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브를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는다.” 내연 기관을 연구하는 엔지니어들의 까다로운 숙제였다. 흡기밸브와 배기밸브를 여닫는 시간만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면, 내연 기관의 이상인 효율과 퍼포먼스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엔진은 효율을 중시하면 퍼포먼스가 떨어지고, 퍼포먼스를 중시하면 효율이 약해지는 상충에 맞닥뜨려 있었다.
엔지니어들의 오랜 고민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기술진이 풀었다. 퍼포먼스와 효율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엔진을 개발했다. 밸브가 열려 있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상충하는 덕목을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한 게 아니라, 두 덕목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된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3일,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신기술 미디어 설명회’를 열고 종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엔진 기술을 공개했다. 엔진의 종합적인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연속 가변 밸브 듀레이션(이하 CVVD; Continuously Variable Valve Duration)이다. 이 개념은 곧바로 실제 엔진에도 적용 되는데 ‘스마트스트림 G1.6 T-GDi’가 그것이다.

흡기밸브와 배기밸브를 조절해 성능을 높이는 연구는 지난 수십년간 계속돼 왔다. 그 산물이 ‘연속 가변 밸브 타이밍(CVVT)’과 ‘연속 가변 밸브 리프트(CVVL)’다. 이 두 기술은 분명 향상 된 성능을 보였지만 여전히 한계를 안고 있었다. 주행 상황에 따라 밸브 열림 타이밍(CVVT)이나 열림량(CVVL)을 제어해 성능과 연비를 높여왔지만 엔진의 성능과 연비 중 하나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양쪽을 밸런스 있게 절충(타협)해야 했다.
기존의 엔진들은 연비를 우선시하는 아킨슨 사이클, 성능에 중점을 둔 밀러 사이클, 연비와 성능 절충형 오토 사이클 등 세 가지 중 하나의 엔진 사이클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고정된 밸브 열림 시간(이하 밸브 듀레이션, Valve Duration)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밸브의 열림과 닫힘을 늦추거나 당기는 건 가능해졌는데, 열림과 닫힘이 동시에 일어나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림을 늦추면 닫힘도 늦춰지고 열림을 빨리하면 닫힘도 빨라지는 한계가 있었다. 밸브가 열려 있는 시간을 이상적인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바꿀 수만 있다면, 성능과 연비, 친환경성 모두를 충족할 수 있지만 CVVT와 CVVL로는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열려 있는 시간(Duration)은 일정할 수밖에 없다. ‘밸브를 언제(CVVT) 어느 정도(CVVL) 열지’를 조절할 수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만큼 열고 있을지’는 조절할 수 없었다. 현대기아차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축과 캠으로 이뤄지는 밸브의 개폐장치에서 캠이 밸브를 누르고 있는 시간을 달리 할 수 있도록 했다. 열림과 닫힘을 따로 조절해 '열려 있는 시간(Duration)'을 다르게 할 수 있게 했다고 해서 CVVD라는 이름을 붙였다.
캠의 형상만 보면 기존 엔진의 캠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CVVD의 캠은 연결 링크의 중심을 이동시킬 수 있는 브라켓이 달려 있다. 연결 링크의 중심 이동으로 캠의 회전 속도가 달라지게 했다. 이 원리로 밸브를 오랫동안 누르고 있게(회전 속도 느림) 할 수도, 빠르게 스쳐 지나듯 누를 수도 있게 했다. 이 찰나의 차이를 통해 CVVD는 밸브가 열려 있는 시간을 1400단계로 제어할 수 있다. 캠이 밸브를 누를 때 연결 링크의 중심이 바뀌고, 연쇄적으로 캠의 회전 속도가 달라진다. 밸브가 일찍 열려도 늦게 닫히고, 밸브가 늦게 열려도 일찍 닫힐 수 있게 했다. 밸브가 열려있는 시간이 길거나 짧게 조절된다.
현대·기아차는 일본, 중국, EU 등 주요 국가에 각각 100여 건에 이르는 CVVD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고 한다. 특히 미국에 등록된 특허 수는 120건에 달한다.
CVVD 기술은 가속 주행, 연비 주행 등 운전 조건에 맞춰 흡기 밸브가 열려 있는 시간을 이상적으로 제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성능은 4%, 연비는 5%를 향상할 수 있다고 한다. 배출가스는 12%나 저감 된다고 한다. 열림 기간을 자유롭게 최적 상태로 제어하는 간단한 장치로 성능과 연비 향상, 배출가스 저감이라는 상충하는 3가지 난제가 동시에 개선됐다.
CVVD 기술은 연비 주행, 가속 주행 등 운전 조건 별로 밸브 듀레이션을 길거나 짧게 제어해 아킨슨, 오토, 밀러 사이클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는데 기술적인 우수성이 있다. 유효 압축비를 4:1~10.5:1까지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 가변 압축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CVVD 기술이 적용된 엔진은 출력이 적게 필요한 정속 주행시에는 흡기밸브를 압축 행정의 중후반까지 열어둬 압축 시 발생하는 저항을 감소시키고 압축비도 낮춰 연비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대로 가속 주행 시에는 흡기 밸브를 압축 행정 초반에 닫아 폭발에 사용되는 공기량을 최대화 해 엔진의 토크를 향상시킨다. 이는 가속성능 개선으로 나타난다. 최적의 밸브 듀레이션 구현으로 연료 연소율을 높여 배출가스 저감에도 높은 효과를 낸다. 과거 30년 동안 개발되어 온 가변밸브제어 기술은 물론, 133년 가솔린 엔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기술로 평가받을 만하다.

CVVD 기술이 적용 된, 스마트스트림 G1.6 T-GDi 엔진은 배기량 1,598cc의 4기통 가솔린 터보엔진으로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27.0kgf·m의 성능을 구현했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쏘나타 터보에 최초 탑재될 예정이며, 현대차·기아차는 향후에도 CVVD 기술이 탑재된 엔진을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
스마트스트림 G1.6 T-GDi에는 CVVD 기술 외에도 연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저압 배기가스재순환 시스템(LP EGR)이 국내 최초로 적용됐다. EGR시스템은 엔진에서 연소된 배기가스 일부를 다시 엔진으로 재순환시켜 연소실의 온도를 낮춤으로써 연비를 개선하는 한편 질소산화물 배출 저감을 유도하는 장치다. G1.6 T-GDi에는 연소된 배기가스를 흡기계가 아닌 터보차저 컴프레셔 전단으로 유입시키는 저압 시스템을 적용해 고부하 영역의 엔진 효율을 높였다.
이외에도 스마트스트림 G1.6T-GDi엔진에는 엔진의 온도를 신속하게 상승 혹은 냉각시켜 연비를 높이고 엔진 내구성과 가속 성능을 개선한 통합열관리시스템(ITMS; Integrated Thermal Management System), 기존 T-GDi 엔진의 연료 분사 압력인 250bar보다 40% 높은 350bar의 더 강력해진 직분사 시스템, 기계적인 마찰을 최소화한 구동부품을 적용해 엔진의 마찰을 34% 저감한 마찰저감 엔진 무빙시스템 등의 신기술들이 적용됐다.
현대차·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 알버트 비어만 사장은 “현대차·기아차가 독창적으로 개발한 세계 최초의 CVVD기술은 파워트레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첨단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자동차의 성능과 상품성 향상은 물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