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OB 포수 출신’ 김경문-조범현-김태형 감독, ‘성공시대’ 계속 쓸까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6.03.04 11: 33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글 판에 지난 2일 최하림 시인의 시 ‘봄’ 가운데 한 구절인 ‘봄이 부서질까봐/ 조심조심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가 내걸렸다.
이 시는 원래 최 시인이 ‘봄’으로 발표했던 것을 개작 과정을 거쳐 ‘춘분’으로 탈바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뀐 부분은 이렇다. ‘나는 다시 왜 이리 봄이 빨리 오지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지난 일이 마음 쓰여 조심조심 숨을 죽이고 마루를 건너 유리문을 열고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봄이 왔구나 봄이 왔구나라고’(2010년, 문학과 지성사 『최하림 시 전집』에서 인용)
시인의 시구처럼 조심조심 봄이 오니, 드디어 야구 판이 열린다. 3월 8일부터 2016년 프로야구 정규리그 ‘예비고사’격인 시범경기가 시작된다.

올해 프로야구는 팀 성적과 관련,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2연패 가능성, NC 다이노스 의 첫 우승 여부, 김성근 감독이 진두지휘하는 한화 이글스의 정상 정복 등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 틈새로 제10구단으로 지난해부터 1군 무대에 나타난 kt 위즈의 중상위권 도약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거론된 구단 모두 감독들의 지도 역량이 그 어느 해보다 강조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김경문(58) NC 감독, 조범현(56) kt 위즈 감독, 김태형(49) 두산 감독은 하나같이 두산 전신인 OB 베어스에서 포수로 팀을 이끌었고 우승 경험도 지닌 공통점이 있다.
조범현 감독은 2009년에 KIA 타이거즈를 팀 통산 10번째(전신 해태 타이거즈 시절 포함)로 우승시켜 자신의 지도자 이력에 첫 우승기록을 등록했다. 김태형 감독은 친정팀 두산 지휘봉을 잡은 첫 해 2001년 김인식 감독 이래 14년 만에 두산 베어스를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다.
김경문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대표팀 감독으로 우승, 강한 인상을 남겼으나 정작 프로야구 판에서는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지난 2004년부터 두산 사령탑을 맡아 3차례 정상 도전에서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고 지난해에는 플레이오프에서 김태형 감독에게 덜미를 잡혔다. 감독 생활 12년째인 그가 우승 염원으로 더욱 절치부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세 감독은 선수시절에는 수비형 포수로 묵묵히 팀 안방을 지켜냈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도자로서는 김경문, 김태형 감독이 공격적인 성향으로 엇비슷한 반면 조범현 감독은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김성근류’의 수비형 지도자로 분류할 수 있겠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 첫 해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전신)는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4승1무1패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섰다. 1차전 무승부, 2차전 완패 뒤 3~6차전을 모조리 이겨 열세의 평가를 뒤집었다. 원년 22연승 신화의 주인공 박철순이 있었기에 일궈낸 우승이었지만, 김경문, 조범현 포수가 뒤를 받쳤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그해 한국시리즈 OB 포수진은 정종현, 김경문, 조범현 3각체제로 운영됐다.
1차전(대전구장, 3-3 비김) 정종현 선발, 김경문으로 교체, 2차전(대구구장, 삼성 9-0승) 조범현 단독, 3차전(이하 서울구장, 옛 동대문운동장. OB 5-3승) 김경문 단독, 4차전(OB 7-6승) 정종현 선발, 김경문 으로교체, 5차전(OB 5-4승) 김경문 단독, 6차전(OB 8-3승) 김경문 단독 형태의 포수 포석이었다. 공교롭게도 김경문이 마스크를 쓴 경기에서 OB는 모두 이겼다. 6차전 우승 확정 직후 그라운드에서 포수 김경문이 그 경기에서 완투했던 박철순과 감격의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독무대를 이루다가 저팬시리즈 10연패가 무산된 1974년부터 2008년까지 35년간 일본 정상에 오른 감독들의 현역 시절 포지션 분포에 따르면, 포수 출신이 13회, 유격수가 9회, 투수가 5회, 1, 2, 3루수, 외야수가 각 1회씩이었다.
한국도 MBC 청룡 감독이었던 백인천을 비롯해 배성서(빙그레 이글스 초대 감독), 정동진, 우용득(이상 삼성), 유승안(한화), 이만수(SK 와이번스) 등 포수 출신 감독이 유난히 많았다.
현역 시절 난카이(南海)의 명포수 출신으로 세이부 라이온즈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론가’로도 탁월한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는『아아, 감독』(2009년)이라는 책에서 포수 출신이 명감독이 될 수 있는 까닭을 이렇게 풀이해놓았다.
‘우선 포수는 감독의 분신이나 다름없어 감독의 임무 일부를 소화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수비를 할 때 그라운드를 마주보고 조망할 수 있는 것은 포수뿐이다. 전체 야수들을 지휘하고 상대 타자나 스코어, 볼 카운트에 따른 상황을 종합 판단, 수비대형을 변경시키는 것 등 그라운드의 감독 대행이나 마찬가지의 일을 한다. 포수는 감독은 감독의 전권을 위임받아 투수의 리드, 볼 배합을 자신의 구상대로 해야 한다. 타인(투수)의 힘을 빌려 경기의 흐름을 구상하는 것이 포수.’라고 정리했다.
‘감독 대행’의 경험이 포수 출신 감독의 큰 자산인 것이다.
김태형, 김경문, 조범현 감독은 포수 시절의 경험이 지도자로서의 큰 밑천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산이 지난해 외국인 선수 부실로 조력이 거의 없는 가운데 선발 이현호와 마무리 이현승의 발굴, 허경민, 박건우의 성장으로 정상에 선 것은 그 누가 뭐래도 김태형 감독의 지도력 덕분이다. 선수단 장악력도 뛰어난 그는 코치들에게 “코치들이 열정을 갖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열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코치의 임무”라고 역설한 것도 그의 지도력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OB 베어스 스타 출신인 박종훈 NC 다이노스 고양본부 본부장은 세 감독의 성향을 이렇게 정리했다.
“김경문 감독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자기 주관을 가지고 선수들을 장악해 경기를 하는 스타일이다. 자기 판단 기준이 강하다. 선수 구성, 관리, 경기운영의 틀 안에 구단이 넣어주는 것 외에 선수들을 꾸려가는 능력이 월등하다. 무한 경쟁을 유발하면서 선수들 장악력이 대단하다. 조범현 감독은 속을 잘 안 드러낸다. 속임수에도 능하다. 선수시절 누구한테 배웠느냐가 나중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김경문 감독은 공주고 시절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준 김영빈 감독의 ‘어머니 같은 성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김태형 감독은 판단할 만큼의 자료는 없지만 ‘비즈니스 형’으로 두루두루 잘 지내는 야구 스타일이다. 아무래도 선임 포수였던 김경문 감독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나름대로 ‘성공시대’를 써가고 있는 세 감독이 그려낼 2016 프로야구 지형도가 궁금하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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