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석처럼 붙어 다니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습들이 가끔 보인다. 의무 없이 권리만 행사하려 하는 이들이 있고 책임 없이 권한만 행사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투명성이 떨어진다. 팬들의 시선에 우려가 섞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런트 야구’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의 현실을 보면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 잘리지 않은 몇몇 감독들은 자신 대신 수족이 잘려나갔다. 이런 풍경은 올해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계속되고 있는 트렌드다. 프런트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결과 ‘일방통행’ 혹은 ‘불통’에 대한 현장의 반발도 포착된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다.
프런트와 현장은 한 팀을 이끌어나가는 두 축이다. 양쪽 모두 각기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느 한 쪽의 몫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양측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프런트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현장을 지원하고 현장은 프런트가 만들어준 토대를 바탕으로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리고 대개 한국프로야구를 지배했던 시대의 팀들은 이런 임무 분담이 비교적 명확했다.

하지만 부부도 싸울 때가 있듯이 양쪽도 필연적으로 마찰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럴까.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은 프로야구 출범 이래 끊이지 않는 파워 게임이었다.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는 프로야구의 흐름을 살피는 주요한 명제가 되곤 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대개 프런트가 승리했다. 모기업의 지배를 받는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곤 했다. 프런트가 휘두른 칼날에 현장이 끝내 굴복하는 사례가 많았다.
연간 몇 백억 원씩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구단으로서는 할 말이 있을지 모른다. 성적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슷한 자원, 즉 구단 예산을 투자하고도 성적이 좋지 않다면 그 책임을 현장에 물을 수 있다는 논리는 통용되어 왔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도 단장을 중심으로 한 프런트 야구는 분명 존재하고 또한 때때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책임의 정도다.
한국프로야구는 성적에 대한 책임을 대개 현장에 묻고 있다. 1년에도 몇 차례씩 화제를 불러 모으는 감독 경질, 혹은 코칭스태프 개편 소식이 이를 반영한다. 반대로 책임을 져야 할 또 하나의 축인 프런트는 상대적으로 현장에 비해 그 책임의 강도가 약하다. 오히려 프런트는 ‘오너’의 의견을 대변하는 집단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는 현장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갈등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MLB는 단장들도 구단과의 ‘계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는다. 좋은 성과를 낸 단장이라면 10년 넘게 한 팀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단장들은 5년의 시간도 장담할 수 없다.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들도 냉정하게 자신들의 성과를 평가받는 것이다. 그래야 현장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고 때로는 같은 눈높이에서 팀의 미래를 그릴 수 있다. 프런트들이 좀 더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여건도 만들어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평가의 잣대조차 명확하지 않다. 최근 들어 성적 부진을 놓고 단장들이 시험대에 오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현장에 들이대는 기준처럼 가혹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일부 프런트를 두고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좋지 않은 성적을 낸 감독을 선임한 프런트도 부진한 성적에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할 시기에는 쏙 빠진다.
‘프런트 야구’라는 단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프런트의 임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또 그들의 노력을 폄하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최근의 경향은 프로야구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한 성장통으로도 볼 수 있다. 그전까지는 막후에 있던 프런트가 전면에 나선다는 것은 그들의 비중을 감안했을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프런트의 성과를 공론화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그 막강한 권한만큼의 책임을 감수할 때 가능한 일이다. 최근 10년간, 성적 부진으로 잘린 감독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성적 부진으로 사장이나 단장이 교체된 경우는 이에 비해 훨씬 적다. 현장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떳떳함, 현장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포용력이 있을 때 프런트의 숨은 노력도 그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오너의 뒤에 숨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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