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프로야구 스토리는 없었다. 프로야구단 운영의 한축을 맡아 3년 프로젝트로 우승을 향해 달려가고 마침내 목표를 이룬 야구단 임원이 직접 밝힌 비법이다. 한국프로야구 40년사에 야구단 경영진이 팬들의 야구단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에세이로 펼쳐낸 것은 처음이다. 프로야구단의 고위 임원으로 지내면서 팀을 어떻게 강팀으로 만드는지 그 과정 과정 하나씩을 세밀하게 풀어내 팬들에게 알려주는 첫 작품인 것이다. 물론 유진은 필명이고 등장인물은 가명으로 썼다. [편집자주]
=프런트, 선수의 성적 분석부터 연봉협상까지
=여러가지를 고려하고 동기부여가 확실한 연봉체계 구축

=야구단 프런트는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시즌이 끝나고 한달 가량이 지난 12월 어느 날이었다. 문기선 매니저가 숫자가 잔뜩 적힌 A3 용지를 들고서, 내방에 들어왔다.
“선수들과의 연봉협상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데, 오희명선수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어요.”
문매니저는 이미 선수들과의 연봉협상 진행과정을 몇 차례 보고한 바 있었다. 보고할 때마다 그의 표정이 밝았다. 그가 제안한 연봉에 대해 선수들이 쉽게 합의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오희명 선수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사실 오선수는 작년에 당한 부상으로 인해서, 금년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로 보냈다. 당연히 1군 출전도 몇 경기 안되었고 성적도 변변치 않아서, 큰 폭의 삭감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선수는 과거에 선발투수부터 마무리투수까지 전천후로 활약하면서, 많은 성과를 올린 것을 참작해달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상을 당한 것도 결국 과거에 너무 많이 던져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하면서.
사실 오선수는 매년 거의 30경기 가까이 선발투수로 출전해서, 10승 전후의 성적을 올렸다. 부상을 당하기 직전에는 중간투수로 나와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과거 많은 경기에서 뛴 것이 부상의 원인이라는, 오선수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었다.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은 팔목이나 발목, 어깨, 무릎 등에 부상을 달고 살았다. 부상이 없는 선수가 드물었다.
하지만 프로야구에서 연봉 수준은 선수의 해당 시즌 성적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 이전의 성적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전 시즌에 열심히 뛰다가 부상을 당하는 경우, 연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각 구단마다 과거의 기여도를 얼마나 연봉에 반영해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K구단에서는 과거 수년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에게, 그것을 일정부분 감안한 연봉수준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오선수는 기본적으로 삭감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문매니저는 여러 차례 만나서 협상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오선수가 연봉 삭감안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프로야구단에는 선수의 성적을 기록하고, 이것을 연봉 산정식에 대입시켜서 연봉수준을 책정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프런트 구성원이 있다. K구단의 문기선매니저는 이 일만 10년이 넘게 해오고 있는 베테랑이다.
그는 단지 경기 성적과 같이 외적으로 나타난 결과만으로 연봉을 산정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경우, 그것을 인정해주고 있다. 타석에서 상대투수가 공을 많이 던지도록 유도했다든지, 2루타성 타구를 빠르게 잡아 단타로 막는 수비를 보여 주었다든지 하는, 선수들의 허슬 플레이에 가점을 주고 있다. 그만큼 경기 중 선수들의 플레이를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 실력이 부족해서 에러를 한 것인지, 의욕적으로 플레이를 하다가 에러가 나온 것인지 등에 대한 플레이의 스토리를 잡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당시로부터 1년쯤 전이었을까? 문매니저는 내 방에서 새로운 연봉 산정시스템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벌써 몇 번째 보고인 줄 모르겠다.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보고를 할 때마다, 다시 해오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이다. 선수의 성과에 따라 연봉 변동폭이 과거보다 훨씬 커질 수 있게 변화시키라는 나의 요구와 함께.
