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44) 코치가 약 12년 만에 LG 트윈스로 돌아온 소감과 앞으로의 각오을 전했다.
이 코치는 8일 잠실구장에서 인터뷰 시간을 갖고 기자단과 약 한 시간동안 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서 이 코치는 “LG에 돌아온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순수한 열정을 갖고 LG가 나를 코치로 기용한 것에 만족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코치와 일문일답.

이렇게 LG에서 인터뷰 시간을 갖게 된 소감부터 부탁드린다.
“코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 몸들 바를 모르겠다. 사실 주위 분들에게 혼자 돋보이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계약하는 날 두산에서 사장님, 단장님에게 인사드리고 LG와 계약했다. 두산에서도 그랬는데. 항상 고맙다. 작년에 두산에서 잡아주셨을 때도 정말 고마웠다. 두산에서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었다. LG서 불러주셔서 행복하고 두산에서 보내준 것도 감사드린다. 여기 와서 행복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을 성심성의껏 할 수 있을 것 같다,”
피칭 아카데미 초대 원장이 됐다. 피칭 아카데미에 대해 말해달라.
“투수 육성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프로에 온 선수들이 대다수고 2군 선수 한두 명 정도가 피칭 아카데미에 들어온다고 들었다. 진짜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선 3년 정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대회 후 쉬는 시간이 길다. 하지만 프로선수들은 6, 7개월을 쭉 던진다. 아마추어에서 155km 던졌다고 스카우트가 되지만, 프로서는 항상 공을 던져야 한다. 155km를 던졌다면 그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아마추어 때에 비해 프로에 오면 스피드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프로는 계속 던지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고 지치게 된다. 어린 선수라면 누구나 다 1년에 한 두 번은 부상을 당한다, 중요한 것은 그 부상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오는 스피드 절감을 경험하고 볼배합하는 방법, 자신감을 유지하는 방법, 1군에서 팬들에 압도당하지 않는 마음 등을 갖춰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진짜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몇 명은 슈퍼스타로 올라선다. 사실 프로투수가 1군 엔트리에 들어가는 것 자체도 대단하다. 신인이 첫 해부터 1군에 올라가서 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밑에서 올라가기는 사실 쉽지 않다. 그래서 크게 보고 싶다. 2군에서 3년은 뛰고 군대도 갔다와서 차츰차츰 올라가는 게 좋은 그림이라고 본다. 일단 내 임무는 어린 투수들을 당장 1군에 올리는 것보다 2군에서부터 잘 던지게 하는 것이다. 부상을 당해도 빨리 낫고 던지게 하는 것. 슬럼프에 빠져도 빨리 이겨내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선수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하면서 이루도록 노력할 것이다.”
드물게 한미일 프로야구를 다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코치로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외국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게 야구는 똑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본인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도 생각했다. 여러 곳에서 뛰어봤지만 사실 내게 최고의 야구장은 잠실구장이다. 요즘 돔구장도 생겼지만 그대로 나는 잠실구장이 가장 좋다. 비가 오면 조금 쉬고. 중단도 되고, 팬들도 함께 비 맞고 경기하고, 그러면서 끈끈한 정이 생긴다. 그만큼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 코치는 어떻게 마음을 먹고 선수에게 다가서느냐가 중요하다. 항상 자신만의 것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미국은 이래, 일본은 이래. 그래서 이렇게 따라가야 해’라는 것 보다는 나는 항상 나대로 일괄되게 행동해왔다. 어느 선수를 만든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인 것 같다. 그 선수가 잘 되도록 도와주는 게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 LG에 대해선 어떤 느낌을 갖고 있었나.
“유니폼을 가장 오래입고 있었던 팀이다. 그만큼 애착이 간다. 사회인이 돼서도 LG 경기를 가장 많이 봤다. 좀 잘 했으면, 옛날 같은 분위기가 살아났으면 생각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LG는 서울에 있고 잠실구장을 쓴다. 팬층도 두껍다. 구단지원도 좋다. 관심 역시 많다. 잘 하면 더 크게 잘 해 보이는 팀인데. 그게 안 돼서 아쉬웠다.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성적이 안 나서 아쉬움이 컸었다. 하지만 앞으로 잘 할 것이다.”
고양 원더스와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하면서 느낀 부분은?
