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V4 스토리]⑤‘배고픈 왕년 에이스’의 부활, 7000만원 대반전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11.23 17: 03

SK 와이번스가 2018 한국시리즈에서 업셋 우승을 했다. 2010년 이후 8년 만에 거둔 네 번째 우승이다. SK왕조의 역사가 희미해지는 순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KBO리그 최강은 아니다. 이번 우승은 새로운 왕조를 향한 첫걸음이다. 몇 회에 걸쳐 V4의 장정을 짚어본다. 
왕년의 명예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깨의 훈장은 기억이 희미해져갔다. 이제 자리를 잡지 못하면 ‘방출’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지난해 가을도 그랬다. 다른 투수들이 구종 추가와 매커니즘을 말할 때,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체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프로에 온 선수들이라면 거의 대다수는 아마추어에서 잘 나갔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특별한 선수들이 있다. 정영일(30·SK)과 김태훈(28·SK)은 그 잘 나갔던 선수들 중에서도 탑클래스였다. 고교 시절 자신의 어깨에 수많은 기대에 쏠려 있었고 이들은 그 부담감을 딛고 나가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자연스레 이들의 등번호에는 ‘에이스’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김태훈은 고교 시절 퍼펙트 피칭을 한 선수로 유명세를 탔다. 좌완으로 140㎞대 중반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였다. 그렇게 SK의 2009년 1차 지명을 받았다. 김광현과 함께 SK의 좌측 날개를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정영일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전국구 에이스였다. 광주진흥고 시절 아마추어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 중 하나였다. 스케일도 컸다. 2007년 LA 에인절스와 계약해 바다를 건넜다.
하지만 기대만큼 일이 풀리지 않았다. 김태훈은 어깨 부상 이후 구속이 뚝 떨어졌다. 오히려 신인 때의 공이 가장 좋았을 정도로 하락세를 탔다. 정영일도 역시 팔꿈치 부상 등으로 결국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 복귀도 쉽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2년 유예’라는 족쇄가 달려 있었다. 군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빨라봐야 4년 뒤”라는 시간적 압박이 거대했다. 가장 화려했던 그는, 어느덧 잊힌 선수가 되고 있었다. 
2018년을 앞두고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김태훈은 제대 후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다. 2016년은 1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30, 2017년은 21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53에 그쳤다. SK의 2014년 2차 5라운드(전체 53순위) 지명을 받고 곧바로 군에 입대한 정영일 또한 2016년과 2017년 합계 30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7년 시즌을 앞두고는 팔꿈치 통증으로 이탈하기도 했다.
실제 김태훈의 2018년 연봉은 4000만 원, 정영일은 3000만 원에 불과했다. 10년도 넘은 계약 당시 받은 계약금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치였다. 그런데 그들이 일어났다.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오는 겨울은 전환점이 됐고, 그 결과 SK 마운드는 특별한 보강 없이도 강해졌다. 에이스의 귀환이었다.
김태훈은 지난겨울 혹독한 감량을 했다. 염경엽 단장과 손혁 코치의 주문은 딱 하나, 살을 빼라는 것이었다. 물론 무조건적인 감량이 답은 아니지만, 현재의 몸 상태가 김태훈의 장점을 짓누르고 있을 정도로 비대해져 있다는 판단이었다. 플로리다 1차 캠프의 합류 조건도 체중이었다. 구단이 정해준 수치에 맞추지 못하면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김태훈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아침은 거르다시피 했다”고 떠올린다.
정영일도 감량을 지시받았고, 좋지 않았던 팔꿈치 상태를 회복하는 데 땀을 쏟았다. 그 결과 몸 상태가 한결 가벼워졌고, 캠프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플로리다에서 몰라볼 정도의 공을 던지기 시작한 정영일은 오키나와 2차 캠프에도 합류하는 등 2018년을 순조롭게 풀어나갔다. 2017년 비슷한 시점 자신을 가로막았던 팔꿈치 통증도 없었다. 구단 일각에서는 "차기 마무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위를 확인한 SK 코칭스태프의 기대감도 커졌다. 김태훈은 김광현의 휴식 시간을 메울 6선발 및 왼손 셋업맨으로, 정영일은 우완 셋업맨 후보 중 하나로 봤다. 먼저 김태훈이 치고 나갔고, 정영일은 오키나와 2차 캠프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7000만 원, 왕년 에이스 듀오의 반격이 시작됐다. SK 불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체중 감량으로 몸의 회전이 크게 좋아진 김태훈은 강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140㎞대 후반의 빠른 공이 살아났다. 여기에 선배 김광현의 조언을 구한 슬라이더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영일은 시즌 내내 140㎞대 중·후반의 강속구를 던지며 트레이 힐만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즌 중반 약간의 부침은 있었으나 7월 10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93의 호투를 펼치며 기어이 필승조에 자리 잡았다. “1군에 가면 경쟁에 붙어 이길 자신이 있다”던 오키나와의 당찬 각오 그대로였다.
이들의 진가는 포스트시즌에 나타났다. 사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두 선수는 고민이 많았다. 연습경기에서 생각보다 구속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무대에 오르자 에이스의 심장들이 뛰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당차게, 누구보다 거침없이 타자들을 상대하며 0의 행진을 이어갔다. SK 불펜에 달려 있었던 물음표를 지운 것은 팔할이 이들의 공이었다.
김태훈은 이번 포스트시즌 전체 8경기 11이닝에서 단 1실점만을 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등판해 위기 상황을 지우는 불펜 에이스 몫을 톡톡히 했다. 정영일의 활약도 이에 못지않았다. 총 8경기 8⅔이닝에서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는 6이닝 동안 7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맹위를 떨쳤다. 어느새 SK의 마무리 포지션은 두 선수가 지배하고 있었다. SK는 두 선수의 역투를 등에 업고 통산 네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염경엽 신임 감독은 내년 불펜진 개편안을 신중하게 살피고 있다.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으나 마무리 교체도 검토 중이다. 김태훈 정영일은 그 후보군 안에 있다. 에이스들이 서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한국시리즈 우승 외에도 2018년 SK가 얻은 큰 성과 중 하나다. 사연 많은 에이스들의 2019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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