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갈았죠"..연기 소신 뚜렷한 유태오만의 '버티고'(종합)[인터뷰]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9.10.17 12: 55

"멜로에 대한 로망이 있었죠."
배우 유태오(39)가 1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주연을 맡은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 제작 영화사 도로시·로렐필름)로 인터뷰 자리를 갖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부터 캐릭터를 준비한 과정, 완성본을 본 소감 등을 상세하게 털어놨다. 자신이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밝히고 소통하려는 모습에서 그만의 진솔함이 느껴졌다. 
현재 극장 상영 중인 '버티고'는 고층의 사무실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는 서영(천우희 분)과 외줄에 의지해 건물 외벽을 청소하는 로프공 관우(정재광 분)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다 마침내 마천루 꼭대기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궁극의 멜로 영화. 서영이 비정규직 여성으로서 겪는 내면의 고통과 아픔을 심리적으로 추적한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태오는 이날 "영화를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울었다. 특히 (관우가)'힘내요'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도 그 장면에서 울었다"며 "영화를 보는데 (시나리오를 봤을 때)그 장면에서 울었던 기억이 났다. 단 한 문장이었지만 서영이가 거기까지 버텨온 상황들에 공감이 가면서 눈물을 흘렸다. 현기증은 흔한 병이 아닌데 그런 힘듦을 잘 견딘 서영의 모습이 제게 어떤 위로가 된 거 같다"고 영화를 본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서영의 직장 상사이자, 그녀와 사내 비밀연애를 하는 남자친구 진수로 분했다. 진수는 IT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데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남자. 유태오는 진수 캐릭터를 해석한 것에 대해 "감독님과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엄청 많이 상의했다. 그 안에서 (인물들 간의)갈등을 보여주려고 했다. 제가 전달하고자했던 건 다 전달했다"며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단순화되어 나쁜 남자로 보였다면 제가 제게 주어진 숙제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진수는 서영과 열애하는 사이지만, 타인에게 철저히 비밀로 하며 치명적인 비밀을 숨기고 있다. 외부에 자신에 대해 털어놓지 않는 비밀이 많은 남자인 것. 그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인해 서영은 더 큰 심리적 충격과 압박을 느끼게 된다.
진수에 대해 그는 "저는 영화에 들어갈 때 안타고니스트는 스스로 나빠지는 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 자신의 감정 처리를 투명하게 하지 못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진수는 나쁜 남자가 아니다. 자기만이 힘들어하는 지점이 있다"라며 "진수의 세계관에서는 서영이 대상화된 인물이다.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어떠한 상징이 될 수 있다. 결국 진수는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못 이기고 서영을 상처 받게 만들었다"고 해석 방향을 전했다. 유태오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수는 '나쁜 남자'는 아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어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촬영한 게 9개월 전이라 가물가물하다. (진수와 서영의 대화가 묵음처리된 부분에서) 감독님이 제게 '진수가 무슨 말을 할 거 같냐?'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저는 제 속마음을 풀어가면서 찍은 것도 있고, 아예 대화가 없는 테이크도 있었다. 서영의 리액션을 잡기 위한 테이크도 갔고. 두 번째 테이크에선 많은 대화가 없었지만 어떻게든 미안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담으려고 했던 거 같다"고 답했다.
