭은 “다른 팀 베테랑 포수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만일 온다면 보고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로 LG는 지난해 12월 삼성과 트레이드를 통해 현재윤을 영입, 베테랑 포수를 엔트리에 추가했다. 그리고 윤요섭은 스프링캠프부터 새로운 벽에 부딪쳤다. 더 나은 포수가 되기 위한 성장통에 주전 경쟁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지며 이른바 멘탈붕괴가 일어났다. 시범경기 기간 자신이 선발 출장할 때마다 LG 투수들은 유독 많은 점수를 허용했고, 그럴수록 윤요섭의 시선도 아래를 향했다. 결국 윤요섭은 2013시즌 개막 후 5일 만에 1군 엔트리서 말소됐다. 윤요섭은 “스프링캠프부터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시즌 개막 후 2군에 내려가면서 힘이 많이 빠지기도 했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김기태 감독은 윤요섭을 2군으로 내려보내며 '팀에 필요한 부분을 채워서 와 달라'는 격려 문자를 보냈고 윤요섭의 재도약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앗다. 말소 후 약 한 달 후인 5월 3일 다시 1군에 합류한 윤요섭은 당당히 1군 주전포수로 올라섰다. 당시 주전포수였던 현재윤이 부상으로 빠졌고 트레이드로 긴급하게 영입한 최경철도 힘에 부친 상황에서 윤요섭이 해결사가 됐다. 특히 현재윤과 최경철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했던 7, 8월. 무더운 더위 속에서 거의 홀로 홈플레이트를 지키며 LG의 구세주가 됐다. 포구를 위해 왼쪽 엄지손가락이 나갔고 타석에서 배트를 제대로 잡지도 못했지만 버텼다. 부상으로 장기인 타격은 잃어버렸어도 수비로 팀을 이기게 한다면 1할대 타율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윤요섭은 당시 부상 상태에 관해 “당시만 해도 주먹을 제대로 못 쥐었다. 수비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데 배트를 제대로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사실상 포수가 나 한 명밖에 없었다. 타격은 안 되도 투수들이 잘 던지니까 잘 받아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힘들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다. 투수들도 마운드에서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다. 내가 힘든 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홀로 버티며 진화한 윤요섭으로 인해 LG는 6월의 상승세를 여름 끝까지 이어갔다. 윤요섭은 어느덧 74경기에 출장했고 후반기 타율도 전반기 1할대 부진에서 벗어나 2할8푼을 찍고 있다. 특히 류제국과 일찍이 짝을 맞추며 류제국의 국내 무대 복귀를 도왔고 리즈 우규민 신정락 신재웅 등 투수를 가리지 않고 꾸준함을 보였다.그러면서 매년 여름만 되면 지독하게 추락했던 LG의 징크스도 깨드렸다. 8월 20일 LG는 18년 만에 8월 이후 1위에 등극, 10일 현재 삼성과 치열한 선두다툼 끝에 1위를 지키고 있다.
현재윤은 윤요섭을 두고 “요섭이에게 고맙다. 요섭이 덕분에 부담이 덜 된다. 요섭이 경기는 재미있다. 언뜻 보면 쉽게 볼배합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점하지 않고 경기를 빠르게 잘 이끈다. 요즘에는 내가 요섭이 스타일을 보고 많이 배운다”고 후배의 성장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성장과 함께 윤요섭의 야구관도 달라졌다. 윤요섭은 “전에는 ‘내가 잘해서 이겨야한다’, ‘내가 안타를 치고 홈런을 쳐야 팀이 이긴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투수가 편하게 잘 던지도록 유도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 팀이 이길까’만 생각한다”며 “나는 우리 팀에서 8번 타자다. 내가 홈런을 치지 못하더라도 진루타를 치거나 상대 투수의 투구수를 늘리는 것도 팀이 이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음 타자에게 잘 연결해서 점수가 난다면 팀을 이기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여전히 자신에게는 냉정했다. 윤요섭은 “아직 나는 50점짜리 포수다. 지금 이렇게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은 전력분석원들과 투수들, 그리고 코치님들의 조언 덕분이다. 특히 차명석 투수코치님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은 것인지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며 “내년에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 지금처럼만 하면 더 많이 배우고 더 발전할 것 같다”고 눈빛을 반짝거렸다.
마지막으로 윤요섭은 남은 시즌을 바라보며 “비록 내 경기력은 모자라지만, 매일 포수를 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올 시즌 팀이 잘 되서 다가오는 기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면서 “아직 포스트시즌을 경험하지 못했다. 사실 나를 비롯해 포스트시즌이 처음인 선수들이 우리 팀에는 많다. 하지만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는 팀이 이길 것이다, 부담은 없다. 포스트시즌에 올랐다는 것은 이미 강팀이라는 증거 아닌가. 자신 있다”고 우승을 향한 각오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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