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1927' 송해, 극단적 선택 고민했지만 희망 놓지 않은 이유(종합) [현장의 재구성]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1.11.09 18: 46

“어떤 수식어가 제일 좋냐고요? 당연히 오빠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오빠이길 바랍니다(웃음).”
송해가 9일 서울 자양동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송해 1927’(감독 윤재호, 제작 이로츠 빈스로드,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에 대해 “제가 받아들이기도 제일 편하다. 저는 MC로서 영원한 오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나이로 올해 95세인 송해는 우리나라 방송가의 산증인이자, 산역사다.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고르게 애정을 받고 있는 그가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이 아닌 이번에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을 만나고자 한다.

윤재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송해 1927’을 통해서다. 제목만 보아도 인간의 일대기를 정갈하게 담아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 다큐멘터리는 ‘전국노래자랑’을 준비하는 MC로서의 일상은 물론이고 남매의 아버지로서 살아온 송해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먼저 1969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신세 좀 지자구요’에 출연했던 젊은 시절 송해의 모습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당시 故 구봉서, 서영춘 등 최고의 개그맨들이 함께 출연했으며 약 13편 이상의 코미디 영화에 감초 배우로 활약했던 신인 시절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개그우먼 故 이순주와 명콤비로 활약했을 당시부터 송해는 재치 있는 만담과 뛰어난 노래 실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1970년대 공개방송을 했을 때도 탁월한 진행실력과 유머감각을 자랑해 전 국민의 무료한 시간을 채웠다.
1988년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은 또 어떠한가. 무대 위 특유의 목소리는 시청자들의 일요일 정오를 담당했기에 세대를 막론하고 다시 들어도 익숙한 공감을 자아낸다.
약 33년 동안 ‘전국노래자랑’ 단독 MC로 활약하며 전국을 누빈 송해. ‘전국노래자랑’의 명MC 송해는 우리 모두가 알지만, 정작 아버지 송해는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웠는데, 다큐 ‘송해 1927’이 팬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95년 인생에서 겪었던 굵직한 이슈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 감동을 안겨서다.
송해는 ‘송해 1927’의 주인공 제안을 받고 “4개월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재호 감독의 진심을 알고 자신의 인생사를 선뜻 공개하기로 했다고. 덕분에 한 세기에 가깝게 살아온 그의 삶을 ‘1927’에서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송해는 “뒤돌아보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나 싶다. 제가 살아온 지 100년이 다 되어간다. 소멸시킬 수 없는 코로나 시대에 제가 바라는 것은 이 세상을 사는 분들이 행복하시길, 그간 고통받은 아픔이 후세까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1927’을 통해 가족간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제 우리 후손들에게 밝은 희망이 열리지 않았나 싶다. 절망만 할 게 아니다. 노력의 기쁨이 곧 표현되지 않을까 싶다. 저보다 큰 아픔을 가지신 분들에게 이 영화를 통해 기쁨을 드리고 싶다.”
한국 최고령 방송인, 원조 국민 MC,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어를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무대 아래 송해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언제나 국민들의 웃음을 책임져 온 그가 여느 아버지와 다름없다는 사실은 인간 송해를 한층 가깝게 느껴지게 만든다. 또한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애환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송해는 “(아들의 사망 후) 제가 한남대교를 다니지 못했다. 몹시 마음이 아파서다.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이 느끼시겠지만, 가족의 행복이 무엇이겠나. 부모는 자식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돕고, 자식은 자신의 속내를 부모님에게 얘기하는 거다. 가족간에 소통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 저는 이 자리를 통해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는 고백을 한다”고 털어놔 안타까운 마음을 안겼다.
이번 다큐멘터리의 연출은 ‘마담 B’ ‘뷰티풀 데이즈’ ‘파이터’ 등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인물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선으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윤재호 감독이 맡았다.
이날 윤재호 감독은 “저도 아버지가 되어보니, 인생에 대한 가치와 인생에 대한 교훈을 깨닫게 됐다”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아들에 관한 이야기, 자식과 부모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따뜻한 영화가 되길 바랐다”고 연출의도를 전했다.
윤 감독은 “송해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작은 부분까지 체크하고 공부하시는 걸 보면서 노력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은 걸 배웠다. 살면서 부지런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송해는 인생을 살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희망과 용기를 갖고 이겨냈다고. “인생을 살면서 다 어려웠지만 건강을 잃고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오니 다시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제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던 날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재기에 재기, 그리고 재기였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오늘날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작품은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 초청돼 관람객들로부터 ‘이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들께 헌정하고 싶은 영화’ ‘스타가 아닌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 ‘가족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따뜻한 감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해는 “이제는 제가 연예계에서 최고령자가 됐다.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서 침체된 분야가 있으면 제가 뛰어들어서 헌신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선배로서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장수하며 활동한 원동력에 대해 그는 “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없으면 저는 존재 가치가 없다. 제가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끝날 때까지는 제가 먼저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는 이달 1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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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스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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