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BIFF를 찾아 신작 비하인드부터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질문까지 유연하게 대처하며 거장의 면모를 드러냈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9층 문화홀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양준 BIFF 집행위원장이 모더레이터로 나섰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다. 그가 모국어로 연출하지 않은 첫 번째 영화이자, 첫 해외 올로케이션 작품이다. 출연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까뜨린느 드뇌브를 비롯해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이 열연했고,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995년 영화 '환상의 빛'으로 데뷔했고,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이자 세계적인 거장으로 통한다. '아무도 모른다'(2005), '공기인형'(201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 '세 번째 살인'(2017), '어느 가족'(2018) 등을 연출했다. 특히 '어느 가족'은 지난해 열린 제71회 칸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늘 (김해) 공항에서 직접 회견장으로 오게 됐는데, 약간 정신이 없지만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올해가 한국 영화 100주년이라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굉장히 기뻤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가 데뷔 이후 함께 걸어온, 함께 발전해 온 영화제다. 그런 부산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영광이다. 여러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수상 소감을 공개했다.


프랑스, 할리우드 등 국적이 다른 배우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고레에다 감독은 "의사 소통은 일본어 밖에 못해서 초반에는 커뮤니케이션 부분을 극복할 수 있을지 과제로 느껴졌다. 그런데 뛰어난 틍역사를 만났고, 그분은 이미 5년 동안 작업한 여성 분이다. 6개월 동안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그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평소보다 더 의식한 것은 직접 언어로 소통하지 못할 땐 손편지를 썼다.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써서 흔적을 남겼고,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이 방식은 일본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손편지 분량을 늘려서 소통했다"고 답했다.
이어 "또 하나 예를 들면 과거 배두나 배우와 작업했는데, 서로 공통 언어가 없는 가운데 촬영하면서 서로가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결여되고 있는지 촬영을 거듭해 나갈 수록 언어가 필요 없어졌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다음에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다음에는 어떤 길로 나가야 하는지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됐다. 언어를 넘어 서로가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런 게 영화를 만드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언어를 뛰어넘을 수 있구나!' 새삼 느끼게 됐다"며 놀라운 경험담을 언급했다.
캐스팅 과정에 대해서는 "10년 전부터 줄리엣 비노쉬 배우와 쭉 교류가 있었고, 가끔씩 만났다. 그로부터 언젠가 같이 영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번에 보답할 수 있는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2005년 플롯 상태의 이야기를 건넸다. 내 노트 첫 페이지에는 까뜨린느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가 구상돼 있었고, 내 꿈이 이뤄지는 형태로 이번 작품이 성사 됐다"고 답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 대해 "가족 드라마보단 '연기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여배우와 그의 딸, 그리고 젊어서 세상을 떠나게 된 여배우의 라이벌 존재까지 세 인물이 중심이다. 어떤 배우에 대한 오마주 의식은 없었다. 까뜨린느 드뇌브라는 배우가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여배우라서 그의 매력을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게 나한테 가장 큰 과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살고 있지 않은 곳, 평소 생활하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며 신경 쓴 곳이 있다. 에펠탑 앞에서 촬영한다거나 개선문을 등장시키거나 이런 것은 가급적으로 피했다. 일상적인 풍경들, 그들이 일상적으로 살고 있는 풍경을 그려낼 수 있도록 신경 썼다"며 주안점을 둔 부분을 얘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최근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한 질문도 나왔고, "일본 우익 세력들의 공격이 우려되면 답변하지 않으셔도 된다"라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예상했다"라며 웃은 뒤, "부산영화제가 과거 정치적인 압력을 받고 개최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상황에 직면했던 시기가 있었다. 전 세계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에 대한 지지 목소리를 냈다. 나도 미력하나마 목소리를 내며, 연대 의지를 표명했다. 그런 어려운 시기를 거쳐서 잘 극복해 부산영화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나도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그는 "당시 부산 영화제가 정말 대응을 잘했고, 아주 잘 견뎌냈다고 생각한다. 정말 정치적인 문제라든지 여러가지 고난을 겪었을 때,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영화인들이 연대함으로써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 이 자리에는 그런 영화의 힘을 믿고 있는 사람, 영화를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언론에 종사하느 저널리스트, 그 밖에 영화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1년 전, 황금종려상을 받고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는 "기획 자체는 2015년부터 출발했다. '어느 가족' 이전부터 이 영화를 준비했는데, 만약 '어느 가족' 이후에 기획을 시작했다면 그런 부담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평소에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타입이다. 오히려 칸에서 상을 받은 직후에 뉴욕에서 에단 호크를 섭외 하러 갔는데, '이런 시점에서 출연 제안을 받으면 거절하기 참 어렵죠?'라고 하더라. '정말 상 받길 잘했다'고 느꼈다. 제대로 칸 황금종려상의 은혜와 혜택을 받았다. 그동안 내가 어둡고, 무거운 영화만 만들어 왔다는 느낌은 없다. 나에게도 감독으로서 음과 양의 모습이 있다. 이번 작품에 관해서는 양적인 모습을 반영하고 싶었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평소 '일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일본 영화를 찍고 있다'고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프랑스 영화를 찍는다'고 의식하지 않았다. 난 항상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동시대 아시아의 감독들, 이창동 감독님, 지아장커 감독님 등 나의 동지들, 벗들의 작품에서 자극과 영감들 받았다. 그래서 나 또한 그분들에게 보여드렸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건 감회가 깊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와 함께 그는 "이번에 일본 밖으로 나가서 프랑스 스태프, 미국의 캐스트 분들과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평소 소속돼 있는 국가, 공동체보다 훨씬 더 크고 풍요로운 큰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가치관을 공유하고, 서로 이어지고 연대할 수 있는 경지, 그런 것을 느꼈을 때 정말 행복하다. 그런 시간들을 거쳐오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3일 개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2일까지 해운대 영화의 전당과 남포동 비프광장 등 부산 일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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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