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후 4년 동안 잃어버렸던 진짜 내 밸런스를 찾아가는 것 같다.”
LG 트윈스 선발투수 류제국(32)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류제국은 지난달 29일 잠실 삼성전에서 7이닝 3실점을 시작으로 지난 4일 마산 NC전 7이닝 1실점, 10일 잠실 두산전서도 7이닝 1실점으로 3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3실점 이하)를 달성했다. LG 또한 류제국의 호투로 NC전에선 올 시즌 첫 3연전 스윕을, 두산전에선 3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닝이다. 류제국이 KBO리그에서 3경기 연속 7이닝 이상을 소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 2013시즌부터 KBO리그에서 뛰기 시작한 류제국은 지난 2시즌 동안 단 한 차례도 2경기 연속 7이닝을 소화한 적이 없었다. 류제국 자신도 두산전을 마친 후 “승리를 거둬서 기쁘지만 무엇보다도 3경기 연속 7이닝이상을 던진 게 가장 기쁘다”며 이닝소화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만큼 효율적이다. 아직 표본은 적지만 올 시즌 류제국의 이닝당 평균 투구수는 15.2개에 불과하다. 경기당 평균 6이닝을 소화하며 경기당 평균 93.5개의 공을 던진다. 2013시즌에는 이닝당 평균 투구수 17.5개·경기당 평균 5⅓이닝 소화·경기당 투구수 97.8개였다. 2014시즌에는 이닝당 평균 투구수 17.9개·경기당 평균 5⅓이닝 소화·경기당 투구수 97.8개를 기록했다. 지난 두 시즌과 비교해 훨씬 효율적인 투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그냥 이뤄진 것은 절대 아니다. 2014시즌 초반의 시련이 류제국에게는 예전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2013시즌 12승 2패 평균자책점 3.87로 화려하게 KBO리그 첫 해를 보낸 류제국은 2014시즌에는 첫 승을 따내기까지 9경기·53일이 걸렸다. 그만큼 성적도 안 좋았다. 탈삼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표에서 2013시즌보다 못했다. 이전에 비해 구속이 떨어지거나 변화구의 각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대량 실점하는 경기가 부쩍 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왼쪽 무릎까지 아팠다.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그대로 시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무릎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즌 중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그러면서 류제국은 여기저기에 조언을 구했다.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은 물론, 당시 해설위원을 역임했던 차명석 수석코치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차 코치는 볼배합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메이저리그 투수 R.A. 디키(41·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자서전을 류제국에게 선물했다. 디키의 자서전에는 이러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요즘 야구계는 구속에 완전히 목숨을 걸고 있다. 어디서나 레이더 건으로 구속을 측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구 역사상 이 레이더 건보다 더 투수 평가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장비도 없을 것이다. 투수들은 이 기괴한 물건이 자기 구속을 얼마로 측정하는지 무척 알고 싶어 한다. 구속이 시속 160km를 넘으면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수근 거린다.’
2012시즌 20승 6패 233⅔이닝 평균자책점 2.73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디키는 너클볼러가 되면서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원래 디키는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는 전도유망한 우완 파이어볼러였지만, 그에게 메이저리그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서른 살이 훌쩍 넘어서까지 마이너리그에 머물렀고, KBO리그 진출을 생각하기도 했다.
디키는 메이저리그 재도전과 KBO리그행의 갈림길에서 너클볼러 변신을 다짐하며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를 응시했다. 150km 강속구를 버리고 100km가 안 되는 너클볼을 컨트롤하는 데에 목숨을 걸었다. 좌충우돌 끝에 너클볼을 제어하기 시작했고, 2010시즌 뉴욕 메츠 선발진에 진입, 풀타임을 소화하며 성공가도를 열었다. 130km대 고속 너클볼을 주무기로 빅리그를 평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류제국은 차 코치의 조언을 통해 효과적인 볼배합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디키의 자서전으로 자신이 가장 좋았을 때의 투구를 돌아봤다.
류제국은 “디키의 자서전을 보면 디키의 마이너리그 시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나도 예전에 다 경험했던 일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마이너리거의 생활, 마이너리그 구장들이 나온다. 그래서 내게는 특히 더 공감이 되는 것 같다”며 “내게 있어 2005년은 처음으로 투구가 무엇인지 알게 한 해였다. 이때 투수 류제국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나는 어린 디키처럼 공이 빨랐다. 97, 98마일(156~158km)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구위만큼 결과가 좋지 않았었다. 선발 등판 때마다 투구수가 많아 나가면 5이닝 밖에 못 던졌다. 당시 마이너리그 투수코치께서 ‘투구수 100개 5이닝 10탈삼진 3실점과 투구수 100개 8이닝 탈삼진 0개 3실점 중에 뭐가 더 좋나?’고 물어보시더라. 당연히 후자라고 답했다.”
