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빛낸 두 편의 영화 '박쥐'(2009)와 '친절한 금자씨'(2005)에 얽힌 제작 스토리를 전했다.
박 감독은 6일 오후 부산 우동 신세계백화점 9층 문화홀에서 '플랫폼 부산-필름메이커 토크2: 박찬욱과의 대화'를 열고 영화 팬들을 만났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 팬들은 물론, 아시아, 미국, 유럽 등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박찬욱 감독은 "독립영화에서는 가능하나 대기업이나 제작사가 들어가면 감독의 의도대로 100% 영화를 만들 수 없다. 감독 전작의 흥행 성적이 다음 작품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 누구도 영원히, 완벽한 창조적 권한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성공한 감독도 (영미권에서는 가끔 갖기도 하나) 대부분 어렵다"라고 감독의 위치에서 발휘할 수 있는 선택권을 설명했다.
이어 박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가장 좋아하는, 모든 것을 쏟아낸 장면을 꼽았다. 바로 납치범(최민식 분)을 한 폐가에서 처단하려고 모인 유족들의 복수 장면이었다.

박찬욱은 "'친절한 금자씨'라는 제목을 갖고 이영애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사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후반부에 가서는 금자씨는 조연이다. 뒤로 물러나서 구경하는, 가끔씩 무언가 잘못될 경우 개입해서 조율을 해주는 정도로, 일이 잘 굴러가게 함으로써 일종의 구경꾼으로 스스로 퇴각시킨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를 구성할 때 제가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당연시 복수극의 주인공일 줄 알았던 사람이 뒤로 물러나고 조연으로 여겨졌던 유족이 전면에 드러나 임무를 수행한다. 금자씨의 복수극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다른 사람들의 복수극이었다는 게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다. 그들이 금자씨가 만들어 놓은 복수의 무대에서 복수를 한다. 제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잘 구현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조화롭게 잘 구현됐던 거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원도에 있는 폐교를 구해서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제가 원하는 천장의 상태였는데, 마감재들이 다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남아 있어서 좋았다. 미술팀도 구현하기 어려운 상태인데, 적절한 장소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능력을 뛰어넘을 때가 종종 있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다"고 전했다.

박찬욱 감독은 "또 하나의 경험은 각본을 쓸 때 최민식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게 회심의 대사였다. 그게 나중에 생각해보니, '뜨거운 것이 좋아'(1961)의 마지막 대사였다"라며 "빌리 와일더 감독의 마지막 대사다. 영화 역사에 남을 대사인데, 까먹고 있었다. 아마도 제 머릿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무의식 중에 나온 거 같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고, 읽은, 어디서 들은 이야기들이 머리에 남아 있다가 사용될 때가 종종있다는 좋은 예였다"고 했다.
영화 속 의상인 우비 및 트렌치코트에 대해서는 "인물 한 명 한 명의 스토리가 다르고, 그들의 감정, 선택이 다르다. 누구는 굉장히 용감하고 욱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주저하기 떄문에 개별성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그룹으로 묶일 수 있는 면이 있기에 그런 점에서 다를 바 없는 하나의 그룹을 표현하고 싶었다. 상반된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의상은 우비가 맞았다"고 밝혔다.
"가장 중요했던 의상은 금자씨의 트렌치코트다. 금자씨가 단추를 채우고 얼굴의 반을 가리게 함으로써 관찰자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오로지 보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콘셉트를 구현하기 위해 새롭게 디자인하고 만든 옷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죽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배움이 이뤄지는 곳을 말하기 위해 학교 교실을 택했다. 대사 중에 한 아버지가 '이런다고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라고 하는데, 이건 복수극의 새로운 질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카메라를 향해 칼을 내밀고 밀려들어온다. 저는 이게 복수극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게 복수다. 죽인다고 해도 못 돌아오는 걸 알지만 복수는 이성적인 판단에서 멈춰지지 않는 것이다. 자기 의지와 다르게 그냥 하도록 빨려 들어가는, 하도록 강요되는 느낌을 표현하는 앵글이고 연기였다."
"유머를 활용해서 슬픈 영화는 더 슬프게 하는 기능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불어 제가 원하는 관객의 반응은 도끼를 조립하는 남자를 보며 일단 웃고, 그러고나서 그의 행동을 보면 내가 웃은 게 미안해지는 '저렇게 불쌍한 사람을 놓고 내가 웃어버렸네?'라는 죄의식을 조금 느끼게 하는 게 저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금자씨는 '메타 복수극'이라고 생각한다."

이영애는 금자씨 캐릭터를 통해 2030세대 청춘의 감성을 뒤흔든 멜로부터 그로테스크한 스릴러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 세기를 풍미한 대배우로 우뚝 섰다.
박 감독은 영화 '아가씨'(2016), '스토커'(2013), '박쥐'(2009),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친절한 금자씨'(2005), '쓰리 몬스터'(2004), '올드보이'(2003), '복수는 나의 것'(2002),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의 작품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박쥐'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그가 꼽은 명장면은 뱀파이어가 된 신부(송강호 분)가 태주(김옥빈 분)의 피를 마시고, 죄책감을 느껴 그녀에게 다시 자신의 피를 수혈하는 장면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는 10년 동안 구상하다가 만들어진 작품이었다"며 "핵심은 신부가 태주를 죽이는 걸 의식한 순간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죄의식은 사라지고 욕망이 그걸 채운다. 자기가 죽인, 사랑하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게 첫 단계였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신부가 나중엔 그녀를 되살릴 생각을 한다. 뱀파이어로서의 삶은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피를 줌으로써 되살릴 생각을 하는 거다. 자신이 상처를 내서 그녀가 다시 피를 먹게 해준다. 여기서 혈액형은 생각하지 말자였다.(웃음) 미친 광기의 애정이 끝까지 갔을 때 하나의 피로 합쳐진다는 궁극적인 단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하.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서 키스를 하고,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피를 흡혈하게 해준다. 이것이야 말로 키스 중의 키스다.(웃음) 영화 역사상 최고의 궁극의 키스를 선보이겠다는 마음으로 이 3단계를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한 번에 떠올랐는데, 그 이후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는 잘 안 풀리더라"고 설명했다.
이에 박찬욱은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모티프로 삼았다. "저는 원래 그 소설을 따로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 19세기 말 파리를 배경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안수현 프로듀서가 '그럼 두 개를 합치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했는데 괜찮은 생각 같았다. 그 조언을 받아들여 하나로 합쳐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저는 독불장군의 세계를 알고 싶지도 않고, 모른다.(웃음) 함께 무언가 만든다는 것 내 머리에서 모든 게 나왔어도 그들에 의해 수정되고, 그들이 자기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 그 즐거움을 모른다면 혹은 그 즐거움을 알고 싶지 않다면 영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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