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터진 한화 레전드, "은퇴 실감, 30~40점짜리 야구 인생" (일문일답)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0.10.22 16: 32

한화의 자존심, 영원한 4번타자 김태균(38)이 눈물의 은퇴 소감을 밝혔다. 
김태균은 2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1일 구단을 통해 은퇴를 공식 발표한 김태균은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은퇴사에서 "매년 팬들에게 시즌 전에만 희망을 드렸는데 그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 평생의 한"이라며 한국시리즈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북일고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한화에 입단한 김태균은 2010~2011년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에서 뛴 기간을 제외하면 18시즌 모두 한화에만 몸담았다. 통산 2014경기에서 타율 3할2푼 2209안타 311홈런 1358타점 3557루타 1141볼넷 출루율 .412 장타율 .516 OPS .937을 기록했다. 

김태균이 기자회견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rumi@osen.co.kr

통산 3000타석 기준으로 역대 타율 5위, 안타-타점-출루율 3위, 루타 4위, 홈런 11위, 볼넷 2위에 올랐다. 우타자 기준으로는 타율, 안타, 타점, 루타, 출루율, 볼넷 모두 1위. 우타자로는 유일하게 300홈런 2000안타를 달성했다. 홈런왕과 타격왕을 한 차례씩 차지했고, 출루율 1위도 4차례 올랐다. 골든글러브도 3회 수상. 4차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다음은 취재진과 김태균의 일문일답. 
김태균이 한화 주장 이용규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rumi@osen.co.kr
- 우승을 못한 것에 아쉬움이 큰 것 같다. 
▲ 그때는 저도 어렸고, 워낙 좋은 선배님들이 많이 이끌어주셨다. 2006년 한국시리즈를 경험하면서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그때는 우리가 강팀이었고, 언제든 기회가 또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우승이 힘들다는 것을 꺠닫게 됐다. 저도 항상 후배들한데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기회가 올 때 최선을 다해서 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 
- 별명이 많은데 팬들에 야속한 마음은. 
▲ 야속하다기보다 돌이켜보면 팬들이 많은 별명을 지어주시면서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봤다. 안 좋은 별명도 많았지만 그런 것도 관심이라 봤다. 저도 그런 것을 접하면서 웃은 적도 있었다. 야속한 것보다 팬들의 사랑과 관심이라 생각했다. 이제 그런 별명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가장 기억에 남는 별명은) 어릴 때는 김질주가 좋았다. 덩치 크고, 느릿느릿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김질주가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는 한화의 자존심이란 별명이 좋았다. 
- 지난겨울 FA 1년 계약을 했는데. 
▲ 1년 계약을 하며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게 있다. 납득하지 못할 성적이 나면 결단을 내리고 싶었다. 저로 인해 팀이 부담이 되는 것을 줄이고 싶었다. 1년 계약을 하고 어느 해보다, 20살 젊을 때보다 웨이트라든지 운동량을 많이 가져갔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해보다 준비를 잘했는데 시즌 개막하고 나서 얼마 안 돼 2군으로 내려갔다. 그때 마음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팀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열심히 했다. 8월에 (부상으로) 다시 2군 가면서 거의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서산에서 유망한 젊은 선수들을 많이 보면서 은퇴 결심을 하게 됐다. 
- 최근까지도 열심히 훈련하다 짐을 뻈는데. 
▲ 2군이 있는 서산은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곳이다. 1군 무대에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준비하고 노력하는지 알고 있다. 나 때문에 우리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평상시와 행동했다.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선수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성실히 답변하려 했다. 최대한 (은퇴하려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 선수 생활 막판 홈런에 대한 부담이 많았는데. 
▲ 아마추어 시절부터 아웃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삼진 당하는 것도 싫었다. 아웃이 되더라도 배트에 공이 안 맞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다. 항상 타율도 좋고, 홈런도 잘 치고, 안타도 잘 치는, 투수들이 상대하기 꺼려하는 타자가 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프로에 와서도 그렇게 포커스를 맞추고 준비했다. 홈런이 많지 않지만 다른 쪽으로 제가 생각하는 좋은 타자의 기준에 맞춰 해왔다. 개인 성적이나 타격 메커니즘에 대해선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다. 더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김태균이 기자회견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rumi@osen.co.kr
- 제2의 김태균은 누가 있을까. 
▲ 사실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선수가 있지만 말하기 글허다. 모든 후배 선수들이 잘했으면 좋겠다. 다 같이 포스트 김태균이 되어서 한화가 최강 팀이 되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다. 굳이 1명을 지목하진 않겠다. 
- 여러가지 기록이 많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기록을 의식하면서 뛰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300홈런, 2000안타, 1000타점 기록을 만든 것이 뿌듯하다. 주목을 많이 받은 86경기 연속 출루 기록도 떠오른다. 
- 데뷔 첫 해 활약으로 큰 선수가 될 것이란 기대대로 했다. 
▲ 데뷔 첫 해 안타가 기억난다. 그때 당시 아버지가 TV로 보시다가 우셨다. 그 타구가 가장 기억에 난다. 주변 기대와 관심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주위에선 그냥 야구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누구한테도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노력도 많이 했다. 성격상 겉모습과 다르게 예민한 면도 있었다. 남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주위 기대에 크게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올 시즌이 아쉬울 듯하다. 
