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를 든 약사' 이지영, "언젠가 '우승자'로 불리고 싶어요"[당구GP]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21.02.02 06: 28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GP)' 종목 '여자 풀(pool) 서바이벌'은 13년 만에 TV로 중계된 포켓볼 경기라는 점에서 유독 관심을 끌었다. 정적이고 다소 엄숙한 3쿠션 종목 속에서 자유롭고 화려한 복장을 갖춘 여성 포켓볼 선수들의 기교 섞인 향연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중 이지영(42)은 등장부터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흔한 이름(지영)이지만 '현직 약사' 타이틀을 단 흔치 않은 경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포켓볼이 좋아 선수 등록까지 마친 이지영은 금쪽 같은 두 아들과 남편을 둔 평범한 주부 약사지만 취미를 넘어 세계 최정상 풀 여제 등극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꿈을 꾸고 있다. 
이지영은 1차 대회 첫 예선에서 탈락했다. 절치부심한 이지영은 2차 대회서는 예선 2차까지 올라 8명이 벌이는 준결승 문턱까지 밟았다. 그러나 마지막 1점이 모자라 9위가 되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이지영은 대회를 마친 후 아쉬운 표정이 얼굴에 그득했다. 이지영은 "방송은 처음이라 너무 떨렸다. 좀더 치고 올라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더 잘하고 싶다"고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이지영과 일문일답이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항상 '현직 약사'라는 타이틀이 붙는데 부담되지 않나
▲잘 치면 좋은데 못치면 부끄럽다. 당구선수로 나왔는데 당구를 잘쳐야 하는데 내세울 것이 없어서 '약사'라는 타이틀을 붙여 나오는건가 생각할까봐 걱정된다. 내 직업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니까 결국 잘쳐야 할 것 같다. 
-언제 포켓볼과 인연을 맺었나
▲지방(충남 대천)에서 상경한 뒤 대학(경희대) 2학년 때 선배들을 따라 포켓볼 동호회에 들어가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대학 졸업 후 약사가 된 후에는 취미로 당구를 계속 했다. 원래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내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본격적으로 선수가 된 것은 언제인가
▲5년 전 선수 등록을 했다. 아이를 낳고 결심하게 됐다. 공이 너무 치고 싶었다. 약국 일을 하고 있었지만 '엄마도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게 교육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동호인으로 남기보다는 전문선수가 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또 전문선수가 돼 국제 대회에 나가면 잘치는 선수들의 플레이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있고 경기를 통해 배울 기회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늦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맞다. 요즘 잘하는 선수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기본기가 탄탄하다. 동호인으로 시작하다보니 잘못 배운 습관을 바꿔야 했다. 또 기술도 습득해야 했다. 다행히 뭐든 꾸준하고 쉽게 질리지 않는 성격이라서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혼자 2시간 연습을 해도 재미있고 기술이 늘어가는 자신을 보면 뿌듯하기도 했다. 직업이 따로 있지만 자꾸 공에 대해 다 알고 싶어진다. 더 깊게 알고 싶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남편은 이해해주나
▲다행히 남편(신동혁)을 동호회에서 만나 내 마음을 잘 이해해준다. 아이들(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을 돌봐 줄 때도 좋다. 취미가 같다보니 지인들도 겹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스포츠를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 영화를 보거나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TV도 거의 스포츠 위주로 본다. 축구, 3쿠션, 볼링 가리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것 같다. 당구만 계속 치면 잘 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약사 관두고 당구만 쳐볼까 고민도 했다. 그렇지만 약사와 선수, 균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병행해 나갈 것이다.
-운영하는 약국은 어디에 있나
▲인천 검단에 있다. '사랑온누리'라는 이름의 약국이고 집(김포)에서 멀지 않다. 
-'약사' 타이틀 말고 다르게 불리고 싶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우승자' 이지영이라고 불리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다. 기술을 좀더 보완해야 할 것 같다. 포지션, 수구 조절 등이다. 
-이번 풀 서바이벌은 어떤 의미가 있나 
▲나 뿐 아니라 포켓 선수들에게 정말 좋은 기회였다. 가지고 있는 기량을 다 보여주고 즐겁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준비한 것 다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칠 때는 벌벌 떨렸다. 그러다 집중하면서 괜찮아졌다.
풀은 알고 보면 재미있는 종목이다. 사실 외국에서는 포켓 종목이 3쿠션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3쿠션 저변이 워낙 넓고 상대적으로 포켓 시장이 작다. 김가영, 차유람 등 유명 선수들이 3쿠션 종목으로 넘어가서 안타깝지만 포켓도 세대교체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다. 진혜주, 이우진 선수처럼 훌륭한 선수들이 많으니까 이번 대회를 계기로 차근차근 저변을 넓힐 수 있었으면 한다. 
-3쿠션에 비해 선수층이나 환경이 열악하다
▲안타깝다. 3쿠션도 전에는 선수들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 중계를 해줘 저변이 넓어져 3쿠션 선수들이 늘어난 것 같다. 포켓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나는 김포시 체육회소속으로 지원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어린 선수나 남자 선수에게는 더 힘들다. 특히 남자 선수는 군대까지 갔다와야 하고 자리는 많지 않으니 고민이 클 것이다. 
방송에서도 트로트만 계속 나오면 질린다. 3쿠션과 함께 포켓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 당구 발전에도 좋지 않을까.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고. 경기 방식도 좋았다. 사실 이번 대회 방송 목적이 대중화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대중이 보기 좋고 재미있게 느껴야 한다고 본다. 나 역시 재미있었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연습은 언제 하나
▲밤에 주로 한다. 집 지하에 테이블을 마련했다. 애들 먼저 재우고 쉬다가 주로 밤 11시~새벽 1시 사이에 연습을 한다. 애들도 초등학생이고 밤에 연습할 곳이 없다. 그래서 집이 좋다. 하지만 혼자만 해서는 한계가 있다. 계속 배워서 연습한다. 잘치는 사람들과 치면 배우게 된다.
-목표는
▲ 좀더 치고 올라가 성적을 올리고 싶다. 이번에도 딱 문턱에서 주저 앉았다. 다른 대회도 그랬다. 그 벽을 깨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준비하고 스스로 해결할 문제다.
-우승 경험은 있나.
▲아직 없다. 2018년 3위가 제일 잘한 성적이다. 당시 김가영 선수를 만나 졌다. 김가영 선수는 세계 톱 클래스다. 그런 선수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경기를 하면서 알겠더라. 그 포스, 아우라. 정말 멋있었다. 지금 3쿠션도 열심히 하는 것 보면 톱 클래스, 세계 일등하는 사람은 다른 것 같다. 자기 자신과 싸움에서도 이기고 그렇게 노력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 많이 응원하고 있다. 
-대회를 마치고 바라는 점은
▲포켓 전용구장이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3쿠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속화 되는 경향도 있다. 전용구장은 젊은 층들이 데이트하면서 가곤 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 포켓 인구도 작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회가 좋은 영향을 미쳤다. 주변 지인들이 보고 재미있다고 하더라. 지인들도 내가 당구치는 걸 알지만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 중에는 당구장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번 대회를 보고 흥미를 갖더라. 이번 대회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됐으면 한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루하루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 허투로 시간 보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차곡차곡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내 실력이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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