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조’는 어떤 이에게는 영광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굴레다. 심리적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의 챔피언조는 달랐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중계 카메라가 딴 곳을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
올 시즌 KLPGA 투어 중 가장 큰 우승상금 3억 원이 걸린 대회인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총상금 15억 원)’이 3라운드를 마쳤을 때 박민지와 안나린, 그리고 장하나가 중간합계 7언더파로 공동선두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8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파72/6,474야드)에서 최종라운드가 열렸을 때 이들 세 선수는 챔피언조의 영광을 유감없이 누렸다. 특히 주목을 받아 마땅한 선수는 안나린(24, 문영그룹)이었다.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4년차 안나린의 생애 첫 우승 소식을 전한 게 지난 10월 11일이었다. 10타차 앞선 단독 선두로 오텍캐리어 챔피언십 최종라운드를 시작했지만 2타차까지 쫓기다가 2위와 4타차로 진땀 우승했다.
첫 우승으로부터 딱 한달이 지났다. 안나린은 KLPGA 투어 개인 통산 13승의 장하나와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하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침착하고 당당했다.

2개 홀의 경기를 되새길 만했다.
2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분위기가 좋았던 안나린은 파4 9번홀에서 6미터 이상의 버디 퍼트를 시도했다. 경사를 타고 곡선을 그리며 흐르던 공이 홀컵에 뚝 떨어졌다. 장하나는 앞선 홀에서 보기 2개, 버디 1개로 1타를 잃고 있었다. 1미터 남짓한 파 퍼트가 시작됐는데 출발이 이상하더니 홀컵을 비켜가고 말았다. 순식간에 4타차 1, 2위가 됐다.
파3 17번홀에서 안나린과 장하나가 또 한번 맞붙었다. 그 사이 장하나가 2타차로 쫓아와 있었다.
티샷 한 공을 그린 바깥에 떨어뜨린 장하나는 홀컵을 향해 과감하게 칩샷을 했다. 홀컵에 붙이자는 의도가 아니라 바로 넣자는 의도였다. 들어가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파도 힘들 수도 있다. 승부수로 던져진 공은 컵을 비켜나 만만치 않은 거리의 내리막 퍼트 자리에 섰다. 홀컵이 그린의 경사면에 얄궂게 자리잡고 있었다.
안나린은 티샷을 그린에 올리기는 했지만 거리가 멀었다. 첫 퍼트가 홀컵과 딴 방향으로 흐르더니 경사를 타고 한 참을 내려갔다. 파 세이브를 위해 굴린 두 번째 퍼트도 홀컵을 비켜가 다시 내리막 퍼트를 남겨놨다.
장하나에게 절호의 찬스가 왔다. 그러나 내리막이 장하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파 퍼트가 홀컵을 비켜 한참을 굴러 갔고, 이어진 보기 퍼트마저 홀을 외면했다.
장하나의 더블보기를 지켜본 안나린은 침착하게 남은 퍼트를 보기로 막았다. 안나린이 장하나를 물리치고 3타차 우승을 사실상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안나린은 “첫 우승 당시에는 우승 경험이 없어 마지막 라운드에 많이 긴장했다. 이번 대회는 조금 더 내 플레이에 집중했고 이렇게 또 한 번의 좋은 결과가 나왔다. 투어 4년차이지만 아직 차가 없다. 어머니가 한 번 더 우승하면 차를 사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우승했으니 어머니께 한 번 더 차에 대해 확고하게 말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안나린은 올 시즌 최대 규모인 우승 상금 3억 원을 보태 상금 순위에서 단박에 2위로 점프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