▲ 선수라면 시작만큼 마무리가 중요하다. 누구나 멋있게 마무리하길 꿈꾼다. 이승엽 선배라든지 박용택 선배라든지 좋은 마무리를 꿈꿨다. 다들 각자 상황이란 게 있다. 제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이었고, 저희 팀 상황에서도 제가 빨리 결정을 해주는 게 좋을 것이라 봤다. 
- 은퇴 이후 계획은 어떻게. 단장 보좌 역할은 어떻게 하나. 
▲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못해본 것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한화 이글스가 좋은 팀으로 갈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고 싶다. 주위 좋은 선배님들께 조언을 구해 어떤 식으로 뭘 배우고 준비해야 할지 생각을 해보면서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단장 보좌 역할은) 구단이 팀을 이끌어가는 부분에서 저도 같이 조언을 하고,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공부 열심히 해서 준비하도록 하겠다. 
김태균이 기자회견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rumi@osen.co.kr
- 부모님을 떠올린다면. 
▲ 아무 것도 모를 때 아버지가 야구를 시키셨다. 그 어린 나이에 방황 아닌 방황도 했다. 맨날 야구 안 한다고 집에도 가는 상황이 있었다. 그때 초등학교 시절 감독님이 잡아주셨고, 아버지도 잡아주셨다.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이 길로 기야되겠구나 하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때부터 전혀 다른 쪽으로 부모님 속을 썩이거나 야구 외에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목표를 갖고 거의 야구만 했다. 중학교 시절 부모님이 외진 곳에 훈련장을 만들어주셔서 쉬는 날에도 캐칭과 배팅 연습을 했다. 야구만 보고 살아왔다. 아버님도 제가 운동 끝나고 오면 스윙 1000개씩 안 하면 잠을 못 자게 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셨다. 그래서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이글스 유니폼을 벗지만 제2의 인생이 기대된다. 
- 1982년생 동갑내기 선수들이 아쉬워하는데. 
▲ 저 때문에 친구들이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불편한 상황을 만든 것 같다. 미안하게 생각한다(웃음). 제겐 지금 최선의 선택이었고, 친구들은 더 오래오래 야구 잘해서 더 멋있게 했으면 좋겠다. 제가 하지 못한 멋진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대표팀에서 서로 좋은 추억들이 많은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더 잘해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하길 바란다. 
- 아내와 가족, 친지들은 은퇴에 어떤 반응인가. 
▲ 집에선 제 의견을 존중해줬다. 수고해줬다고 했다. 주변에서 ‘더 할 수 있는데’라며 아쉬워하셨다. 그렇지만 지금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오히려 내가 설득했다. 
- 선수 생활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 30~40점밖에 안 되지 않나 싶다. 최선을 다했지만 팀의 중심타자였고, 주축 선수로서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점수를 많이 줄 수 없다. 
- 감사한 지도자나 스승님 3분만 꼽자면. 
▲ 엄청 많은데…(웃음). 이정훈 전 2군 감독님은 신인 때부터 저한테 기대하시고 도움을 주셨던, 야구 외적으로도 저를 정말 동생처럼 아껴주시고 챙겨주셨다. 김인식 감독님과 할 때 야구가 많이 늘었다. 개인 훈련의 중요성을 깨달을 시기였다.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김성근 감독님 계실 때도 제가 안주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노력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해주셨다. 
- 기자회견 전 눈물을 흘린 이유는. 
▲ 마음의 결정을 하고 준비할 때도 마음이 담담했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 남는 것도 없고, 감정이 아무렇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지금처럼 큰 관심 받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울컥했다. 
김태균이 기자회견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rumi@osen.co.kr
- 등번호 52번은 영구결번이 유력한데. 
▲ 구단과 관계자 분들이 결정하시는 것이다. 저보다 훌륭한 선수도 많다. 뛰어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영광스런 것이다. 
- 팬들이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나. 
▲ 어떻게든 기억해주시면 좋을 듯하다. 저의 강점이 김별명이란 게 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팬들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전에는 그런 것을 못 느꼈는데 지금은 팬들에게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부분이라도 기억만 날 수 있다면 좋을 듯하다. 
- 기부 활동을 비롯해 프로로서 많은 모범을 보였다. 
▲ 저희는 팬들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고, 선수이다. 저도 어릴 때는 열심히 야구만 잘하려고 노력했다. 뭔가 팬들에 소중함을 인지하기 쉽지 않았다. 프로 생활을 오래 하면서 팬들의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젊은 선수들은 그런 부분을 인지 못할 수도 있다. 조금 더 빨리 인지해서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중요한지 깨닫길 바란다. 거기에 맞게 운동이나 자기 관리 부분에서 한 번 더 생각하길 바란다. 
- 단장 보좌로서 구단에 필요한 변화는. 
▲ 결정권이 있는 보직은 아니다. 감독님, 단장님, 사장님, 구단 관계자 분들이 좋은 결정을 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전 이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상황이고, 선수로서 드릴 수 있는 정보가 많이 있을 것이다. 팀이 새롭게 추진하고 바꾸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뭔가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제대로 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와 공부를 해야 한다. 열심히 준비하겠다. 
- 팬들은 마지막이라도 한 타석을 더 보고 싶어 하는데. 
김태균이 정민철 단장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rumi@osen.co.kr
▲ 그것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감사하게도 구단에선 은퇴 의사를 전달했을 때 은퇴 경기를 제의해주셨다. 저만의 한 타석, 개인적으로 소중하겠지만 저보다 더 간절하고 소중한 타석의 선수들이 있다. 제가 마지막 가는 길에 선수의 소중한 기회를 뺏는 게 아닌가 생각을 많이 했다. 다시 번복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자리에 어떤 선수가 나가서 내년에 좋은 결과를 내고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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