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저 없이 사는 법’ 삼성화재의 미래를 엿보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1.04 06: 59

'외국인 몰빵 오명' 숱한 우승의 이면
그로저 없이 대한항공 꺾어, '기초체력 과시'
“우리 국내 선수들의 전력이 나쁜 것은 아니다. 외국인 없이 싸우면 우리가 뒤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임도헌 삼성화재 감독은 지난 1일 OK저축은행전 패배 이후 선수들을 감쌌다. 이날은 몇몇 기본적인 플레이가 안 되며 완패를 당했지만, 삼성화재의 국내 선수진이 약하다는 세간의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삼성화재는 숱한 우승을 차지한 저력의 명가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의 공격력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이른바 ‘몰빵 배구’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경향도 있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부인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삼성화재는 프로 출범 이후 외국인 선수가 최고 스타였던 시기가 길다. 안젤코, 가빈, 레오, 그리고 올 시즌 그로저에 이르기까지 출중한 외국인 선수들이 높은 공격 점유율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그리고 국내 선수들은 이 외국인 선수들의 철저한 조력자 이미지가 강했다. 승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국내 선수들이 크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공존했다.
그런 삼성화재가 최근 시험대에 섰다. 외국인 선수 그로저가 대표팀에 차출된 까닭이다. 그로저는 2016년 리우 올림픽 예선을 치르기 위해 최근 독일 대표팀에 합류했다. 1월 중순에나 팀 복귀가 예상된다. 삼성화재는 적어도 새해 첫 3경기에서는 그로저 없이 싸워야 한다. 순위 싸움이 바쁜 마당에 큰 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임 감독의 생각은 꼭 그렇지 않다. 국내 선수들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도 보고 있다.
국내 선수들은 전력의 기본이다. 외국인 선수는 플러스 알파다. 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임 감독도 1일 경기 후 “사실상 이날 경기력이 우리 팀의 기본적인 전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다음 시즌부터는 남자부도 트라이아웃제가 적용된다. 예전과 같은 배구로는 삼성화재도 살아남기 어렵다. 국내 선수들의 비중을 늘려야 하고, 또 국내 선수들이 한 단계 성장해야 한다. 그로저의 이탈은, 역설적으로 삼성화재를 다른 팀에 비해 먼저 시험대에 올려놓은 셈이 됐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성과는 있다. 1일 경기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삼성화재는 3일 대어를 낚았다. 리그 2위 대한항공에 세트스코어 3-2 역전승을 거뒀다. 대한항공이 무려 42개의 범실을 범하며 자멸한 감도 있었지만 삼성화재의 버티기는 탁월했다. 먼저 두 세트를 내주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로저만한 확률 높은 공격수는 없었지만 끈질긴 수비와 상대보다 나은 기본기를 선보이며 기어이 경기를 뒤집는 저력을 과시했다. 우승으로 쌓인 명가의 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삼성화재가 현 시점 가지고 있는 ‘기초 체력’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 경기이기도 했다.
삼성화재는 계속해서 우승한 대가로 신인 선수들 수급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신치용 현 단장은 감독 시절 “우리 팀에 6번(드래프트 1라운드 마지막 순위를 의미)이 아닌 선수가 별로 없다”라고 했고 실제 그랬다. 그러나 최근 몇몇 방법을 통해 그런 한계를 조금씩 만회하고 있다. 최귀엽을 영입했고, 류윤식은 트레이드로 얻었다. 여기에 토종 거포인 박철우도 군 복무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임 감독은 “박철우가 들어오면 우리도 뒤지지 않는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짜릿한 승점을 잡은 삼성화재의 가능성 찾기는 오는 9일 현대캐피탈전에서 이어진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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