“고양에선 김성근 감독님이 계셨다. 책임감을 중요시 생각하시는 분이다. 2년 동안 130경기를 김성근 감독님 뒤에 있었다.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첫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우리 팀에 고바야시라는 마무리투수가 있었다. 7회가 됐는데 대뜸 ‘고바야시’라고 이야기하시더라. 사실 ‘고바야시 몸 풀게 해라’라고 이전에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 때 내가 알아서 미리 준비를 시켜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감독님을 보고 감독님 생각을 읽어야 한다는 것도 느꼈다. 이후부터는 내가 투수들을 미리 준비시키게 됐다. 항상 두 명씩 준비시켰다. ‘누구누구 준비되어 있습니다’하니 꼭 둘 중 한 명을 쓰시더라. 김성근 감독님이 간접적으로 내게 코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 것 같다. 고양에서 2년 동안 투수코치로서 투수들을 돌아보고 계획을 짜고 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두산 2군에서는 투수파트에선 거의 전 경기를 운영을 했다. 두산에서 내게 많이 맡겨줬따. 두산서도 많은 것을 느꼈다. 2군은 선수도 키워야하고 경험도 살려야하고 이기는 것도 필요하다. 두산서 투수들을 많이 썼었다. 2015시즌 두산에서 2군 투수 7명 정도가 1군에 오르락내리락했다. 1군에 공백이 생겼을 때 2군에서 올라갈수 있는 선수가 항상 있었다는 데에 만족한다. 엔트리에 공백이 하나 생겼을 때 1군에서 연락이 와서 누구 올려달라고 하면 바로 이야기해왔다. 그만큼 선수들이 준비가 잘 됐다. 두산 2군 분위기는 너도나도 던지겠다는 분위기였다. 고졸 신인부터 1군에서 내려온 선수까지 다 그랬다. 사실 1군 선수들은 2군 내려가면 좀 지친다. 그런데 이런 선수들을 나름 잘 다스렸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를 똑같이 주려고 노력했다. 2군 투수들에게 던지고자하는 욕심을 내게 했던 것, 1군에 자신 있게 추천해줄 수 있는 선수가 많았던 게 성과가 아닌가 싶다.”
요즘선수들을 보면서 다른 점, 느끼는 점이 특별히 있나?
“FA가 생긴 게 가장 크게 다른 점인 것 같다. 극단적으로 보면 너무 FA만 보고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팀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있다. 게임수 이닝수 등을 채워야 FA가 되는 것 아닌가. 2군에 있으면서도 간접적으로 그런 것을 느꼈다. 그런데 두산은 이런 부분에서 분위기가 잘 형성됐다, 그래서 두산이 좋은 성적을 낸 것 같다. 1군 투수들이 2군에 내려갔다고 고개 숙이고 FA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다시 2군에서 열심히 하더라. 그러면서 2군 분위기도 계속 좋았다.”
시간이 흐른만큼, 현역시절 LG에서 함께 했던 선수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을 것 같다.
“이병규 박용택 이동현 김광삼 정도와 함께 뛰었었다. 그런데 이들과는 은퇴한 뒤 평소에도 많이 만났다. 내가 오랜만에 LG에 돌아왔다고 특별히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의미를 부여하면 방향이 어긋날 수도 있다. 물론 성원해주신 팬들에게는 정말 감사드린다. 지금도 내 유니폼을 입고 다니시는 팬들이 많다. 내가 은퇴한지 몇 년이 지났나. 정말 행복하고 고마움을 느낀다.”
최근들어 규정이닝을 소화하는 토종 선발투수를 보기 힘들어졌다. 토종 선발투수 기근 현상에 대한 원인이 어디서 나왔다고 보나?
“나는 오래 던지는 투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한 경기에 150개도 던지는 투수가 나왔으면 한다. 프로라면 그런 몸이 되어야 한다. 물론 몸이 되어도 어려운 부분은 있다. 타자들이 워낙 좋아졌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확실한 분업화도 됐다. 그러면서 이닝이터가 부족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퀄리티스타트란 말도 쓰지 않나. 이제는 투수마다 분업화가 확실해 졌다. 내가 원하는 투수의 그림은 구심과 함께 던질 줄 아는 것이다. 한미일을 다 경험했지만 심판 판정은 우리나라가 가장 정확하다. 구심의 정확한 판정을 이용해서 던질 줄 아는 투수가 되어야 한다. 요즘 투수들에게는 이런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두산 2군에서 나름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LG에서 제안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무슨 느낌이 들었나.
“‘어떡하지...’였다. 그런데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구단끼리 이야기가 된 상황이었다. 제안을 듣고 나서 3일 만에 결정이 됐다. 나는 내년에도 두산에서 뛸 줄 알았다. LG에서 이야기가 왔고, 두산 단장님한테 먼저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미 두산과 LG가 합의가 됐더라. 그래서 두산에 먼저 가서 인사드리고 마무리한 다음 LG로 왔다. 작년에 두산 갈 때도 두산이 LG에 양해를 구하고 나를 데려왔다고 하더라. 그 때 두 팀의 관계가 이해가 됐다. 프로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뛰는 게 가장 좋다. 조건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나는 조건만 보고 이동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투수지도에 있어 멘탈 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나?
