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두산 베어스 퓨처스 구장 베어스파크. 많은 선수들이 방망이를 돌리고 있을 때 오명진(19・두산)은 벽을 마주봤다. 오명진이 택한 '생존의 방법'이었다.
오명진은 2020년 2차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전체 59순위)로 두산에 입단했다. 키 180cm의 몸무게 79kg의 당당한 체구로 공격과 수비 모두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인 첫 해 1군 무대도 경험했다.
두산 박철우 퓨처스 감독은 "야구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라며 "아침과 야간 모두 성실하게 훈련을 한다. 정말 실력이 느는 것이 보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명진은 "나의 최고 장점은 정신력이라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당찬 프로 무대 출사표를 던졌다.
# 삼촌따라 야구장 "유격수 외길"
오명진에게 야구는 남들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면서 삼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야구 팬' 삼촌은 오명진의 손을 붙잡고 종종 야구장을 찾았다.
"야구 하고 싶다" 7살이 된 오명진은 어느덧 멀리서 야구를 보는 것보다는 직접 그라운드로 나서길 원했다.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했다. 바로 인근 리틀야구단을 알아봤고, 오명진의 '야구 인생'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대전 신흥초-한밭중-세광고를 졸업한 오명진은 꾸준히 유격수 외길을 걸었다. 강한 어깨에서 나온 강력한 송구는 오명진의 장점이다. 고등학교 연습경기 때에는 갑작스러운 마운드 등판에도 시속 143km의 공을 던지기도 했다.
오명진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프로에서 탐낼만한 인재로 성장했다. 동기부여도 확실했다. 프로에 진출한 김선기(29), 윤정현(27·이상 키움), 김형준(21·NC) 등 고교 선배들은 종종 모교에 와서 장비를 주는 등 ‘멋진 선배’ 역할을 했다.
특히 김형준과는 막역한 사이다. 6월 말 창원 원정 당시 김형준은 오명진에게 장비나 필요한 물건 등을 잔뜩 주면서 우정을 과시했다. 오명진은 "야구 잘하고 성공하게 되면 선배들처럼 후배를 많이 챙기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비도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갈 당시 타격 연습을 하던 중 손에 통증이 왔다. 병원에 가니 손바닥 유구골에 골절이 발견됐다. 중요한 시기에 나온 부상. 조급한 마음도 생겼지만,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재활을 무사히 마친 그는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고3 시절 21경기에 나온 그는 타율 4할5리(79타수 32안타) 1홈런 OPS(장타율+출루율) 1.049를 기록하면서 존재감을 뽐냈다.
운명의 2020년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59번째로 '오명진' 이름이 울려퍼졌다. 오명진은 "특별히 가고 싶은 구단은 없었다. 어디든 불러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라며 "그래도 두산은 생각하지 못해 얼떨떨했다. 밖에서 두산은 강하고 '어차피 이기는 팀'이라는 이미지였다. 보고 배울 수 있는 선수, 코치님들이 많아서 좋았다"고 회상했다.
오명진은 "팀에 주축이 돼서 우승을 함께 하고 싶다"라며 "나중에는 성실했던 선수로 팬들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사람으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등학교 시절-중학교 시절-초등학교 시절 오명진 / 오명진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0/07/27/202007272121778246_5f1f0f142a79b.jpg)
# 감탄의 연속 "이곳이 프로구나"
프로의 무대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리그 최고로 불리는 두산의 수비진의 모습을 본 신인들의 입에서는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았다.
올 시즌 두산 신인들에게는 뜻밖의 배움 기회가 찾아왔다. '국가대표 3루수' 허경민이 코뼈 부상으로 대만 퓨처스 캠프에서 시즌을 준비했다. 퓨처스 선수들은 허경민의 ‘교과서 수비’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박철우 퓨처스 감독도 “(허)경민이가 대만 캠프로 온 것이 오히려 어린 선수들에게는 좋은 시간이 됐다. 단순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신인들에게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줬다. 시범경기가 취소되고 시즌 개막이 약 한 달 반 정도 밀리면서 구단들은 자체 청백전을 꾸준히 진행했다. 두산 역시 자체 청백전을 진행한 가운데 오명진, 박지훈 등 몇몇 신인들은 잠실로 콜업돼 1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경기를 치렀다.
