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를 책임졌던 센 언니들은 모두 떠났다. ‘니들이 뭘 하겠니?’ 그저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 제대로 된 지원도 없었다. 상대는 이름도 생소한 세계적인 강호들. 그래도 가슴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태극마크가 붙어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가 던진 3점슛은 족족 림을 통과했다. 한국농구의 매운 맛에 세계가 놀랐다. 그 선수는 바로 강아정(27, KB스타즈)이었다.
위성우 감독이 이끄는 여자농구대표팀은 지난 달 19일 프랑스 낭트에서 벌어진 2016 리우 올림픽 여자농구 최종예선 5위 결정전에서 벨라루스에 39-56으로 졌다. 한국은 5위까지 주어지는 마지막 올림픽 출전권을 아쉽게 따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조차 한국이 2연패로 예선에서 탈락할 것이란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태극낭자들은 너무나 잘 싸우고 돌아왔다. 천안에서 훈련 중인 강아정을 만나 감동적인 뒷이야기를 듣고 왔다.
OSEN: 프랑스 다녀와서 좀 쉬었나요?

며칠 쉬었어요. 손가락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어요. 쉬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어요.
OSEN: 왼손부상은 어때요? 왼손이 아픈데 어떻게 그렇게 슛을 잘 넣었어요?
병원에 갔는데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통증은 있어요. 손등이 아팠어요. 시즌 때도 비슷한 부위를 다쳐서 붕대를 감고 뛰었더니 동료들은 익숙하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주변에서 ‘붕대 감고 뛰니까 슛이 더 잘 들어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몰텐볼을 좀 좋아해요.
OSEN: 첫 경기부터 이렇게 잘 터질 줄 알았나요? 김단비 선수랑 둘이서 쏘는데 골든스테이트 보는 줄 알았어요. (강아정은 나이지리아와의 첫 경기서 22점, 3점슛 6개를 폭발시켰다. 한국은 69-70으로 아쉽게 졌다.)
휴가가 4월이니까 6월까지 농구를 한 적이 없어요. 재활만 했어요. 휴가가 끝나자마자 대표팀에 가서 몸을 다시 만드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뛰다보니 몸이 많이 올라왔거든요. 그때 딱 손을 다친 거예요. 되게 많이 울었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대회에 못 가는구나’ 생각했죠. 감독님이 기다려주시니까 몸이 금방 좋아졌어요. 힘든 훈련을 소화해서 그런가 봐요. 감독님이 제가 잘할 수 있게 패턴을 많이 만들어주셨어요. 가서 잘한다는 생각보다 못해도 경기당 3점슛 3개 정도는 넣고 나와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었어요.
OSEN: 김단비 선수는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강아정 선수는 상대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강아정 선수가 워낙 잘 넣으니 나이지리아 선수들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던데?
그렇죠. 제가 재작년에 세계선수권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오른쪽 손가락이 부러져서 못 갔어요. 아무래도 국가대표에 가도 아시아대회서도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저에 대해서 잘 몰랐을 거예요. 청소년대표 후 거의 10년 만에 주전으로 뛰었거든요.
OSEN: 2007년 청소년 세계선수권에서 득점왕을 했잖아요?
그 때도 이런 식으로 제게 공격을 많이 시켜주는 패턴이었어요. 제 꺼를 하느라고 나이지리아 선수들 볼 겨를이 없었어요. 이길 수 있었는데 끝나고 너무 속상했죠.
OSEN: 나이지리아를 잡았다면 결과가 좀 달라졌을까요?
지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인데 벨라루스도 첫 예선에서 우리에게 안 졌다면 마음을 안 다잡고 나왔겠죠. 우리에게 졌으니 마지막에 들어올 때 느낌부터 달랐어요.

OSEN: 벨라루스를 이기고 눈물의 인터뷰가 화제가 됐어요. 맺힌 게 많았었나 봐요?
울려고 운 게 아닌데. 호호. 인터뷰를 하는데 나이지리아측에서 묻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어떻게 응원을 해주냐?’고요. 그래서 그냥 사실대로 ‘어차피 두 게임 다 지고 올 거라서 한국에서도 응원 안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갑자기 그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복받쳐서 울었어요.
