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년). 당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이미연 김보성 변우민 최진영이 출연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2탄으로 만든 학원드라마다. 목적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서 의미를 찾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혼다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뉴 레전드’를 만나고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 가끔은 창을 내리고 하늘을 보자.”
‘레전드’는 일부러 창을 내리지 않으면 잘 깨닫지 못하는 몇 가지가 있다. ‘차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 지’ 알기 어렵고 ‘차가 얼마나 조용하게 달리는 지’도 깨닫기 쉽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창을 내릴 필요가 있다. 막히는 도로에서 창을 내려 되레 여유를 즐기는 모습도 추천할만하다. 운전은 ‘뉴 레전드’가 알아서 해 준다.

▲ 5세대 ‘뉴 레전드’, 창을 내려야 알 수 있는 것들
‘뉴 레전드’는 1985년 혼다의 최상위 플래그십으로 출범한 ‘레전드’의 5세대 모델이다. 국내에 2006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레전드’는 북미에서는 ‘아큐라 RLX’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이번 5세대 모델에는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장착해 ‘프리미엄 퍼포먼스’를 추구했고, 각종 첨단 기술과 프리미엄 사양들을 적용해 ‘플래그십’다운 면모를 갖췄다.
조향 안정성을 크게 높인 ‘P-AWS(Precision All Steer)’ 시스템, V6 엔진으로 뽑아내는 아찔한 주행 성능, 크렐(Krell)사의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정숙성이 운전자에게 감동을 준다.

▲ 고성능 스포츠 세단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들
5세대 레전드에 부여 된 ‘프리미엄 퍼포먼스’라는 개발 콘셉트는 고성능 스포츠 세단을 연상케 하는 장치들을 갖추게 했다. 도로 환경에 따라 간단한 조작으로 다운 시프트를 가능하게 한 패들시프트는 자동변속기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순간 대응력을 높였다. 파워 넘치고 스포티한 변속 패턴을 위한 ‘스포츠 모드’도 변속 레버 옆에 있었지만 실제 운전에서 쓸 일은 거의 없다. 자동 드라이버 모드와 패들시프트 만으로도 충분한 대응력을 보여 줬다.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 갖춰야 할 요소는 파워트레인에 머무르지 않는다. 조향 안전성은 차량의 주행성능을 빛내준다. 한적한 도로에서 급차선 변경을 시도해 봤다. 체조선수가 만점 연기 후 착지하듯 옆 차선에 사뿐히 자리잡았다. 벌처럼 날아 나비처럼 내려 앉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또 하고 싶어졌다. 급차선 변경에 재미 들릴까 염려스럽다.

혼다가 ‘세계 최초’라고 자랑하는 정밀 조향 기술이 뒷배에 있었다. 혼다는 이 기술을 P-AWS(Precision-All Wheel Steer)라 불렀다. ‘정밀 4륜 조향 시스템’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뉴 레전드’의 뒷면에는 ‘P-AWS’ 마크가 선명하게 부착돼 있다.
‘P-AWS’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러 있던 뒷바퀴에 능동성을 부여한 기술이다. 제동이나 차선변경, 방향 전환 시 뒷바퀴를 능동적으로 움직여 조향성능을 높여준다.

제동 페달을 밟으면 후륜 리어 토(Rear Toe)가 작동해 두 뒷바퀴가 안짱다리처럼 안쪽으로 정렬 되게 한다.
코너 회전에서는 2단계로 움직인다. 오른 쪽 회전을 예를 들면 회전을 시작할 시점에는 회전축의 안쪽, 즉 오른쪽 뒷바퀴가 바깥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아 준비에 들어간다. 이어 본격적인 회전이 시작되면 바깥쪽 바퀴까지 양바퀴가 회전축의 바깥쪽으로 방향을 잡아 안정적인 회전이 되도록 돕는다.
주행 중 차선변경에도 ‘P-AWS’이 개입한다. 차선 변경을 시도하면 앞바퀴가 가능 방향으로 양 뒷바퀴도 동시에 방향을 틀어 민첩한 변경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 차안으로 들어온 콘서트 홀
소음을 줄이는 기술도 눈길을 끈다. 도로를 달리고 있는 ‘뉴 레전드’의 운전석에는 멀리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린다. 분명 들리기는 하는데 풍절음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늘고 성가심도 없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ctive Noise Control)과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Active Sound Control)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실내로 유입되는 부밍(Booming)음을 실내에 설치 된 2개의 마이크로폰으로 감지한 뒤 반대 되는 음파를 스피커로 내보내 소음을 최소화 시키는 기술이다. ANC는 노면에서 발생 되는 소음을 오버헤드 마이크와 프로세서를 통해 줄여주고, ASC는 음압을 엔진의 선형 소음과 유사하게 만들어 엔진음을 완화한다. ‘소리’로 ‘소리’를 다루니 운전자의 귀가 편해졌다.
오디오 시스템은 30여 년간 최고급 홈 오디오 시스템을 개발해 온 크렐(Krell)사의 기술력을 도입했다. 크렐의 오디오가 자동차에 적용 된 것은 레전드가 처음이다.

