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파라 선거에 불리했나"..윤석열 당선인, 기대 반 우려 반 '유퀴즈' 어땠나 [종합]
OSEN 박소영 기자
발행 2022.04.20 23: 19

기대와 우려 속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유퀴즈'에 떴다. 
20일 전파를 탄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첫 번째 게스트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나왔다. 유재석은 “지금 녹화장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다. 저희도 당황스럽긴 하다. 토크를 해도 되는 건지.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뭇 저희 촬영장 분위기가 평소랑 다른 건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오프닝을 열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영광이다. 안 나왔어야 했나. 국민들이 많이 보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며 참모진이 한 번 나가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워지겠죠. 많이 도와 달라”고 멋쩍게 미소 지었다.

유재석은 당선인의 하루 일과를 물었다. 그는 “6시에 일어나서 전화, 문자, 기사 브리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제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국민들도 아셔야 하니까. 어젠 새벽 3시에 잤다. 야식으론 과일 같은 걸 먹기도 하는데 어젠 밥을 네 끼 먹었다. 아침 먹고 점심으로 대구 서문시장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동성로 분식점에 갔는데 국수랑 김밥이 맛잇어 보여서 먹었다. 저녁에 서울 와서는 9시쯤 저녁 식사로 컵라면을 먹었다”고 자랑했다.
알고 보니 당선인은 민초단이었다. 반민초파인 유재석을 보며 그는 “민초파라고 얘기한 게 선거에 불리하지 않았나 싶지만 맛있지 않나. 유지방이 많으면 느끼한데 민초는 시원하다. 누구나 먹는 얘기를 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진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윤석열 당선인은 최초의 1960년대생, 최초의 검사 출신, 가장 많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대통령이 됐다. 유재석은 지난 대선 때 개표 방송을 어느 방송사로 봤냐 물었고 당선인은 “개표 방송은 돌아가면서 봤다. 수치만 계속 봤다. SBS의 ‘넥스트 레벨’ 영상도 봤다. 글쎄 뭐 좀 어색하더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과거 사법 시험을 9수 만에 합격해 화제를 모았던 바다. 그는 “신림동 신선으로 불렸다. 사법 시험 1주 전 친구가 결혼한다며 함진아비 역할을 부탁했다. 시험 때문에 거절했는데 공부가 안 되더라. 그냥 함 지고 공부 해야겠더라. 토요일이라 길이 밀렸다. 터미널에서 산 잡지는 다 읽어서 가져간 책을 꺼냈다. 그런데 보기가 싫더라. 절대 시험에 안 나오는 부분은 재밌겠다 싶어서 읽었는데 그 문제가 사법 시험 역사상 처음 나왔다. 올해는 붙겠구나 싶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검사가 뭔지도 몰랐다. 초등학교가 미션 스쿨이었다. 장래희망은 목사였다. 커서는 교수가 장래희망이 됐다. 사법 연수원 마칠 때까지도 검사 한다는 생각 안 했다. 변호사 개업 하려고 했는데 짧은 기간이라도 공직 생활 하는 게 낫지 않겠냐 해서 검찰에 발을 디뎠다. 늦은 나이에 임관 해서 오랜 세월을 검찰이라는 조직에 몸담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일이 너무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5년 전 ‘무한도전’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은행원 이상엽 씨가 등장했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법은 빚을 내면 된다. 치사하고 더러워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라는 명언을 남겼던 그는 “당시에 김태호 피디님이 땅만 쳐다보고 있더라. 저도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해서 얼마 안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지금까지도 짤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너무 못생기게 나왔다. 배우들도 데뷔하면 차기작 고르고 아이돌도 후속곡 고르는데 저도 ‘무한도전’으로 데뷔했으니 ‘유퀴즈’ 섭외를 기다렸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그리고는 “빚은 평생 가는 동반자다. 기본적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갖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은 든든하다. 월급이 적을 때 구휼미를 꺼내 쓰는 거다. 직장인들은 회사 다니는 큰 낙이 없다. 성과를 내서 인정 받고 이런 것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일 뿐. 인생의 즐거움은 돈과 보너스다. 소소한 취미 생활을 한다. 수영도 즐겨하고 ‘스우파’ 보고 댄스 학원도 등록했다”고 자랑했다.
