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박충식, "대구구장서 우승 못한 것이 恨"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5.10.03 06: 08

"이곳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대구구장의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가 치러진 2일,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스타들이 초대받았다. 그 중에서도 3명의 레전드가 시투·시타·시포를 맡아 대구 골수 야구팬들의 오래된 향수를 자극했다. 시타를 맡은 양준혁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2010년 삼성에서 성대한 은퇴식으로 화려하게 은퇴했지만 모처럼 삼성 옛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이만수 전 SK 감독, 박충식 선수협 사무총장도 눈길을 끌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 이만수, "장미꽃 100송이에 눈물"

1982년 원년부터 1997년 은퇴할 때까지 삼성에서 16년을 뛴 이만수 전 감독이 초창기 최고 스타였다. 대구구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 이 감독은 KBO 최초의 개인 통산 100홈런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이 전 감독은 "100홈런이 첫째로 기억이 난다. 해태 김봉연 선배와 100호 홈런을 누가 먼저 칠지가 굉장한 이슈였다. 1986년 9월2일 이곳 대구구장에서 빙그레 천창호 선배에게 장외 홈런을 쳤다. 100호 홈런볼을 잡은 관중이 동명이인 이만수라서 기억이 더 난다"고 웃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삼성 유니폼이 아닌 SK 수석코치로 적이 돼 대구구장을 찾은 2007년 5월22일. 10년 만에 대구구장으로 돌아온 이만수를 향해 대구 팬들은 장미꽃 100송이를 원정팀 덕아웃에 던지며 옛 스타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이 전 감독은 "아이스링크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야구장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그때 대구구장에는 아내와 두 아들도 왔는데 장미꽃을 보고 많이 울었다. 나도 감격스러웠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날 마지막 경기에서도 이 전 감독 곁에는 가족들이 있었고, 그때 그 시절 추억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 박충식, "181구, 더 던질 수 있었다"
박충식 선수협 사무총장은 1990년대 삼성의 에이스급 선발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 스스로 "전 레전드가 아니다. 더 나은 선배·후배님들이 많은데 이 자리에 서도 되나 싶다"면서도 "고향이 전라도 광주인데도 대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대구구장 마지막 날 시구를 할 수 있었던 건 팬들의 사랑과 함께 181구를 던진 그 경기 때문일 것이다"고 말했다. 1993년 10월2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해태 한국시리즈 3차전, 삼성 선발 박충식은 15이닝 181구 완투를 했다.
그러나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나 끝내 완투승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박 총장은 "그때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큰 경기인데도 큰 경기란 생각이 들지 않고 한 타자에 집중했다. 15회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이닝 제한이 없었더라면 더 던질 수 있었다. 결과를 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허탈함이 있었다"며 "해태 멤버들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겨서 우승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강했다"고 기억했다.
▲ 끝내 회한으로 남은 우승
통합우승 4연패에 빛나는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만 7번이나 된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KBO리그 최고 명문팀이지만 우승을 이루지 못하며 만년 2인자로 머물던 시절이 있었다. 이만수와 박충식은 대구구장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못내 아쉬운 점으로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을 꼽았다. 이만수의 삼성은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이뤘으나 한국시리즈 우승은 없었고, 박충식은 1993년 한국시리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전 감독은 "대구구장에서 준우승을 많이 한 것이 지금까지도 아쉽다. 삼성이 준우승할 때마다 감독님들이 전부 다 물러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때 당시 감독님들께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 컸다. 특히 스승 정동진 감독님이 1990년 리그 1위를 달리다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4연패하는 바람에 물러나셨다. 감독님 건강도 안 좋으셨는데 마지막 경기가 되니 그런 기억들이 여러 가지로 오버랩 된다"고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박 총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광주 출신으로 아는 사람도 없는 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부담도 됐다. 그래도 대구 팬들의 사랑을 받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서도 "제일 아쉬운 건 우승을 못한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절 함께 한 다른 선배님들도 마찬가지이실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절친한 양준혁을 가리켜 "저기 머리 큰 선수는 나중에 우승했지만 난 못했다. 요즘도 그때 못 쳐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한다"며 웃었다. 훗날 3번 우승한 양준혁이 부러운 표정이었다. /waw@osen.co.kr
[사진] 대구=최규한 기자 dremae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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