크렐은 4년여의 개발 과정을 거쳐 레전드 스피커 시스템을 완성했다. 차량 곳곳에는 14개의 고품질 스테레오 스피커와 앰프가 숨어 있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자동차 안에서 콘서트 홀 수준의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레전드에 적용한 크렐의 스피커는 초경량 마그네슘 진동판을 사용해 높은 진동수에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 됐다. 문짝과 후면 데크에 자리잡은 6.7인치 자일론 스피커는 자일론(Zylon)이라는 슈퍼섬유로 진동판을 만들었다.
▲ 단거리에 자존심을 걸지 말라
녹색불이 켜져도 체구가 있다 보니 작정한 상황이 아니라면 액셀러레이터를 한껏 밟기가 쉽지 않다. 주변의 차들이 빠르게 치고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뉴 레전드’는 이런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봐도 무방하다. 뒷심이 붙기 시작하는 순간, 도로를 제압하는 파워를 갖추고 있었다.
혼다는 5세대 레전드를 출시하면서 퍼포먼스를 강화했다. 혼다의 차세대 파워트레인 기술인 ‘어스 드림 테크놀리지(Earth Dreams Technology)’를 적용한 3.5L i-VTEC V6 직분사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조합 된 ‘뉴 레전드’는 341마력의 출력을 낸다. 최대토크도 37.6kg∙m에 이른다. 스타트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중장거리 선수다.
달리면서 힘을 얻어가는 ‘뉴 레전드’는 도심 8.1km/ℓ, 고속도로 12.6km/ℓ의 연비를 보인다. 복합연비는 9.7km/ℓ. 서울 외곽 신도시와 도시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운행한 결과 얻은 트립상의 연비도 공인연비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리터당 11.6km 언저리의 연비 성능을 보였다.
▲ 자율 주행의 현실 단계
사전적 의미의 자율주행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차가 알아서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경우 운전의 재미를 빼앗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실적 단계에서의 자율주행은 운전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운전자의 피로도를 도와주는 기능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뉴 레전드’의 안전 기능들이 수행하는 역도 ‘반 자율주행’에 효율적으로 다가가 있었다. 주말 나들이객으로 북적거리는 서울 외곽 국도. 차량이 많아서 막히고, 신호가 있어서 또 막혔다. 자동감응식 정속 주행 장치(ACC, Adaptive Cruise Control)와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LKAS, Lane Keeping Assist System)을 가동시켰다.
크루즈 컨트롤을 도로 허용 최고 속도에 맞춰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앞차와의 간극은 최단 단계로 설정했다. 스티어링 휠을 가볍게 잡고 차량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은 브레이크 페달 위, 대기상태를 유지했다. ‘뉴 레전드’는 앞차의 움직임을 감지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달렸다. 정체가 심해 앞차가 완전히 멈춰서면 ‘뉴 레전드’도 움직임을 멈췄다. 앞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가볍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다시 착한 유치원생들처럼 줄을 맞춰 움직였다.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LKAS)은 완전히 의지할 단계는 아니지만 충실한 조수 기능은 해내고 있었다. 차가 차선을 이탈하면 경고음을 내면서 차로의 중앙으로 방향을 잡아 준다. 자동감응식 정속 주행장치는 막히는 도로에서 매우 유용했고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은 고속도로 주행에서 쓸만한 동반자가 됐다.
‘뉴 레전드’는 기존의 자동감응식 정속 주행장치에다 저속 추종 시스템(LFS, Low Speed Following)을 가미해 선행 차량과 차간 거리와 속도를 맞춘 주행을 가능하게 했다. 룸미러 앞쪽에 달린 카메라와 프런트 그릴 안쪽에 배치 된 밀리파 레이더가 선행차량을 감지하고 있었다.
▲ 보석 눈(주얼 아이 LED)이 만들어내는 자연광
‘뉴 레전드’의 외관에서 받는 가장 강렬한 포인트는 역시 ‘눈’이다. ‘눈’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이유는 알알이 박힌 보석 LED가 곤충의 눈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뉴 레전드’의 헤드램프는 보석을 형상화 해 개발 됐다. 그래서 이름도 ‘주얼 아이(Jewel Eye LED)’다.

곤충의 눈이 떠오르는 것은 디자인에 때문만은 아니다. 각각의 ‘보석 눈’이 광각을 감지하는 곤충의 그것처럼 각기 다른 각도의 영역을 비춘다. 운전자의 앞길을 넓은 영역에서 밝혀주기 때문에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에서도 엄습해오는 외로움이 없다. 보석을 두 줄로 수놓은 듯한 정교함과 아름다움이 자연광에 가까운 빛을 만들어 낸다.
실내공간은 한눈에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종전보다 오버행은 50mm가 줄었고, 축거는 50mm가 늘었는데 이로 인한 효과는 상당히 컸다. 승차공간은 2,890리터로 앞뒷좌석 모두 널찍한 레그룸을 확보하고 있었다. 트렁크는 422리터로 골프백 4개를 적재할 수 있다.

뉴 레전드는 6,480만원(부가세 포함)에 판매되며, 색상은 실버, 블랙, 메탈, 화이트 등 4가지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