“‘이렇게 하자’와 ‘이렇게 해’는 말하는 입장에선 똑같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다르다. 코치는 선수에게 맞춰야한다. 선수에 따라선 아예 지적을 안 하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 가만히 있으면 직접와서 묻는 선수도 있다. 그래서 3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코치는 선수의 성격도 잘 파악해야 한다. 기술이든 멘탈이든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 코치와 선수가 서로 배우는 게 필요한 시기도 있다. 서로를 잘 파악하고 오랫동안 길게 한 길을 가야한다.”
LG로 돌아온 것에 대한 부담감, LG에 투수 유망주가 많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전혀 없다. 못하면 잘리면 된다. 잘린 후 오라는 곳 있으면 가면 되고, 없으면 코치 안 하면 된다. 그만큼 후회 없이 하겠다. LG에서 나를 불러서 후회할 수도 있고, 잘 불렀다고 만족할 수도 있다, 어떻게 되든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사실 나는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93년에 입단을 해서 신인왕을 하겠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95년에 20승했지만 당해 20승하겠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다. 94년 우승도 우승하겠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진출 또한 앞서 이야기한 적이 없다. 주니치 입단에 앞서서도 11년 만에 주니치를 우승시키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두산에 코치로 갔을 때도 LG서 부를 것이란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물 흐르듯 하루하루를 살고 후회를 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굳이 목표를 이야기한다면, 내 선수들이 아프지 않는 것. 그리고 나도 아프지 않는 것이다. 선수로서 최고는 일 년 동안 안 아프고 매일 그라운드에 서는 것이라 본다. 그런데 보통 부상없이 일 년 전체를 뛰는 선수는 한 팀에 3명 정도 밖에 안 나온다. 다행히 나도 크고 작은 부상은 겪었지만 96년 전반기에 반년을 빠져본 게 다였다. 이런 마음이 지금 코치로서도 자리하고 있다. 코치는 부상을 당하지 않지만 심적인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심적인 부상을 당하면 선수들에게 온 힘을 다할 수 없다. 그렇게 되지 않게 노력해오고 있다.”
올 해 이야기가 많이 나온 혹사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나 기준이 있나?
“혹사라는 단어는 모르겠다. 그냥 많이 던진 것이라 본다. 이는 그 팀에서 이뤄지는 일이고, 그 팀 내부적으로 가장 잘 안다고 본다. 나 또한 현역시절에 많이 던졌었다. 사실 문제가 되고 아프면 선수가 안 할 것이다. 선수는 몸이 재산이다. 아프면서도 던지는 게 아닌 이상, 혹사는 없다고 본다.”
등번호 47번은 어떤 이유에서 다시 달게 됐나?
“구단에서 주셨다. 사실 후배들이 47번을 다는 이유를 모르겠다. 저주 받은 번호다. 서승화는 나갔고 조윤준은 작년에 십자인대를 다쳤다. 봉중근도 47번 달았다가 못해서 욕먹었다. 저주 받은 번호인 만큼, 내가 다는 게 괜찮다고 본다. 내가 달아서 저주 없어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후배들이 많아졌다. 경험자로서 조언을 한다면?
“미국에 가더라도 한국에서 해온 것 그대로 했으면 좋겠다. 물론 주위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부담감이나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 생긴다.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해온 대로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류현진 선수가 잘 하는 원인 역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류현진 선수는 한국에서 모습 그대로 행동하지 않았나. 나는 미국에 갔을 때 마치 사막에 혼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경기에 나가면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낯선 환경에서 처음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해온대로 한다면 길이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겠다. LG에 돌아왔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아직 내가 무엇을 할지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래서 그동안 경험했던 것을 이 자리를 통해 들려드리고 싶다.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했지만, 사실 가장 많은 것은 배우고 느낀 것은 여자야구 팀에 있었을 때다. 여자야구 팀의 감독이 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많은 것을 느꼈다. 여자선수들, 사회인야구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진짜 열정, 순수한 열정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 때는 정말 하루에 한 번씩 놀랐다. 프로야구의 돈과 명예를 넘어서는 더 큰 열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돈이 아닌 돈, 명예가 아닌 명예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봤다. 정말 내가 열심히 가르쳐 드려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순수한 열정에 크게 반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법도 많이 알게 됐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순수한 열정을 갖고 LG서 내 모든 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drjose7@osen.co.kr
[사진] 잠실 =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