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경기 준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롯데는 지난 1일 사직 한화전에서 3-11로 패하는 과정에서 시즌 3번째로 야수가 투수로 등판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김민수와 배성근이 8회부터 2이닝을 책임졌다. 야수의 투수 등판 빈도가 현저하게 높은 롯데다. 2일 경기를 앞두고 롯데 허문회 감독은 “3연투가 되는 투수들도 있었다. 어떻게 될 지 몰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항변했다. 대패로 경기 분위기가 넘어갔기에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던 사령탑의 고충을 전했다. 144경기 중 한 경기일 뿐이고 아직 개막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기에 멀리 시선을 내다봐야 하는 것이 사령탑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야수의 투수 등판이 옹호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이은 유망주 야수들의 등판은 자칫 부상을 초래할 수도 있고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떨어뜨릴 수 있다. 무엇보다 총력전을 선언한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자기 중심적 사고관에서는 어떤 일이든 마음대로 꾸려갈 수 있지만 야구는 상대성을 무시할 수 없는 종목이다. 내가 잘한다고 해도 남이 더 잘할 수 있다.

롯데는 2일, 사직 한화전에서 불펜진에게 일찌감치 대기령을 내리며 총력전을 펼쳤다. 그러나 쉽게 풀어갈 수 있는 경기를 어렵게 풀었다. 1회말 무사 만루 기회에서 4번 타자 이대호의 허무한 1루수 파울플라이는 어쩌면 이날 경기가 꼬인 시발점이었을 수 있다. 이후 딕슨 마차도, 오윤석 모두 범타로 물러나며 기선제압에 실패했다.
물론 이어진 2회말 정훈의 선제 스리런 홈런이 터졌고 3회말 이대호의 솔로포도 나왔다. 롯데가 초반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3회까지 호투하던 선발 노경은이 4회 집중타를 허용했다. 노경은과 김준태 배터리는 위기 상황에서 한화의 응집력, 노림수를 이겨내지 못했다. 패스트볼 제구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만 노리고 들어오는 한화 타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결국 3점을 헌납하며 4-3으로 추격을 당했다.
롯데는 추가점이 절실했다. 그러나 롯데에 추가점을 뽑는 것은 너무나 힘들 일이었고 한화에 그대로 분위기를 허용했다. 추격을 당한 뒤 맞이한 4회말 장두성, 정훈, 손아섭은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다.
롯데는 5회초부터 일찌감치 불펜을 가동했다. 구승민이 5회초를 삼진 3개로 돌려세우며 부활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어진 6회초 결국 1사 2,3루의 위기에 몰렸고 김대우가 투입됐다. 김대우는 위기 상황에서 박정현을 상대로 2스트라이크를 선점했다. 경험이 일천한 타자를 상대로 클러치 상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러나 롯데 배터리는 통한의 실수를 범했다. 결국 2스트라이크에서 높은 코스의 141km 커터를 던진 것이 2타점 적시타로 연결됐다. 롯데가 패배로 향하는 역전 결승점이었다. 이후 최준용, 마무리 김원중까지 투입했지만 롯데는 경기를 뒤집을 수 없었다. 롯데 타자들과 벤치는 한화를 상대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선수들은 간절했다. 불운도 따랐다. 9회말 한화 마무리 정우람을 상대로 1사 후 대타 안치홍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1사 1루에서 홈런을 터뜨린 정훈의 타석. 정훈은 침착하게 3볼 1스트라이크를 맞이했다. 그러나 5구 째 바깥쪽 패스트볼이 존 바깥으로 빠진 듯 했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정훈은 온몸으로 아쉬움을 표현했다. 결국 풀카운트에서 정훈은 삼진, 1루 주자 안치홍은 2루 도루 실패로 더블아웃이 됐다. 경기 종료. 경기가 끝나고 정훈은 배트를 홈플레이트에 내던졌다. 강하게 던졌는지 배트가 두동강이 났다.
하루를 참혹하게 보낸 뒤 맞이한 이튿날, 패배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을 버리고 내일을 준비했지만 그 내일이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았다. 롯데는 이렇게 4연패, 그리고 단독 꼴찌로 추락해야 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