2005시즌 류제국은 마이너리그 웨스트 테네시 소속으로 27경기에 선발 등판, 169⅔이닝을 소화하며 11승 8패 평균자책점 3.34를 기록했다. 현재 미네소타 트윈스 선발투수인 리키 놀라스코와 완투펀치를 이뤘다. 류제국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 이닝을 소화한 해이며, 류제국 스스로 가장 좋은 컨디션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공을 던졌던 시기라고 한다. 2005시즌을 보내며 류제국이 정립한 투구이론은 다음과 같다.
“투수는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다. 150km 공을 던지든 120km 공을 던지든 아웃카운트만 잡는다면 상관이 없다. 당시 투수코치님이 리반 에르난데스의 예를 드셨다. 에르난데스는 플로리다 시절 97, 98마일의 공을 던졌지만, 지금은 88마일만 던진다고 했다.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굳이 힘들여서 던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나도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맞혀 잡는 게 무엇인지, 범타를 유도해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게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갔고, 큰 효과를 봤다. 이후 수술을 했는데, 돌아보면 이 때만큼 잘 던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류제국은 2014시즌 후반기부터 자신이 찾은 답안을 마운드 위에서 펼쳐보였다. 2014년 8월 19일 목동 넥센전부터 패스트볼을 통한 땅볼 유도에 눈을 떴고, 사사구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시즌 종료까지 류제국은 4승 1패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했다. 경기당 5⅔이닝을 소화했고, 이닝당 투구수 17.2개, 경기당 투구수 101개로 효율적인 투구, 승리를 가져오는 투구가 무엇인지 증명했다. 포스트시즌에선 준플레이오프 시리즈 1차전과 4차전을 책임지며 LG의 플레이오프 시리즈 진출까지 이끌었다.
2014시즌을 마치고 나서는 곧바로 미뤘던 무릎 수술을 받았다. 복귀까지 6개월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겨울 내내 재활에 매진했다. 지난 4월 실전 등판을 눈앞에 둔 류제국은 이천 챔피언스파크에서 퓨처스리그 경기를 바라봤다. 당시 한 투수가 볼넷을 남발하며 자멸했는데 “지난해 초중반 내가 안 좋았을 때의 모습이 딱 저랬다. 맞지 않으려고 도망만 다녔다. 밖에서 보면 정말 답답했을 것이다. 앞으로 저렇게 던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고 복귀 의지를 불태웠다.
류제국의 2015시즌 스타트는 5월 9일 수원 kt전이었다. 5⅔이닝 3실점으로 무난한 출발점을 끊었고, 5월 17일 잠실 SK전에선 7이닝 4실점으로 시즌 첫 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5월 23일 사직 롯데전에서 3⅓이닝 9실점으로 붕괴. 한국에 돌아온 후 최악의 투구를 했다. 홈런만 4개를 허용하며 와르르 무너졌다.
류제국은 “태어나서 한 경기서 홈런 4방을 맞은 게 메이저리그 데뷔전과 롯데전 두 번 뿐이다. 정말 내 자신에게 실망이 컸다. 경기 후 호텔방에서 오랫동안 혼자 있었다”고 당시의 괴로운 심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고 다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류제국은 “앞으로 야구를 많이 해야 7년 하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나 싶더라.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더 소중하게 매 경기를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주위로부터 내 문제점을 더 열심히 듣게 됐다. 종합하니 홈런의 원인은 포심 패스트볼에 있었다. 그래서 점점 포심 대신 투심의 비중을 높게 가져가고 있다”고 답안을 이야기했다. 류제국의 최근 3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는 롯데전 다음 선발 등판부터 시작됐다.
이렇게 류제국은 시련을 통해 한 단계씩 올라서고 있다. 2013년 2월 LG 유니폼을 입은 류제국은 미국에서 보낸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메이저리거의 꿈을 안고 미국에 갔다. 정말 고생도 많이 했고, 억울한 일도 당했지만, 후회는 없다. 미국에서 보낸 20대 시절이 있었기에 더 나은 야구선수가 됐고,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양상문 감독은 지난 10일 경기 후 류제국을 두고 “제국이가 작년보다 공의 변화가 크고 로케이션도 낮아졌다. 그러면서 투구수가 줄어들어 이닝도 늘어났다. 지난해보다 좋은 투구를 하고 있다”고 류제국이 한 단계 올라섰음을 전했다. 류제국 또한 “요즘 밸런스가 많이 좋아졌다. 한국에 돌아온 후 4년 동안 잃어버렸던 진짜 내 밸런스를 찾아가는 것 같다. 언제든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자신의 진화가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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