유태오는 '버티고'의 촬영 전부터 천우희와 알고 지낸 사이지만 작품을 통해 연기 호흡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 "제가 알았던 천우희대로 털털하고 좋았지만 현장에서 보고 새롭게 발견한 게 있다. 결과적으로 나온 완성본을 보니, 천우희는 진짜 똑똑한 배우구나 싶었다. 똑똑한 만큼 감수성도 풍부하다. 캐릭터와 본인이 해석한 게 매치가 잘 되어야 화면에 잘 보이는데 (서영 캐릭터와 천우희가 일치해)화면에 잘 나왔다. 천우희의 힘으로 이 영화를 이끌고 간 거 같다.(웃음)"
현기증 나는 고층빌딩 숲 사무실에서 매일을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30대 비정규직 디자이너 서영은 안정적인 삶을 원하지만 현실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불안정한 계약직, 사내 비밀 연애 중인 연인 진수와의 불안한 관계, 밤마다 시달리는 엄마의 전화까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낀 그녀가 무너져내릴 때 창 밖에서 로프에 매달린 채 그녀를 지켜보는 남자 관우를 마주하게 된 과정이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스럽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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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유태오는 "저는 (한국형)멜로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거 같다. 취향이 로망으로 변한 거 같은데 어릴 때 미국에서 살 때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한국 영화 비디오를 자주 빌려다 봤었다"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영화에는 멜로 장르가 굉장히 많았다. 그 이후에 파워풀해졌지만. 저는 당시 나온 영화 '약속',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종류의 멜로 영화를 많이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멜로 장르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던 터라 멜로를 표방한 '버티고'의 출연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고.
'버티고'를 만족스럽게 본 그는 "제가 멜로에 젖었던 느낌이랄까. 이런 영화에 한 번 출연하고 싶었는데, 물론 정통멜로는 아니지만, '버티고' 같은 장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무엇보다 유태오는 '버티고'의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전계수 감독과 두 번째 만남이다. 전 감독의 전작 '러브픽션'(2012)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유태오는 "감독님이 영화일을 하시기 전에 IT회사에서 일했다. 근데 그곳에 진수 같은 상사가 있었다고 한다"며 "저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시나리오를 보고 진수에 대한 전사를 만들어 준비했는데, 가정 교육의 결과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이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타고난 것인지 스스로 질문해봤다. 제가 내린 결론은 진수는 타고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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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영화 '레토'(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비로소 이름을 알린 유태오. 이 영화가 프랑스 및 러시아, 국내에서 상영되고 무명을 견딘 유태오의 발전 가능성이 입증되면서 그는 영화계는 물론 방송가에서 전보다 많은 출연 제안을 받고 있다.
무명 기간에 혹독하게 담금질을 마친 그는 배우로서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는 무한대로 맡을 수 있겠지만 '모르지만 한 번 해볼까?'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연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게 핵심.
"저는 발견형의 사람이 아니다. 저에 대해 알아가고 발견하는 건 사춘기에 다 끝냈고. 저는 연기를 할 때도 제가 알고 표현할 줄 아는 범위 안에서 하는 게 좋다고 본다. 무턱대로 모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배우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 발견하고 싶어서 뭔가 하겠다고 나서는 건 아닌 거 같다"면서 "(배우라면)프로페셔널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는 건 안 된다. 한 번 하면 (캐릭터화 돼)달인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지, 내가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형태로 보여주는 건 아닌 거 같다"라는 연기 소신을 밝혔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면서 그는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배가본드' 이후에 한국영화에서 이렇게 비중이 큰 역할을 맡았던 것은 '버티고'가 처음이다. 외국작품에선 주연을 했지만. 이번에 고민이 됐던 건 한국어 대사인데, 제가 대사를 친 말로 관객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저의 한국말 수준이 받쳐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개봉 이후)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잘 넘어갔구나' 싶다.(웃음)"고 나름의 성과를 전했다.
유태오는 "작년에 영화 '레토'를 봤고 그 이후에 어마어마한 캐스팅 콜이 들어왔다. 제가 소속사와 약속을 한 것은 무조건 일을 많이 하자였다. 인지도를 올려야 하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저는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 정신을 갖고 있다. '아스달 연대기'나 '배가본드', '버티고' 모두 제 안에 있는 감정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새로운 발견을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한 다음 단계로 왔구나 싶다"고 덧붙였다.
"저도 당연히 힘들었던 때가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연기 공부를 마치고나서 한 8~9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커리어도 커리어지만, 여러 가지로 일이 안 풀렸는데 그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점을 찾으려고 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스스로 파악도 하고. 도를 많이 닦았다고 할까?(웃음) 여러 가지 표현이 다 맞을 정도로, 숙성도 했고 칼을 갈았다.(웃음)" / watc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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