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엔터테이너"…산드라 블록, '언포기버블'로 보여줄 소외된 여성[종합]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1.11.30 13: 30

 “저희는 세상의 80%를 차지하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배우고 이들과 이야기하는 혜택을 누렸다. 80%라는 숫자는 주변부가 아니라 다수다.​”
배우 산드라 블록이 30일(한국 시간) 진행된 영화 ‘언포기버블’(감독 노라 핑샤이트)의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여성으로서 소외된다는 것,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산드라 블록과 연출을 맡은 노라 핑샤이트 감독이 참석했는데, 사전 녹화를 통해 진행됐다.
일부 극장에서 24일 개봉한 ‘언포기버블’은 긴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여인 루스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냉담한 사회에서 도망쳐 어린 시절 헤어져야만 했던 여동생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12월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공개된다.

루스 역을 맡은 산드라 블록은 “수감된 여성들에 대해 알게 될수록 여성들의 공통된 주제가 떠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놓인 환경이다. 어떤 이들은 가난으로 인해 하나의 소외된 시스템에서 나고 자랐다. 가지고 태어난 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렇더라. 저는 운 좋게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물론 부유하진 않았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채우며 살았다. 저를 인정해 주지 않는 시스템, 저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시스템의 피해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항상 시스템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그녀는 “피부색, 개인의 배경 덕에 그런 시스템상 특정 위치에 발이 묶이진 않았지만 이런 얘기를 최대한 진실되게 전하고 싶었다”고 영화에 참여한 이유를 털어놨다.
자료조사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여성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산드라 블록은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생계유지, 생존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한다. 흔한 얘기지만 이런 내용은 영화화 되지 않더라”며 “저는 가족, 사랑을 위해 옳은 일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들이 선택한 게 설사 옳은 결정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매일 같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메가폰을 잡은 노라 핑샤이트 감독도 “키워드는 루스가 감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이유, 과거든 현재든 그녀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었다”며 “관객들이 생각할 거리를 꼽는다면 용서, 두 번째 기회,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데 우리는 더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감독은 “이번 작품은 단순히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시스템으로 이야기를 가져오는 과정이라 조사가 필요했다. 영화가 (기존 시리즈 드라마보다) 더 속도감은 있다. 어려웠던 점은 다양한 캐릭터가 루스에게 연결돼 있는데 이를 혼란스럽게 그리지 않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노라 핑샤이트 감독은 산드라 블록에 대해 “누가 산드라 블록과의 작업을 마다할까?(웃음) 연출자로서 정말 편하게 작업했다”며 “산드라 블록은 어떤 캐릭터든 소화 가능한 배우로, 그녀의 연기를 보는 건 대단히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그냥 걸어가든 양치를 하든 흥미롭다”라고 칭찬했다.
산드라 블록이 맡은 루스 슬레이터는 강력 범죄 혐의로 장기 복역한 후 사회에 돌아와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진정성 있게 표현하기 위해 산드라 블록은 교도소에 있는 여성들과 출소한 여성 등 루스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캐릭터를 체화해 나갔다고 한다.
산드라 블록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작에 비추어 배우를 보는 경향이 있다. 익숙한 이미지에서 배우를 분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저는 그런 평가를 원하지 않는다”며 “노라 감독님은 루스의 여정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제가 생전 처음 연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이 이 인물에서 보여야 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안전한 길을 원하지 않았다. ‘도주하는 아이’에서도 감독님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저는 제가 해오던 것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스를 진실되게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부담 내려놓았다. 작품에 맞는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노라 감독은 “산드라 블록은 인간적인 매력이 넘친다. 본인의 시선에서 어떤 캐릭터든 소화한다. 그래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사람들이 쉽게 비난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어 산드라 블록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대조시켰다. 호감 가는 그녀의 이미지를 활용함과 동시에 그런 면과 싸우는 작업이었다”면서 “관객들이 쉽게 인물을 평가하거나 몰입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버드박스’에 이어 ‘언포기버블’까지 협업한 산드라 블록은 “넷플릭스와 ‘버드박스’까지, 두 작품을 했던 것은 우연이었다. ‘언포기버블’은 완전히 다른 얘기라 보시는 분들에게 다른 모습을 선보일 수 있게돼 기쁘다"는 생각을 밝혔다.
노라 핑샤이트 감독은 ‘언포기버블’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주변부에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들자고 결심하진 않았다. 제가 여성이고, 어머니이기도 하니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작품이 결정된다. 아무래도 여성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룬 얘기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제가 아웃사이더, 변두리, 가장자리, 사회 주변부에 끌리는 것은 맞다. 제가 어떤 것이 선한지, 악한지 둘 다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 양가적 감정이 든다. 거기서 일종의 창작자의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런 이야기들이 저에게 찾아오는 거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 팬들에게 산드라 블록은 “나는 엔터테이너다. 제가 하는 일은 여러분들이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항상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지만 늘 성공하지는 못 한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를 감독님, 출연진,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게 행운”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는 미국에서 만든 이야기지만 인간적인 이야기”라며 “인정을 받기 위해서, 올바른 이유와 목표를 갖고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스스로 희생했을 때 감사를 표현할 버튼이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쉽다. 삶에는 이런 것을 표현할 ‘좋아요’ 버튼이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저희가 만든 이야기가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일종의 큰 하트가 되길, 이 영화를 보시고 그 전에 모르던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완벽한 셀카를 찍을 순 없다. 저는 이제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완벽하게 보이는 게 불가하다. 대신 저는 놀라운 사람들이 엄청난 상황 속에서 옳은 일을 하는 얘기를 전하고자 한다. 이건 정말 멋진 일이고 세상에는 이런 얘기가 더 필요하다. 매일같이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끊임없이 옳은 일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느 사회에 이런 분들이 존재한다.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루스 캐릭터에 혼연일체 된 산드라 블록의 열연이 관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가 모인다. 더불어 각자의 시각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한 배우들의 열연이 극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1987년 데뷔한 산드라 블록은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 ‘스피드2’(1997) ‘미스 에이전트’(2001) ‘프로포즈’(2009) ‘그래비티’(2013) ‘오션스8’(2018) ‘버드 박스’(2018)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사랑받았다.
한편 노라 핑샤이트 감독은 ‘도주하는 아이’로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알프레드 바우어상)과 베를리너 모겐포스트 독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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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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