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선수들이 화려한 조명탑 불빛 아래 그라운드를 누빌 때 2군 선수들은 땡볕에서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오늘도 구슬땀을 흘립니다. "1군에서 선발로 한 번만 뛰어보고 싶다"는 2군 선수들의 꿈과 희망은 현실이 되기도 합니다. 내일의 스타를 꿈꾸며 오늘을 살고 있는 2군 유망주들을 OSEN이 한 명씩 소개합니다.
살벌한 약육강식의 세계인 프로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에 한 번 놀란다. 대화를 섞다 보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진중함이 느껴져 두 번 놀란다. 그리고 그 대화의 종착역에 있는 당찬 포부에 세 번 놀란다. SK 내야의 차세대 기대주로 평가받는 유서준(20)에 대한 첫 인상은 그렇다. 껍질을 까면 깔수록 새로운 매력이 느껴지는, 마치 양파와 같은 선수다.
유서준은 SK가 장기적으로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신진급 야수 중 하나다. 퓨처스팀(2군) 코칭스태프는 물론 육성 파트에서도 “유서준을 주목해서 보면 좋을 것”이라는 추천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다. 아직 팬들에게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못한 것이 더 많은 선수임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관계자들이 느끼는 잠재력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다.

▲ 굴곡의 1년, 성장의 자양분
2013년 가을. 유서준은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SK에 지명된 직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2군에 도착해 첫 날 연습을 한 직후였다. 팀으로부터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제 막 신인지명회의에서 SK의 선택을 받은 선수치고는 후한 대접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탄 미국행 비행기. 유서준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하지만 “신기하기도 했다”라고 떠올린다. 시작부터가 남달랐던 셈이다.
유서준은 2014년 신인지명회의에서 SK의 2라운드 전체 18번 지명을 받았다. 보통 상위픽이 투수에 집중되는 요즘 상황을 고려하면 지명순위는 꽤 높은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서준은 성남고 재학 시절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내야수 중 하나로 손꼽혔다. 맞히는 능력이 탁월하고 수비 잠재력이 크며 타고난 발을 가졌다는 것이 당시 스카우트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내야의 장기적인 세대교체를 준비하던 SK로서는 놓칠 수 없는 선수였다.
애리조나 교육리그에는 이건욱 박규민 이진석과 함께 신인급 선수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야수로서는 유일했다. 유서준에 대한 팀의 기대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찬 각오로 시작했던 프로 1년차는 부상으로 얼룩졌다. 부상으로 그라운드 밖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승승장구했던 유서준에게는 첫 시련이었다. 유서준은 “정말 뛰고 싶었는데 다쳐서 계속 재활군에 있었다”라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시련은 오히려 더 좋은 자양분이 됐다. 야구에 대한 열정을 더 키우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부상을 극복한 올 시즌에는 원 없이 뛰며 야구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2군에서는 주전급 내야수로 활약하며 경기 경험을 쌓는 중이다. 유서준운 “학생 때는 이렇게 많은 경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체력적인 부분이 걱정됐는데 동계훈련에서 준비를 많이 했다”라면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고 즐겁다. 걱정거리도 많지 않다”라고 밝게 대답했다.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청춘’이라는 두 단어가 새삼 실감났다.
▲ 근성의 아이콘이 되고 싶다
올 시즌 퓨처스리그 성적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비록 1군과는 수준이 다르지만 실질적인 루키 시즌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5일 현재 44경기에 나가 타율 3할8리, 1홈런, 21타점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44경기에서 무려 20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나날이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공·수·주를 모두 갖춘 재목”이라던 SK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원정 6연전, 홈·원정으로 나뉘는 것도 새롭다”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유서준이지만 각오는 다부지다. 유서준은 기술적으로 바뀐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내가 바꾼 것은 없다”라고 답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무장을 한층 단단히 했다고 덧붙였다. 유서준은 “작년에는 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들어오면서 ‘올해는 반드시 내 실력을 보여줘야 겠다’라고 다짐했다. 다치지 않고 열심히 해서 최대한 경기를 많이 뛰는 것이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이런 당찬 신인을 지켜보는 코칭스태프와 선배들도 기특한 듯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세이케 감독과 박정환 코치는 물론, 김연훈 안정광 최정민 등 선배들도 유서준에게 조언을 건네는 단골손님들이다. 유서준은 “한 마디씩 말씀하시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라고 고마워했다. 그렇다면 이런 당찬 신인의 올해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에 유서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현실적이고, 그래서 실천 가능한 목표를 내놨다.
유서준은 “아무래도 내가 장거리 타자의 이미지는 아니다. 대신 빠른 이미지, 그리고 열심히 하는 근성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랬다”라면서 “빠릿빠릿하게, 그리고 신인답게 움직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당연히 1군 진입에 대한 목표가 있음을 애써 숨기지는 않는다. 그 목표를 위해 오늘도 더러워지는 유니폼을 훈장처럼 생각하며 뛰는 유서준이다. 만능 플레이어라는 유서준의 ‘네 번째 매력’이 그라운드에서 발현되는 순간, SK는 향후 10년을 책임질 내야 자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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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