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사람' 슈틸리케의 모든 것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5.12.08 16: 34

한국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이 아닌 '사람' 울리 슈틸리케(61)도 진한 향기를 풍겼다.
슈틸리케 감독이 2015년을 마감하며 그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가족, 한국 사람과 음식, 어릴 적 꿈, 좋아하는 축구팀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입을 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8일 오후 아산정책연구원강당서 열린 2015년 송년 기자단 간담회서 그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인간' 슈틸리케의 얘기를 들려줬다.  

▲가족
슈틸리케 감독은 '사모님이 한국 생활에 만족하나'라는 질문에 수 십년 전의 달달한 러브스토리를 들려줬다. "18세 때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했는데 당시 부모님이 학업을 마친 후 이적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적 후 6개월 정도 축구와 학업을 병행했다. 아내는 당시 학업을 병행할 때 학교서 만났다. 내가 축구를 하는지도 몰라 축구와 관련이 없는 상황서 만났다. 마드리드로 가기 1년 전 22살에 결혼했다. 아내는 묀헨글라트바흐가 고향이다. 양가 부모님과 독립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했다. 39년의 결혼 생활 동안 항상 함께 했다. 많은 지도자의 삶은 기러기 아빠다. 39년을 곁에서 지켜줬다. 한편으로는 축구인인 게 참 다행인 게 39년의 반 정도는 합숙, 소집 등으로 집에 없었던 것 같다. 부부 문제는 누구나 겪는다. 때로는 결혼을 하는 커플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하는데 몇 달 뒤엔 이혼을 하는 걸 본다. 누구나 다 성격의 차이는 겪을 수 있다. 우리 또한 그런 점이 있지만 잘 극복하고 있다. 지도자 생활도 똑같다. 업무상 계약을 맺었을 때 협회에서 많은 간섭을 하면 어느 순간 파행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
스페인에 있는 자유분방한 아들과 의사 사위 그리고 딸의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풀어놓았다. "아들은 딸의 이미지와 180도 다르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산다. 머리를 엉덩이까지 내려오게 길렀다. 자유분방하게 살고 있다. 딸보다 아들이 훨씬 나이가 많다. 딸은 3~4년 전에 결혼했고, 아들은 아직 여자친구와 인생을 즐기면서 산다. 아들과 딸의 성격을 비교하자면 휴가를 간다고 치면 딸은 1주일 전에 꼼꼼하게 가방도 다 싸놓고 빠뜨리는 게 없을 것이다. 아들은 떠나기 1시간 전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빼놓고 가는 게 한 두 가지 있을 것이다. 이런 성격의 차이도 둘의 하는 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딸은 행정업무를 하고 있는 반면 아들은 어린 시절 취미가 윈드서핑이었는데 관련된 개인학원을 하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뭘하고 있는지 아들에겐 관심 밖의 일인 것 같다."
의사 사위에 대해서는 "독일이나 스페인서는 의사 사위에 대한 특별한 게 없다. 딸과 사위는 만 15~16세부터 교제를 해서 만났다. 의사가 될지 모르는 나이다. 사위 클립이 의사가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사돈도 의사인데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사위도 그곳에서 일하고, 딸도 의사는 아니지만 함께 병원서 일한다. 사회적 지위나 직함이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딸이 의사든 대기업 직원이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고 답했다.
▲한국
한국 생활을 하면서 한국 사람이 좋았던 점에 대해서는 "나도 어렸을 때 축구 선수 혹은 감독이 될지 몰랐다.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많이 노력했다. 운도 따랐다. 내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 잊지 않고 있어 항상 주변인을 챙기려고 한다. 처음에 음식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지금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파주에 가서도 처음 일주일 동안은 나와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줬다. 지금은 선수들과 똑같이 한국 음식을 잘 먹으며 지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생활할 때 현지인이 무엇을 해줄지 기대하는 것보다는 적응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나도 외국 생활을 많이 해봐서 점차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숯불구이다. "개인적으로 자주 즐겨 먹는 게 숯불구이다. 한국 어디를 가도 고기는 다 맛있다. 한우가 워낙 맛있기 때문에 즐겨 먹는다. 메뉴보다 제일 중요한 게 누구와 함께, 무엇과 곁들여 먹느냐다. 고기도 물과 먹으면 맛이 없다. 맥주나 와인과 같이 먹어야 더 맛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주로 집과 가까운 이태원에서 밥과 술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만의 이유가 있다. "이태원을 고집하는 이유는 가까워서다. 셔틀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다. 서울이 주차문제가 복잡한데 차 없이도 쉽게 갈 수 있다. 이태원을 가면 좋은 식당과 바에서 좋은 음식과 술도 한 잔 할 수 있어 간다. 강남은 가고 싶은데 멀어서 못 간다. 먹는 칼로리가 많아 운동을 한다. 남은 시간 헬스를 즐겨한다. 집에 키우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어 산책을 하며 운동한다. 집에 있을 땐 경기 관련 비디오를 많이 본다. 집에 사무실처럼 해놓은 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비디오를 보며 분석하고 연구한다. 올해 일정도 끝나 경기가 없지만 아직도 그 방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어서 그런지 와이프가 '시즌 끝난 게 아니냐. 그 방에서 언제 나올 거냐'고 할 정도로 비디오를 많이 보는 편이다."
▲어릴적 꿈
"만 17세가 되기 전까지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독일 18세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며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프로 팀에서도 관심을 받겠다라는 생각을 가졌다. 요즘 많은 학부모가 자식이 재능이 있으면 바로 프로에 갈 수 있다고 마음을 먹는다. 프로는 돈과 연관 돼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돈을 쫓는다. 악순환이 이어진다. 독일축구협회서 8년간 일을 할 때 16~21세 팀을 차례로 맡았는데 그 때 봤던 능력 있는 선수 중 낙오하는 이를 많이 봤다. 축구가 좋아 공을 보고 뛰어야 한다. 돈을 보고 쫓으면 큰 오산이다. 내가 선수를 할 때와 시대가 많이 변했다. 요즘은 에이전트가 많다. 나 때는 에이전트가 없어 선수가 직접 협상을 하고 모든 걸 해결했다. 지금은 대리인이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내가 처음으로 대리인과 업무를 한 건 6년 전이다. 스위스 시옹서 카타르로 넘어갈 때다. 일부 학부모가 잘못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에이전트도 신중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가정사를 살펴 보면 타고난 운동신경은 외가 쪽에서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유명한 핸드볼 선수였다. 독일이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꿈을 크게 이어나가지 못해 안타까웠다. 외할아버지는 지역에서 잘하는 축구선수였다. 아버지는 운동신경보다는 내가 축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축구 경기를 함께 보곤 했다. 하지만 절대 내 진로를 위해 감독에게 청탁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지원을 많이 하셨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항상 있었지만 나중에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열정은 항상 컸다. 축구를 하려고 숙제를 안하거나 일요일에 교회를 안가면 혼났다. 어머니가 굉장히 엄격하셨고, 아버지가 나를 많이 보호해주시고,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게 옆에서 다독여주셨다."
▲FC 바르셀로나
슈틸리케 감독이 꼽은 최고의 팀은 스페인 명문 바르사다. "최근 2~3년의 행보만 보더라도 바르사가 확실히 수준 높은 축구를 구사한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팀을 맡았을 때 이런 수준으로 올라오며 좋은 행보를 보였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런 축구를 보게 된다면 그들의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좋은 팀이 많지만 다른 팀들은 언젠가 슬럼프가 찾아오는 데 반해 바르사는 기복이 없고 꾸준하다는 게 차별화되는 점이다."/dolyng@osen.co.kr
[사진]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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