오명진은 “김재호 선수의 공 빼는 속도가 놀라웠고, 허경민 선배님, 최주환 선배님 등 모두 보니까 엄청 잘하셨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사이 롤모델도 생겼다. 최주환과 허경민은 실력과 인성으로 오명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명진은 "정말 많이 챙겨주셨다. 내가 성격이 무뚝뚝한 편인데 선배님들이 살갑게 잘 챙겨주셨다. 두 선배님처럼 야구적으로도 잘하고 인성적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최주환과는 '감동 일화'도 있었다. 오명진은 "1군에 처음 등록됐을 때 최주환 선배님이 첫 안타를 치면 '(김태형 감독의 우승 선물과는 다른) 좋은 샴푸'를 선물해주신다고 하셨다. 안타를 못 치고 다시 2군으로 왔는데, 샴푸를 보내주셨다. 첫 경기 출장 축하 선물이라고 하시더라"고 고마워했다.

# "타석에 많이 서기 위해서" 오명진, 매일 벽을 마주하는 이유
오명진은 6월 25일 SK 와이번스와의 더블헤더 당시 특별 엔트리로 등록됐다가 곧바로 말소되지 않고 창원 NC전 원정경기에 동행했다. 대수비로 두 경기, 대타로 한 경기 출장한 그는 두 차례 타석에 섰다. 김정빈(SK), 박진우(NC)를 상대했던 그는 뜬공과 땅볼로 물러났다.
짧은 1군 경험. 오명진은 다시 오를 날을 기다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다만, 공격보다는 수비에 열을 올렸다. "수비가 안 되면 타석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아 내 장점인 공격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오명진의 설명이었다.
박철우 퓨처스 감독은 "많은 타자들이 타격에 주안점을 두는데, 야구를 오래하고 잘하기 위해서는 수비를 잘해야 한다. 타격에는 기복이 있다. (김)재호나 (허)경민처럼 수비의 핵인 선수는 수비를 인정받고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많다"며 오명진의 자세를 높게 샀다.
오명진의 '수비 기본기 다지기'에 공필성 퓨처스 야수 총괄 코치가 팔을 걷어붙였다. 수비 시 자세를 잡아주며 오명진의 수비력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오명진은 "2군에서 공필성 코치님께서 많이 도움을 주셨다. 학교 다닐 때는 바운드 처리할 때 핸들링은 3~4개 정도밖에 배우지 못했는데, 프로에서는 13~14개를 배웠다. 상황에 따라서 핸들링이 다 다르다는 걸 배우다보니 실전에서도 여유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오명진에게 "오명진은 ㅇㅇㅇ다"로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성실함"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부했던 성실함은 성장 촉진제가 됐다. 매일 저녁 오명진은 이천 베어스파크 한 쪽에 마련된 벽을 찾았다. 공을 던지고 받으면서 수비 연습을 했다. 한 번도 빼먹지 않은 훈련이다.

타격 연습에도 소홀함은 없었다. 오명진 역시 자신의 장점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연습을 했다. 저녁 식사 후 야간 훈련을 앞두고 롱티를 치면서 연습을 홀로 하곤 했다. 김재환이 알려준 일명 '중장거리 타자 성장' 비법이었다.
박철우 퓨처스 감독은 "목표 의식이 확실한 선수"라며 "처음에는 부드럽지도 않고 핸들링 등이 약했다. 그런데 야간에 수비 연습을 열심히 하더니 많이 늘었다. 안정감도 많이 생긴 만큼, 감독으로서 수비할 때 모습이 보기 좋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KBO리그는 지난 26일부터 관중 입장에 들어간다. 10% 이내로 제한적이지만, 야구장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명진이 1군에 올라왔을 당시에는 코로나19로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오명진은 "다시 한 번 준비잘 해서 팬들 앞에 서고 싶다"라며 "항상 응원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우승팀에 어울리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미안함과 고마움…'오빠 오명진'
오명진의 메신저 프로필 배경은 가족 사진이다. 그만큼 가족을 향한 오명진의 마음은 남달랐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또 이제 18살, 9살인 두 명의 여동생에게 고마워요. 부모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나에게 많은 정성을 쏟아주셨어요. 프로야구 지명 받았을 때 고맙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제가 고마운데 말이죠. 또 부모님께서 저에게 신경 써주시면서 동생들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정말 보답하고 싶어요."
오명진에게 '동생들에게 프로 성적에 따른 공약을 걸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오명진은 "월급을 받으니 첫 안타를 치면 용돈을 주도록 하겠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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