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6일.
그 어떤 당부나 이별의 말도 없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던 그 날, 야구장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봄비를 자양분 삼아 여름이면 더욱 파릇해질 녹색의 그라운드는 한껏 풋풋함을 뽐내고 있었지만, 혼잣말 하듯 가끔 한 마디씩 던져주곤 하던 선배님의 말씀을 거름 삼아 커 나온 후배들의 마음은 목동을 잃은 안개 속 양떼들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 가져다 주는 황망함과 당황스러움은 그 누구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선배님의 지나온 길과 아직 걷지 못했지만 걸어냈을 남은 길을 생각하면 야구계의 상심은 더욱더 깊어져만 갑니다.

“신문기사 봤습니다”
기억하시나요? 30년도 넘은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선배님을 처음 알게 되었던 고등학교 시절, 잠실야구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2호선 전철 안에서 내내 아무 말없이 신문만 뒤적이던 선배님에게 제가 처음 어렵사리 꺼낸 말이었습니다.
“….”
말보다 가벼운 웃음으로 대신하셨지요.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선배님이 어떤 생각으로 공학도가 아닌 야구의 길을 택하셨는지를.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프로 초창기 시절, 당시 주류를 이루던 일본식 야구이론과 기록방식보다 좀더 알기 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미국식 기록방식을 과감히 수용했던 일, 야구는 출루가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출루율의 중요성을 강조해 공식통계화 시킨 일, 기존 일본식이던 투수의 자책점 결정방식을 미국식으로 전환해 투수들의 고의적인 기록조작 여지를 사전에 막아버린 일, 1980년대 중반 컴퓨터를 이용한 기록의 체계적인 데이터 베이스화의 필요성을 일찍이 주장해 관철시킨 일 등등..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저 야구가 좋아 어렵게 배워온 원자핵공학이라는 전문분야의 학문을 과감히 버리고 돈키호테라는 소릴 들으며 프로야구 공식기록원에 몸을 던졌던 선배님의 결단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프로야구 기록체계는 굳건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야구 공식기록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머물지 않고,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출루율을 비롯한 틈새 기록에 관심을 갖고, 공식기록과 통계가 미처 표현해내지 못하는 숨겨진 기록을 발굴하고자 ‘SKBR’이라는 재야의 야구기록 및 통계 연구모임을 발족시켜 한국판 세이버메트릭스의 장을 열어주셨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PC통신으로 알게 된 해외야구 덕후들과의 오프라인 교류 모임을 갖고, 그들의 야구열정에 관심과 진정 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야구기록 분야 외에도 행정적으로는 1990년대 중후반 KBO(한국야구위원회) 기획실장 직을 역임하며, 마케팅 분야의 발전 모색과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선수 트라이 아웃을 미국현지에서 주도하시기도 했습니다.
한편 KBO를 떠난 이후에는 ‘스포츠투아이’라는 스포츠 통계기록을 전문으로 다루는 회사를 창설, 야구기록은 물론 각종 스포츠 분야 기록통계의 전문화를 극대화시키는 데 매진하셨습니다. 그 결과 현재 프로야구가 연일 쏟아내고 있는 빅 데이터의 체계적 관리와 정확한 기록의 산출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드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선배님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생각하자니 빈자리가 더욱 한없이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야구에 대한 열정 외에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고 염려하는 데에는 너무나 서툴러 보였던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곤 했었는데, 결국 그 부분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갑작스런 이별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그 길을 가야 한다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기에,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선배님과의 작별은 그래서 더더욱 믿기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한국야구는 선배님을 어떻게 추억할까요? 한국 야구기록계의 대부로? 한국의 헨리 채드윅으로? 한국의 빌 제임스로?
그러나 어떻게 기억하든 이것 하나만은 꼭 세상이 기억해주길 바래봅니다.
후배들의 실수를 나무라기보다 감싸 안으려 했고, 모르는 부분을 주입하기 보다 스스로 느껴 깨닫기를 원했고, 자신의 생각을 앞서 강요하기 보다 후배들의 생각을 먼저 들어주시던 분이었습니다.
정체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열린 생각으로 야구와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했고, 남 듣기 좋은 말보다 꼭 들어야 할 말을 먼저 꺼내시던 분이었습니다.
특유의 불명확한 말투와 어법으로 때론 알아듣지 못해 되돌아온 질문에 난감한 적도 있었지만, 선배님에게서 풍겨 나오는 말의 체취는 언제나 인간미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분이었지요. 두고두고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2016년 4월 8일.
선배님을 억지로 보내드리고 돌아와 앉은 야구장 기록실. 그날의 야구는 지금까지 보아오던 야구와 많이 달랐습니다. 그라운드, 관중석, 기록실,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 그리고 그것을 옮겨 적는 펜 끝 한 올 한 올. 곳곳에 선배님의 흔적이, 선배님과 함께 했던 옛 기억들이 살아 숨쉬는 듯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선배님의 순수함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뒤로 하고 먼 길을 서둘러 떠나신 ‘박기철’이라는 이름 석 자. 야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음과 철자법을 가진 그 이름 석 자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회자될 것입니다.
선배님과의 인연으로 야구계에 몸담은 후배들과 야구기록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전당이 있다면 그곳에 맨 먼저 자리할 사람은 아마도 선배님일 것입니다.
갓 들어와 잠실야구장 중앙 테이블석에서 기록연습에 열중하던 후배를 서서 내려보다 짚어줘야겠다 싶은 부분을 말없이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시던 선배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때늦은 후회를 들으시며 언제나 그러셨듯이 지금도 저 하늘 어디에선가 작은 미소를 짓고 그때처럼 내려다보고 계시겠지요. 하늘나라에도 야구장이 있다면 그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부디 고이 영면하십시요.
/윤병웅 전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