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 걸음만 더 밟으면 기적을 완성한다.
두산이 삼성과 한국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마크, 2001년 이후 12년 만의 우승에 1승만을 남겨뒀다. 두산은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투수 이재우의 무실점 호투와 1회말 2점을 먼저 뽑은 데 힘입어 2-1로 승리, 3차전 패배를 바로 설욕했다. 이로써 두산은 1승만 추가하면,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4위 우승팀이 된다.
그야말로 기적 그 자체다. 두산은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날까지 LG·넥센과 2위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이다가 4위로 준플레이오프를 준비하게 됐다. 넥센과 준플레이오프서도 1, 2차전 모두 끝내기 안타로 패배, 시즌 종료가 눈앞이었다. 그러나 두산은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연장접전 끝에 기사회생했고, 이후 내리 2승을 더해 기적의 신호탄을 쏘았다.

다음 무대서도 두산의 기세는 이어졌다. 잠실 라이벌 LG를 맞아 한 수 위의 기량을 뽐내며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5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어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삼성을 상대로도 괴력을 발휘했다. 시리즈가 중반을 넘은 가운데 체력저하,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속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한다.
물론 아직 시리즈는 끝나지 않았다. 1차전을 제외하면 매 경기가 혈투다. 한 순간에 흐름이 바뀌어버린다면, 기적의 기운은 오히려 삼성 쪽을 향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두산이 시리즈의 주도권을 잡고 있고, 2013시즌의 마침표를 찍을 확률이 삼성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두산은 4차전 승리와 함께 우승 문턱에서 좌절케 했던 각종 악재들을 깨뜨렸다.
2005 한국시리즈부터 2007, 2008 한국시리즈까지 두산이 3번 연속으로 정상 등극에 실패했던 결정적 원인은 한국시리즈 잠실구장 전패였다. 특히 SK를 상대했던 2007, 2008 한국시리즈 잠실구장 전패는 악몽이었다. 2007 한국시리즈에선 적진에서 1, 2차전을 모두 가져갔음에도 거짓말 같은 4연패를 당했고, 2008 한국시리즈서도 1차전을 승리했으나 4연패로 허무하게 고개를 숙였다.
지난 2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3차전 패배는 두산으로 하여금 지난날의 고통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코칭스태프 실수로 선발투수 유희관이 조기 강판됐고 포스트시즌 반전의 주인공인 최재훈은 체력저하를 노출, 하지 않았던 실수를 범했다. 끝까지 삼성을 추격했지만 결과는 2-3 석패, 한국시리즈 잠실구장 9연패의 그림자가 머리 위로 무겁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불의의 부상 또한 한국시리즈서 두산의 발목을 잡아왔다. 두산은 2007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공수의 중심이었던 내야수 안경현이 몸에 맞는 볼로 아웃됐다. 안경현의 부상으로 인해 두산은 클린업트리오와 1루 수비서 문제점을 노출했고, 시리즈 마지막까지 안경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스윕패를 당했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부상 문제가 더 심각했다. 시리즈 아웃은 아니지만 오재원 이원석 홍성흔 임재철 등 예전보다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시리즈 후반 이들의 복귀 가능성이 열려있기는 하지만, 당장 대타 대수비 대주자 기용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제는 확연히 향상된 선수층 깊이로 부상을 극복하고 있다. 이원석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라운드에 선 허경민이 4차전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려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했다. 최재훈 대신 포수 마스크를 쓴 양의지도 노련한 리드와 타격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홍성흔이 빠지자 1루수 최준석이 지명타자로 출장했고, 1루를 맡은 오재일은 절묘한 수비력을 뽐냈다.
몇몇 투수들에게 편중됐던 마운드도 확연히 달라졌다. 2005, 2007, 2008 한국시리즈 모두 상위 선발진과 필승조 몇 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당시 부동의 에이스였던 리오스나 랜들을 내세워 기선제압에는 성공했으나 약한 3, 4 선발투수로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불펜진 또한 필승조와 추격조의 차이가 컸다. 게다가 믿었던 필승조마저 포스트시즌에선 마지막 순간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선 선발진 10승 트리오 노경은 니퍼트 유희관이 모두 균형을 맞추고 있다. 4선발 이재우 또한 포스트시즌서 기대 이상의 호투를 펼쳤다. 불펜진은 전체가 동반 상승, 필승조와 추격조의 경계가 사라졌다. 페넌트레이스 당시만 해도 불안했던 불펜이, 포스트시즌에선 오히려 평균자책점 1.61로 철벽을 형성하고 있다. 4차전서도 두산은 무실점 호투한 이재우의 뒤를 핸킨스가 이어 받았고, 정재훈과 윤명준이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며 승리를 지켜냈다.
불펜진 전체가 활약하면서, 특정 투수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포스트시즌 13경기를 치르면서도 투수들의 구위 저하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두산은 4차전에 나서지 않은 변진수와 오현택이 5차전에 나갈 수 있으며, 3차전서 불의로 교체된 유희관 또한 깜짝 등판할 수 있다. 윤명준이 한국시리즈 4경기를 모두 소화했으나, 4차전 투구수는 3개에 불과했기 때문에 5차전 등판 가능성도 열려있다.
반면 삼성은 강력한 ‘+1 카드’ 차우찬이 4차전서 투구수 100개를 기록, 5차전 등판 가능성이 희박하다. 오승환이 2이닝 이상 소화는 가능하지만, 선발투수 윤성환이 1차전처럼 조기에 무너진다면, 5차전 마운드 운용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삼성 타선의 부진과 함께 마운드의 양과 질 모두 두산이 삼성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근 두산은 포스트시즌 단골손님임에도 2인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2001년 우승을 달성한 이후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매번 명승부를 연출했으나 정상까지는 닿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난 12년과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제 1승만 더하면,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그 어느 팀보다 강렬한 정상등극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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