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물밑에서 움직여 온 에이전트 제도(대리인 제도)를 놓고 야구계가 갑론을박을 벌일 기세다. 이번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순작용과 부작용이 뚜렷하게 드러난 가운데 오는 9일과 10일 열릴 KBO 윈터미팅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FA 시장에서는 박석민(NC, 4년 옵션 포함 총액 96억 원)이 종전 FA 최고액 기록을 경신하는 등 대어들이 대형계약을 체결해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야구계에서는 이에 대해 "뒤에서 움직이는 에이전트들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라고 보고 있다. 아직 KBO는 에이전트 제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웬만한 대형 스타들은 모두 뒤에 에이전트들이 있다는 것이 이번 FA 시장을 통해 적나라하게 밝혀진 상황이다.
실제 각 구단들이 의심하고 있는 '탬퍼링'은 에이전트들이 주도적인 몫을 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선수들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 에이전트들이 몰래 타 팀을 만나 세부적인 계약 조건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몇몇 선수들의 에이전트는 원소속구단의 제시액을 듣고 협상시간 중 타 팀과 접촉해 흥정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에이전트들이 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에이전트는 선수들을 위한 제도다. 메이저리그(MLB) 등 야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연봉 및 이적 협상은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에이전트들이 협상을 책임진다. 선수들은 에이전트들에게 별도의 수수료를 주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할 제도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재 KBO 리그 자체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무자격'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협상의 공식적 주체가 될 수 없기에 '불법'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아는 대다수의 에이전트들은 아직까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제도 개설이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괜히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에이전트는 구단을 난색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에이전트들이 구단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한 선수의 에이전트는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해달라"라며 구단과 마찰을 빚는 등 현 제도상 구단이 수용하기 힘든 무리한 요구를 해 에이전트계에서도 혀를 찬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에이전트들에 대해 구단도 공식적으로 머리를 맞댄다. 오는 9일과 10일 열리는 윈터미팅에서 현 에이전트들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공식 수용 방향을 놓고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구단들이 에이전트제 도입에 대해 마냥 반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세로 정착되고 있고 장기적인 파도를 막을 수는 없는 만큼 적법한 수용 범위를 놓고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에이전트'의 자격 요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처럼 인맥을 통해 무분별하게 뛰어드는 것이 아닌, 적절한 자격 요건을 만들고 그 자격을 충족시키는 자에게는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에이전트 면허를 발급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법률 지식을 측정하기 위한 변호사 요건 등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라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처음에는 다소 진통이 있겠지만 에이전트 산업 성장을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의미도 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도 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찬성의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몇몇 부분에서 마찰이 있다고 들었다. 그럴 바에는 아예 합법화하고 자격 요건을 두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라면서 "에이전트들이 일부 고액 몸값 선수들이나 예비 FA 선수들에게만 몰릴 가능성이 있다. 그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이전트제를 놓고 KBO가 1~2년 내 어떤 실마리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