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예향(藝鄕)이다. 예로부터 전통과 예술을 중하게 여기다 보니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개발만이 살 길이라는 듯, 팔도가 중장비 기계 소음으로 몸살을 앓을 때도 전주는 고집스럽게 옛 것을 지켰다.
덕분에 전주는 ‘한옥마을’의 고장이 됐고, 이 장소는 전주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됐다. 예술을 중히 여기는 전통은 ‘전주국제영화제’를 탄생시켰다. 전통적 예향인 전주에서 치러지는 영화제는 왠지 그 품격도 달라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연기’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전주란 어떤 곳일까?

이름 난 배우는 아니지만 ‘제 16회 전주국제영화제’ 참가를 위해 전주행 차편에 오르는 배우 편보승(33)에게도 전주가 주는 감흥은 남다르다. 편보승은 ‘코인라커’라는 영화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참가한다.
편보승은 “일반인들은 전주하면 ‘예술의 도시’ 또는 ‘맛의 고장’을 떠올릴 테지만 배우들에게 전주라는 도시는 ‘영화제’가 가장 크게 와 닿을 듯해요. 배우로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영화제는 바로 꿈의 무대이니까요”라고 전주를 ‘꿈’과 연결시킨다.
편보승이 출연한 영화 ‘코인라커’(감독 김태경)는 자폐아 아이를 둔 젊은 여성 ‘연’이 겪게 되는 비정한 현실을 다룬 영화다. 남편마저 도박 빚을 지고 다니는 통에 ‘연’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그가 부딪히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 ‘각시탈’ 등에 출연한 손여은과 ‘GP506’ ‘후회하지 않아’ 등의 작품을 한 이영훈이 주연이다.
편보승은 이 영화에서 극중 자폐아 건호가 유일하게 소통하는 존재인 ‘곰인형’ 역을 맡았다. 편보승은 “배역이 조금 상상이 안 갈 수도 있을 텐데요. 곰인형은 영화에서 건호와 단둘이 있을 때만 사람의 형상으로 표현 돼요. 건호는 어머니조차도 말 한마디 소통할 수 없는 자폐아지만 ‘곰인형’과는 어떤 마음이든지 다 나누는 사이에요. 인형의 말은 건호의 속마음이기도 하고, 유일한 친구인 곰인형이 사람의 형상으로 보여질 때는 사실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호 모습이기도 하죠”라고 배역을 설명한다.
영화 ‘코인라커’는 전주국제 영화제 기간인 5월 2일과 4일, 야외무대인사 및 관객과의 만남이 예정 돼 있다. 개봉은 5월 28일. 편보승도 이 같은 일정을 위해 총총 전주로 향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든 아니든 그에게는 분명 ‘꿈의 무대’다.

지금은 영화 배우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개그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예전 ‘도전 60초’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개그계의 거장 김웅래 PD와 함께 일을 했다. KBS 위성TV에서 송출 된 ‘유머총집합’이라는 프로그램을 반년 이상 했다.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 강유미 정경미 등이 같은 무대에서 활동했고 미키 광수, 블랑카 정철규와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는 활동의 외연을 넓혔다. 여러 장르의 연기를 하고 싶어 연극무대에도 서고 뮤지컬도 했다. 그 무렵이 수원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시절인데 여기서 영화 ‘동감’의 김정권 교수를 만났다. 영화와의 인연은 김정권 감독을 만나면서 시작 된다.
편보승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인데요, 열 명중 아홉 명이 ‘네가 될까?’라고 했다면 감독님은 ‘편보승 너니까 돼’라고 응원해주셨던 분이죠.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상영될 영화에 저를 남자주연으로 캐스팅 해주셨어요. 상대 여배우는 박시은 선배였고요. 이후부터는 5년 째 영화만 하고 있습니다”라며 웃는다.
꽤 여러 작품에서 단역을 소화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삼인삼색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희정 감독의 ‘청포도 사탕’, 박해진 이영아 주연의 ‘설해’ 등에 출연했다. 양영철 감독의 ‘타인의 멜로디’에서는 주연이었다.

연기자 10년, 영화배우 5년의 그 이지만 아직은 크게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후회는 없다. “연기를 시작한 것에 대해서나, 개그를 계속 안 한 것에 대해서나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여러 무대 경험을 한 게 생각을 살찌게 만들어요. 5년, 10년 분명 성장하는 거니까 도전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전주에 얽힌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믿으실 지 모르지만 스물두 살이 넘어서 연애라는 것을 처음 해봤어요. 연애에 관해서 남들보다 뭐든지 늦은 편이었죠. 저는 서울사람이지만 처음 만난 여인이 바로 전주 사람이었어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전주로 제가 갔어요. 그렇게 한 2년 이상을 오갔는데, 전주가 추억에 크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죠.”
이렇다 보니 여행지로서 전주에 대한 기억도 많다. “주로 전북대 앞을 많이 가긴 했는데, 2002년 월드컵 스페인전 그 역사적인 순간을 전북대 옆에 있는 덕진공원에서 봤던 기억이 나요. 서울에서는 보통 동네를 언급할 때 강남에서 뭐했다, 신촌에서 만나자 이러잖아요? 근데 전주에서는 항상 ‘시내에 가면 있어’ ‘시내에서 만나자’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그게 무슨 의미인 지 몰랐는데 ‘시내’라고 할만한 지역이 한 군데밖에 없기 때문이었어요.”
한번 풀린 추억의 실타래는 술술 잘도 흐른다. “전북대도 보통 ‘북대’라고 해요. 놀 때는 ‘북대’와 ‘시내’ 그리고 힐링이 필요할 땐 전주한옥마을을 쭉 돌아보던 기억이 나요. 그러고 보니 영화 ‘약속’으로 유명한 전동성당 근처도 갔었네요. 하하하.”
외지인으로서 전주 음식에 대한 기억도 강렬하다. “처음 전주에 가서 먹은 것은 다들 아시는 전주비빔밥이었어요. 물론 맛은 있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진짜는 그 이후부터였어요. 식당에 들를 때마다 놀라운 반전이 펼쳐졌어요. 어지간한 식당에 가도 반찬이 8, 9가지 이상 나와요. 한 식당에서 당시 가격으로 4000원을 내고 백반을 시켰어요. 12첩 반찬이 나와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딱 3분 후에 메인요리로 떡갈비가 나왔어요. 맛까지 일품! 지금도 아마 6000원 정도하지 않을까요? 하하.”
전주영화제가 대안적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도 전주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저도 개인적으로 극장가서 흥행되고 있는 최신 작품들 보는 게 취미이고 주류영화에 누구보다 출연하고 싶은 배우입니다. 그에 비해 다수의 다양한 영화들이 저예산으로 제작되고 있고, 목적도 수익이 아닌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의 전주국제 영화제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들었어요. 실험적인 전문성 영화뿐 아니라 저예산이면서도 대중성 있는 작품들과 의 ‘조화’를 추진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 만들어진 영화도 소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타협해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라며 영화제 이야기를 다시 꺼낸 편보승은 “특히 저희 ‘코인라커’가 속한 ‘한국장편경쟁부문’에는 극장 개봉이 가능한 영화 위주로 선별했다고 기사에서 봤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주 국제 영화제는 어렵게 진심을 다해 만든 영화를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장을 열어주는 고마운 영화제이기도 해요”라고 각별하게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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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보승과 영화 ‘코인라커’, 그리고 ‘설해’의 출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