그때의 연봉 산정시스템은 과거 십 수년 동안 사용해오던 것이었다. 이 시스템에서는 전년도 연봉의 70~80% 정도를 기본급과 같은 형식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봉이 높은 선수들은 그다지 큰 활약을 하지 않아도, 많은 연봉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반면 신인을 비롯한 낮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올리더라도 연봉 상승 규모가 크지 않았다. 당해 시즌의 활약 정도에 따라 연봉수준이 결정되어야 할 프로스포츠 세계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문매니저는 선수들이 과거 연봉 체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연봉 산정시스템을 크게 바꿀 경우 선수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고 우려하였다. 특히 고참선수들은 팀에 오랫동안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전년도 연봉에 대한 인정부분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해당 시즌 성적에 따라 연봉 증감 폭을 크게 해달라는 내 요구에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
그는 몇 개월 동안 고민하고 수정한 끝에, 당해 시즌의 성적에 따라 연봉의 변동폭이 커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들고 왔다. 더불어서 팀 성적, 선수들의 승리 기여도,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도)로 평가하는 시장 가치, 그리고 팀에 대한 공헌도 등이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하였다. 보다 과학적이면서 다각적인 측면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온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온 새로운 연봉 산정시스템이 승인되던 날, 문매니저의 얼굴은 기쁨보다는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는 프런트 내부의 승인 절차를 밟은 것이지만, 앞으로는 선수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을 가지고 선수들과 소통해보라고 용기를 주었다. 그 동안 논의되었던 기존 연봉 체계의 문제점과 새로운 변화 방향성 등을, 선수들에게 허심탄회하게 공유하라고 했다.
이후 선수들과 여러 번에 걸쳐서 새로운 연봉 산정시스템을 공유하는 미팅을 가졌다. 평가지표가 투수와 타자 각각 100여개에 가까울 정도로 많고 복잡했기 때문에, 한번에 선수들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자신의 연봉이 깎일 것이 뻔한 일부 고참선수들의 반발도 잠재워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진심을 다해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2018년에 처음으로 새로운 연봉 산정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었다.

<사진>야구를 사랑하는 프런트들이 모여 구단을 이끄는 KBO 리그 /OSEN DB
문기선 매니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프로구단에 입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고민이 많았다. 더 이상 야구선수 생활을 해나기는 어렵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마추어 야구대회의 경기 기록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록 자신이 야구를 포기하기는 했지만, 야구장에서 선수들과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선수들의 경기 성적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이 꼼꼼한 자신의 성격하고도 잘 맞았다.
그리고 몇 년 뒤 K구단에 경력직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프로야구단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자신의 선후배들이 프로야구단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 하지만 평가자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선후배 선수들의 연봉을 삭감해야 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연봉을 삭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문매니저는 성실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친구였다. 그리고 자신이 야구선수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었다. 그의 이런 성향이 통했을까? 점차 선수들이 문매니저가 기록하고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제안한 연봉수준에 대해, 신뢰를 가졌다. 그러면서 선수들과의 연봉협상 기간도 짧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거의 매년 K구단은 전체 프로야구단 중에서 연봉협상을 제일 빨리 종결 짓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만큼 선수들과의 갈등이 크지 않고, 소통이 원활하다는 반증이다.
프로야구단에는 많은 프런트 구성원들이 선수단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 선수단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1/2군 매니저, 선수들이 시합 전후에 연습할 수 있도록 장비도 챙기고 타격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볼을 던져주기도 하는 보조 선수들, 데이터분석으로 선수들의 성장과 경기력을 높이는 데이터 분석 전문가 등…
기본적으로 이들 프런트 구성원들은 야구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야구를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또한 코치와 선수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성실성이 함께 요구된다. 수십 명의 코치와 선수들이 쏟아내는 요구를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선수단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프런트 구성원들은, 대부분 일년의 절반은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웨이 경기에 동반하거나, 오프시즌에는 캠프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프런트 구성원들은 힘든 환경에서도, 그저 야구가 좋아서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야구단 프런트는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곳이다.
/글.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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