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가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였어요. 하하.”
배우 이상엽이 격정멜로 ‘평일 오후 세 시의 연인’들을 끝내며 홀가분하게 웃음 지었다. 깊숙이 스며들어 속이 뻥 뚫린 기분이라는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남겨진 여운을 털어내는 듯 보였다.
이상엽은 28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채널A 금토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극본 유소정, 연출 김정민, 이하 ‘오세연’) 관련 인터뷰를 갖고 취재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평일 오후 세 시의 연인’은 금기된 사랑으로 인해 혹독한 홍역을 겪는 어른들의 성장드라마다. 불륜이라는 소재에서 오는 우려를 넘어서고 웰메이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좋은 마무리를 지었다. 공감대를 얻는 대본, 몰입을 돕는 연출, 그리고 이 모든 걸 표현해낸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작품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수작으로 꼽힌 것이다.
이상엽은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눈빛이 맑고 선한 대안학교 생물 선생님 ‘윤정우' 역을 맡았다. 정우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내와 떨어져 혼자 사는 인물로, 남편과 애정표현은 물론 감정적 교류조차 없었던 인물지은(박하선 분)을 만나 출구 없는 금기된 사랑에 빠진다. 후반부로 치닫을수록 감정은 심화되고 극한에 몰린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날 만난 이상엽은 “약간 가슴이 뻥뚫린 것 같은 요즘이다. 그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 ‘서서히 깊숙이 스며들다. ‘ 진짜 깊숙이 박힌 것 같다. 얼마전에 많이 아팠다. 일정 취소하고 누워있을 만큼. 그게 윤정우에서 이상엽으로 돌아온 걸로 느껴진다. 깊숙이 박혀 있던 드라마이지 않나. 오래 생각날 것 같다”고 여운 섞인 종영 소감을 전했다.

아무래도 초반에는 소재로 불륜이 등장한다는 점에 우려 섞인 반응이 있었던 것이 사실. 이상엽은 “소년미가 싹 빠진 어른 멜로를 해보고 싶었다. 중간에 한 번씩 피식피식 웃곤 하고, 코믹 요소가 중간중간 들어간 걸 많이 했던 터라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중에 눈에 잘 들어왔다. 뭔가 감당이 안 될 것 같긴 했는데 해보고 싶어서 하게 됐다”며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털어놨다. 방송을 거듭해 갈수록 호평이 쏟아진 것과 관련해 이상엽은 주변 반응을 통해 실감하게 됐다고. 그는 작품 방영 후 주변 반응에 대해 “되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 결혼한 친구들한테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친구들의 의견을 많이 받았다. 그런 것들 보면서 너무 감사했다. 사실 시작할 때는 이게 많은 분들에게 관심을 받을 거라 사실 예상을 못 한다. 질타를 많이 받을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생각 이상으로 많이 사랑을 해주셨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을 통해 40대 이상의 열렬한 팬층을 얻은 터다. 이상엽은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댓글들 보면 40대가 월등히 높더라. 그런게 되게 신기했다. 그분들의 공감을 얻었다는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멘트가 훨씬 더 직진이신데, 훅 들어오시니까 바로 답을 못해드리는게 미안하기도 하다. 많이 예뻐해주신다. 조금 더 편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서로 스무스하게 넘어가는게 되게 재밌다. 인사도 되게 편하게 한다. 넉살이 많이 늘고 있다”며 팬들의 사랑에 화답했다.
윤정우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이상엽은 “제 입으로 말하기 되게 민망한데 그냥 대사가 정우가 많이 없다. TMI적인 대사가 있긴 한데 감정을 드러내는 대사는 많이 없었다. 그래서 좀 얼굴에서, 눈에서 좀 많이 표현을 해보자, 목표였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쳐다보는게 제 목표였다. 열심히 보고, 상대가 내 눈을 통해 감정을 느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촬영 후 기절하듯 잠들었을 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도 있었다고. 이상엽은 “순간순간 제가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보여지는 모습이 저도 깨방정이지만, 때론 과묵해지는 성격이긴 한데. 그 점이 되게 어려웠다. 그냥 윤정우로 계속 있는 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위안이었던 건 하선 씨랑 같이 호흡 하면서 힐링을 많이 했었고, 그게 혼자 있을 때 윤정우인 신을 찍을 땐 저도 같이 뚝뚝 떨어져서 텐션 잡는게 어려웠다. 정우가 혼자 있을 때 조명도 어두웠다. 그런 기운, 분위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게 윤정우의 분위기였을 텐데 그걸 감당하는게 힘들었다. 정우와 지은이 만날 때는 늘 비가 왔다. 비 맞는게 익숙해질 법도 하는데 쉽지 않더라. 감정 잡았다고 생각하고 하는데 눈을 못 뜨고 빗물 들어가고 앞에 박하선 씨도 이러고 있고 재밌긴 하면서 쉽진 않더라”며 “그리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은이 정우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 다가올 때 밀치는 신이 그냥 놀람이고 그래야 하는데, 우스꽝스러워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신을 찍고 기절해서 자버렸다. 그 신에 대한 스트레스가 되게 강했나 보다. 고마웠던 건 그런 신을 찍을 때 감정적으로 서사를 쌓아주시려고 순서대로 찍었다. 야외촬영을 순서대로 찍긴 힘든데, 순서대로 찍어주니까 되게 좋더라. 마지막에 찍을 땐 막 올라와서 찍게 되더라. 이 자리를 빌려 제작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박하선과의 호흡은 ‘넘버원’으로 꼽았다. 이상엽은 “박하선 씨의 눈빛을 보고 박하선 씨의 아우라를 느꼈기 때문에 제가 많이 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티키타카가 잘 돼서 그렇게 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컷 소리가 나면, 저와 되게 비슷하게 잘 빠져나와서 둘이 반전으로 장난도 많이 쳤다. 당시에는 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살 수 있었다는 건 그 감정으로 살았으면 여기에 못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상엽은 “말로 딱 정의 내리긴 쉽지 않은데 그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같이 한 신을 찍어도 끝나고 좋았어, 라는 느낌이 있는데 상대도 그런 느낌을 받고 서로 나누면서 뭔가 잘 던져주는 사람이구나, 잘 받아주는 사람이구나, 너무 많은 신에서 느꼈다. 그리고 둘 다 되게 카메라가 꺼졌을 때, 메이킹이 돌았을 때 나오는 엔도르핀과 깨방정이 잘 맞더라. 그래서 전반적으로 재밌게 찍었던 것 같다”며 회상했다. ‘지금까지 맞췄던 배우들 중에서 박하선이 베스트인가’라는 질문에는 “넘버원이다”라면서도 “갑자기 박근형 선생님 얼굴이 생각이 난다”고 덧붙였다.