OSEN: 스페인전은 결과를 떠나서 정말 얻은 게 많았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세계대회 가서 스페인에게 60점 차로 졌거든요.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었죠. 감독님도 비디오분석을 하시면서 ‘우리가 불가항력적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너네가 언제 쟤네랑 몸을 부딪쳐보겠냐?’ 하시더라고요. 기회가 없잖아요 솔직히. 가서 열심히 해보자고 했어요. 초반에 열심히 하니까 대등하게 가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도 “어? 계속 뛰켜야하나?” 고민을 많이 하셨대요. 냉정하게 우리가 전력을 100% 다해도 이길 수 있는 팀은 아니었어요. 그 다음 경기를 위해서 경기시간을 조절했죠.
OSEN: 10년 만에 다시 만난 스페인 선수가 있나요?
7번 알바 토레스(27, 191cm) 선수가 우리랑 동기에요. 4번 센터 로라 니콜스(27, 190cm)도 있었던 선수에요. 그 때도 굉장히 잘했어요. 너무 멋있어서 굉장히 좋아했던 선수에요.
OSEN: 벨라루스와 재대결은 정말 아쉬웠어요. 아무래도 전력이 이미 노출된 데다 우리 선수들 체력이 떨어진 모습이 눈에 보였어요. 벨라루스에서 강아정 선수를 작정하고 막더라고요.
그날은 솔직히 어차피 제 패턴이 노출됐고 막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우리는 센터에서 1대1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제가 모자라서 그랬죠. 그런 상황에서 득점을 10~15점은 해줬어야 하는데 그게 안 나왔죠. 갑자기 제 득점이 없으니까 졌죠. 이긴 경기보다 그 경기가 가장 생각이 나요.
사실 제가 진 경기를 다시 잘 안보거든요. 잘했던 경기, 이겼던 경기를 다시 보려고 하는데
그 경기를 몇 번 봤어요. 시즌 때나 다시 대표팀 갔을 때 그런 실수를 되풀이 안하고 싶어서요. 제가 봐도 너무 못하더라고요. 같이 체력적인 부문에서 떨어지는데 그 선수들은 키가 크니 유리하죠.
(강아정은 한국이 이긴 2경기서 평균 20점, 3점슛 3.5개로 에이스 역할을 다했다. 마지막 벨라루스전에서는 2득점, 3점슛 0/7로 부진했다.)
OSEN: 박지수 선수가 이렇게까지 잘해줄 줄 알았나요? (박지수는 평균 10.8리바운드로 대회 1위를 차지했다.)
세계대회서 더 잘할 줄 알았어요. 지수가 몸싸움이 약하고, 좀 싫어하는데 중국이나 일본은 견제가 많아서 힘들어서 잘 못했거든요. 세계대회는 자기와 사이즈 비슷한 선수가 많으니까 몸싸움 안하고 비슷한 스타일이라서 그 정도는 할 거라 생각했어요.
OSEN: 박지수 앞에서 제대로 골 넣은 선수가 거의 없었어요.
정말 잘해준 거 같아요. 공격을 바란 게 아니라 수비에서 뒤에서 지켜주고, 리바운드와 블록슛을 해준 게 되게 컸죠.
OSEN: 올림픽예선에서 가장 배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큰 선수가 많이 부족해요. 어린 선수들이 배구로 많이 빠진다고 하더라고요. 팀에 돌아오니 우리 팀 선수들이 너무 작은 거예요. 180cm인 제가 포워드를 보는데 팀에서 제일 컸어요. 알바 토레스는 191cm인데 가드를 보잖아요. ‘우리나라의 한계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기려면 체력, 스피드, 슛 정확도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U17 여자농구도 다 지더라고요. 남자는 그래도 최준용같이 키 크고 어린 선수들이 계속 나오는데, 여자는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OSEN: 국제대회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대표팀 경기력이 향상되는 게 눈에 보였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A매치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농구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제가 휴가 끝나고 4월에 일본에 놀러갔어요. 후지쯔에 친한 국가대표 선수가 도쿄까지 왔어요. 일본은 시즌을 빨리 끝내고 4월 3일에 국가대표를 소집했다고 하더라고요. 호주에 전세기타고 연습경기를 간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부러웠어요. / jasonseo34@osen.co.kr
[사진] 천안=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2편에서는 강아정의 지난 시즌을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