명언은 또 탄생했다. 이상엽 씨는 “신입 때는 의욕이 넘치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했는데 7년 차가 되니까 요즘엔 ‘제가요? 제가 이걸요?’ 하게 되더라. 회사에서 제 이름이 안 불리고 하루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사표 생각은 아직 없다. 월급이라는 금융 치료를 받으니까. 다만 6시에 퇴근할 수 있는 만큼만 월급을 받고 싶다. 나에게 월급이란 한 달 동안 거친 사막을 헤쳐 온 나에게 주는 오아시스다. 나에게 마이너스 통장이란 영원한 친구”라고 말해 직장인 시청자들의 폭풍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세 번째 게스트는 가수 출신 변호사 이소은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연예계라는 세계만 알았으니까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빠가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교수를 하다가 부당해고를 당했다. 그래서 법적으로 이해를 하고 싶어졌다. 색다른 시도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27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10년간 음악 커리어가 있었는데 그걸 내려놓고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된다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영어로 법을 공부해야 해서 죽어라 했다. 언어 차이가 컸다. 케이스 하나 읽는 데 3~4시간이 걸렸다. 중간고사를 쳤는데 꼴찌했다. 쇼크였다. 나름대로 공부하면 결과에 반영이 되는 결과를 냈는데. 아빠가 다음 날 이메일을 보냈더라. ‘네가 처음부터 잘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시간이 필요할 거다. 언젠가는 누구보다 잘할 거라 믿는다. 아빠는 너의 전부를 사랑하는 거지 잘할 때만 사랑하는 건 아니다’라고 해줐다. 로스쿨 3년간 책을 보지 않은 시간에 뒤쳐질 것 같아서 밤도 많이 샜다.한국과 연락은 일부러 안 했다. 상실감이 컸고 그리울까 봐. 내 선택을 후회할까 봐”라고 털어놔 감동을 안겼다.
이소은의 담당 분야는 소송이랑 국제 분쟁 전문. 그는 “아침엔 커피와 베이글, 점심엔 샌드위치, 저녁엔 육개장 배달해서 먹는다. 대부분의 시간들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 일한다. 번아웃이 왔다.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 로스쿨이라는 곳에 와서 공부하며 가진 목표는 돕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번아웃이 왔는데 극복했다. 프로보노 기부 활동을 했다. 망명 신청을 한 난민의 변호를 맡았는데 일에 대한 의미를 되찾았다”며 미소 지었다.
심지어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탄자니아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고. 이소은은 “남편이 공공의료에 관심 있어서 늘 해온 일이다. 신혼여행 간 김에 같이 했다. 정말 뭉클한 경험을 했다. 남편이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데 ‘서방님’이 나오더라.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곡을 틀어서 수술한다는데 낯선 땅에서 내 노래가 나오니까 울컥하더라. 내 음악이 있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끝으로 댄서 출신 디올 패턴 디자이너 임세아 씨가 등장했다. 그는 “원래 불문학도였다. 춤을 추면서 학교를 다녔다. 댄스팀 스위치 멤버였는데 철이와 미애의 미애 언니가 만든 팀이다. ‘런투유’로 시작했다. 싸이 ‘챔피언’ 뮤직비디오에도 나온다. 여자 댄서들이 필요한 안무에 많이 들어갔다. ‘윙크’라는 팬클럽도 생겼다. 파리 온 2005년부터 신화의 ‘브랜드 뉴’ 털기 춤을 안 췄다”고 인사했다.
춤을 많이 추다 보니 발목 부상을 겪어 댄서의 삶을 포기했다고. 임세아 씨는 “앞으로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외할머니가 의상실을 해서 파리에 전문 의상학교에 지원했다. 6~7년 춤 추고 26살에 그만 뒀다. 안 되면 다시 돌아오지 싶어서 무작정 파리에 갔다. 어학연수만 1년 정도 하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17년 있게 됐다”며 파리에서 디자이너로 지내는 삶을 털어놨다.
그가 만든 드레스 가격은 아파트 한 채 값이라고. 임세아 씨는 “억대의 의상들인데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한 대륙당 1벌만 판매를 한다. 최대한 날씬하고 멋있게 보이도록, 77 입는 사람이 44로 보이게끔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만든다”며 “2020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샤를리즈 테론, 다코타 패닝, 제니퍼 애니스톤이 입었다. 샤를리즈 테론 드레스는 몇 달 걸렸다. 시고니 위버는 보그 인터뷰 때 제 이름을 언급했다. 제니퍼 로렌스, 레이디 가가, 리한나, 나탈리 포트만, 데미 무어 등의 드레스도 만들었다”고 과시했다.
이어 그는 “댄서 할 때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든 건 하고 싶지 않다 했는데 더 힘든 곳에 왔다. 밤샘, 무휴 똑같다. 회사가 샹젤리제 거리에 있다. 12월 31일에 거리를 통제하고 행사를 여는데 밤 새워서 일하느라 밥도 못 먹었다. 택시도 없어서 집에 갈 수도 없었다. 그래도 작업물에 대한 책임감과 뿌듯함으로 일한다. 목표는 한국에서 입체 패턴과 오트 쿠튀르를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제 브랜드도 갖고 싶다”고 말해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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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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