물론 박하선의 남편 류수영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었다고. 하지만 이상엽은 “현장에 서 있는 사람 자체가 캐릭터 ‘지은’이었다. 작품 이야기만 하다 보니까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눴다. 그래서 편하게 찍었는데, 말씀하신 순간 갑자기 걱정이 되긴 한다”며 웃음짓기도 했다.
이상엽은 워낙 연기와 예능을 넘나들며 활약해온 바. 동료배우 이선균, 김남길 등과 함께 케이블채널 tvN 새 예능 프로그램 ‘시베리아 선발대’를 통해 배낭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중 이선균은 종합편성채널 JTBC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 함께 출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상엽은 “아직 오픈이 되지 않은 거라 예능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면서 “저에게 스위치 같은게 있어서 예능을 가면 톤업이 엄청 많이 된다. ‘호빵’이나 ‘런닝맨’ 볼 때도 제 목소리가 안 나온다. 이런 말투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정우가 끝나기도 했고 그냥 나로 하고 싶었다. 정말 이상엽으로. 또 막내가 되면 자연스럽게도, 제가 외동이라 형들한테 애교가 되게 많다. 그냥 이상엽으로 좀 해보자, 해서 다른 형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이 작품은 본격 ‘이상엽 멍 예능’이지 않은가. 멍도 많이 때렸고 실수도 많이 했다. 실수라는 건 여기저기 좌충우돌 그런 것도 있었다. 제작진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예능인데 이상엽으로 가있어서 어떻게 편집을 잘 해주실지 모르겠지만, 이상엽이어서 기대가 좀 되기도 한다. 이랬는데 톱 엄청 업 되어 있으면 민망할 것 같다. 모두가 그런 걸 원하는 팀이어서 형들도 참여를 하지 않았을까. 형들의 숨겨진 모습을 많이 보실 수 있는 예능이다”고 말해 기대를 자아냈다.
이번 작품은 이상엽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우선 연애관, 결혼관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줬다. 이상엽은 “온전한 나로 누군가로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드라마를 보니까 결국엔 어느 순간 이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 지치지 않나. 상대에 맞춰서 나보다 상대에 앞섰을 때. 그런 걸 보면서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온전히 나로 사랑해야겠다, 100% 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런 걸 배운 것 같다”고 달라진 생각에 대해 털어놨다.
결혼관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 이상엽은 “한창 결혼을 정말 너무 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며 “이럴 때 이 작품을 만나서 생각을 달리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전과 다르게 요즘의 저는 온전한 나로서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 누군가에게 맞춘 모습이 나더라. 그게 내가 아닌데. 나중에는 연애를 하면서 힘들었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나로서 사랑을 하고 싶고 결혼을 하고 싶다. 제가 많이 불렀던 노래는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였다”고 밝혀 현장을 웃음짓게 했다.
이상엽은 시청자들에게 이번 작품이 ‘멜로의 어떤 좋은 한 드라마’, ‘재밌게 본 드라마’로 남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는 “식상한 이야기이긴 한데 이 드라마가 ‘박하선의, 박하선에 의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박하선 씨가 정말 정우의 눈빛과 정우의 연기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정우도 안 살았을 거다. 고맙고, 박하선 씨가 예능 출연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녀의 깨방정은 상상 초월한다. 그만큼 털털한 친구고, 저랑 또 같이 덤앤더머 남매편 같은 걸 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저랑 콩트를 진짜 잘한다. 그래서 그런 것들도 좀 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감독님의 처음 이야기가 딱 맞았다. 깊숙이 스며들어서 뻥 뚫리는, 오랜 여운이 남을 것 같다. 다른 활자가 잘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되게 몰입하게 해줬던 드라마였다. 참 술이 많이 땡기는 드라마였다”고 털어놨다. / besodam@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