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함과 조급함 사이’ SK, 무게 잡아야 산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6.27 05: 56

‘독하다’와 ‘조급하다’. 보는 시선에 따라 해석은 다소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감의 차이는 확실히 난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가 훨씬 더 부정적이다. 그러나 두 단어는 ‘뭔가 정상은 아닌 현상’이라는 공통적인 분모에서 출발한다. 같은 현상을 보면서 두 단어를 모두 떠올릴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SK의 시즌 중반 과제는 이 두 단어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일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반등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다면 내내 쫓기다 시즌이 끝날 수도 있다.
SK는 24일과 2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모두 이기고 승률 5할을 회복했다. 그런데 불펜 운영에 있어서 다소간 논란이 있었던 연승이기도 했다. SK는 24일 6-3으로 앞선 6회 불펜 필승조를 동원했다. 선발 박종훈은 5이닝 동안 71개의 투구수만을 기록한 상황이라 투입 시점은 다소 이른 감이 있었다. 결국 문광은(1⅓이닝, 42개) 윤길현(1⅓이닝, 23개) 정우람(1⅓이닝, 17개)이 모두 나와 승리를 마무리했다.
24일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세 선수는 휴식 시간이 충분했다. 그런데 25일은 논란이 됐다. SK는 6이닝 동안 109개의 공을 던진 선발 트래비스 밴와트에 이어 7회 불펜 가동을 결정했다. 시점은 8-3으로 앞선 상황이었다. 한 이닝 정도는 필승조를 아낄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SK 벤치는 독한 승부수를 걸었다. 7회 윤길현에 이어 8-4로 앞선 8회 전날 42개를 던진 문광은을 다시 마운드에 올렸다.

투수교체는 결과론이다. 결과가 좋으면 과실이 따라온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문광은은 사사구 세 개를 내주더니 1실점했고 결국 정우람이 1⅔이닝을 책임지며 간신히 경기를 틀어막았다. 1이닝 세이브와 1이닝 이상 세이브는 분명 다르다. 이닝 중간에 한 번 더 대기해야 하고 몸을 풀어야 한다. 피로도에서 차이가 난다. 여기에 이날은 비까지 내려 투수들이 고전한 경기였다. 그렇게 문광은은 20개, 정우람은 37개의 공을 던졌다.
“이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라는 벤치의 강한 의도가 묻어나온 결정이었다. 이에 대해 김용희 감독도 문광은의 경우 다소 무리가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 감독은 “투구수 35개가 넘은 선수는 다음날 쉬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잡아야 할 경기였다며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 다시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SK는 이날 이겼고 SK 벤치는 원하던 목적을 달성했다.
승리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 그리고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사뭇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는 독한 승부수라고, 누군가는 조급한 승부수라고 평가한다. 시즌 초반과는 사뭇 다른 불펜 운영이었기에 더 그렇다. SK는 주축 불펜 요원들의 체력을 최대한 안배하는 불펜 운영을 펼쳤다. 요소요소 작은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이런 시스템은 힘을 발휘했다. 불펜 투수들의 구위는 꾸준히 좋게 이어졌고 평균자책점 등 기록은 삼성과 리그 최고를 다퉜다. 하지만 6월 들어 두산전과 같은 불펜 운영이 잦아지고 있다. 구위는 점점 떨어진다. 기록과 육안으로 모두 드러난다.
흔히 말하는 SK의 시스템 불펜에 이런 ‘총력전 시나리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대목 중 하나다. 초반에 힘을 아껴 중·후반 필요할 때는 주축 선수들의 3연투, 다소간의 무리를 감수하더라도 주축 선수들을 총동원하는 시나리오는 이미 시즌 초부터 예고된 바다. 문제는 그 시기가 당겨졌다는 것이다. 김 감독도 시즌 후반의 운영 시나리오가 지금 나온다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데 동의한다.
결국 팀 사정 때문이다. 5월 중순까지만 해도 리그 1위를 다퉜던 SK는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최악의 부진을 보이더니 결국 지금은 5할 승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시즌의 절반도 치르지 않았지만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 일단 여기서 버텨야 한다’라는 분위기는 숨길 수 없다. 김 감독도 두산과의 2경기를 모두 잡으면서 ‘숫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력전은 반드시 그 후유증을 남긴다. 5월까지 관리가 잘 됐던 불펜투수들의 체력은 6월 들어 하향곡선이다.
물론 독한 승부수 한 번 던지지 않고 시즌을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기가 예상보다 조금 앞당겨졌을 뿐, 승부수 자체에 토를 달 수 없다. 외부에서는 모르는 팀 내 사정도 분명히 존재한다. 벤치의 판단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독한 승부수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조급한 승부수로 비춰질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단에 전달되는 무언의 메시지다. “오늘 경기를 잡아야 하는구나”와 “코칭스태프가 조급하구나”는 천지차이다. 소통도 반드시 필요해졌다.
호시탐탐 반등의 기회를 보고 있는 SK는 그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비록 지금까지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SK의 객관적 전력은 괜찮다. 4위 넥센과의 승차는 3경기로 절대적인 수치에서 아직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선수단 분위기도 좋다. 타선의 초반 부진은, 평균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역설적인 기대감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당장의 승부수는 물론 미래를 내다보는 긴 호흡이 모두 필요한 이유다. 완급조절을 잘 하면서 차분히 시즌을 풀어나간다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앞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단어는 조급함이다. 벤치나 선수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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