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마력의 '나의해방일지', 재벌3세 러브스토리 아닌 사람 냄새나는 작품" [인터뷰 종합]
OSEN 박소영 기자
발행 2022.05.30 11: 50

“박해영 작가님 대본엔 마력이 있어요”
JTBC ‘나의 해방일지’가 29일 뜨겁게 종영했다. 한 자릿수 시청률이 무색할 정도로 웰메이드 호평을 받으며 안방을 떠났다. 염씨 삼남매의 행복 소생기 덕분에 시청자들은 힐링을 얻었는데 ‘나의 해방일지’에 출연한 배우 이기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이기우는 싱글대디 조태훈 역을 맡아 시청자들을 만났다. 이혼한 뒤 누나들과 함께 초등학생 딸을 키우며 염기정(이엘 분)과 로맨스를 그린 인물. 이기우는 다정다감하고 매력적인 조태훈을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해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다음은 이기우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작품이 끝나서 아쉽겠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모르는 운명인데 조태훈이란 인물로 김석윤 감독님과 박해영 작가님에게 캐스팅 된 게 행운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촬영했다. 작년 여름에 촬영을 시작해서 겨울에 끝나고 여름에 작품이 종영하니까 ‘나의 해방일지’와 함께 1년이 흘렀다.
-‘나의 해방일지’와 조태훈, 어떤 매력에 끌렸나
대본을 봤을 때 텍스트를 읽고 있을 뿐인데도 입체적으로 그려지더라. 다양한 냄새가 나왔다. 대본을 안 쉬고 후루룩 읽었다. 그림 그리기도 쉽고 사람 냄새도 나고. 묘사가 디테일하게 돼 있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대본이 주는 게 구체적이었다. 조태훈은 말이 없는 편이다. 상황이나 의견을 표현할 방법이 표정이나 짧은 말밖에 없어서 처음엔 어려웠다. 감독님도 그 부분이 어렵겠지만 표현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 절제하고 표현 안 하고 지켜본다는 느낌으로 가자고. 배우 입장에선 캐릭터를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어려웠지만 싱글대디에 이혼남이라는 프레임이 있으니까 스스로 갇혀 사는 것을 허용한 인물로 봤다.
-염기정 역의 이엘은 어떤 파트너였나
이엘 배우는 완전 염기정 같다. 100% 기정이라곤 할 수 없지만 기정이스럽다. 현장에서 캐주얼하고 털털할 스타일이었다. 제가 표현이 없는 조태훈을 맡았음에도 카메라 뒤에서 둘이 친해졌다. 또래라 말장난도 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공통점도 있더라. 카메라 안 돌 땐 원래 알던 친구처럼 있다가 카메라 앞에선 완벽하게 기정으로 돌아왔다.
-“제가 할게요 아무나”라고 고백하는 신, 반응 난리났다
대본으로 볼 때 ‘추앙’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쓰일 줄도 몰랐고 ‘받는 여자’라는 표현도 대단했는데 ‘아무나’ 라는 표현을 그렇게 쓰다니. 조태훈이 뱉은 말 중에 제일 근사했다. 최대한 근사하게 하려고 했으나 한편으로는 최대한 절제했어야 했다. 로맨틱한 대사는 아니지만 가장 태훈적인 얘기였다. 친구들 연락도 많이 받았다. ‘아무나’가 이런 대사로 쓰이다니. 고차원 대사로 만들어주신 작가님이 정말 대단하다.
-박해영 작가의 대본엔 어떤 마력이 있는 걸까?
이렇게 다양한 사람 냄새나는 마력의 대본을 처음 읽었다. 재벌 3세의 러브스토리, 자수성가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지 나와 닿아있는 기분이 들더라. 뒤 페이지에 뭐가 쓰여 있는지 모르는데도 친한 느낌을 받았다. 텍스트가 착하다. 대사 중에 이빨 하나하나에 못됐음 못됐음 표현이 있지 않았나. ‘나의 해방일지’ 대본엔 글자 하나하나에 친절함 친절함이 있었다. 구씨가 멀리뛰기로 나는 신은 쌩뚱맞기도 하고 텍스트로 봤을 때 시트콤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방송으로 봤을 땐 고급스러운 코미디가 됐다. 작가님 감독님의 힘이구나 싶었다.
-박해영 작가의 작품에 들어간다는 기분은 좀 더 특별했는지
자부심을 느꼈다기보다는 더 의욕적이었다. 잘 깔아놓은 잔디밭에서 축구하라고 공을 던져준 것처럼 잘 뛰고 싶었다. 좋은 여건이니까. 조태훈은 작지 않은 역할이고 그안에서 뭔가를 보여주려면 공부해야겠다 다짐도 했다. 첫 주 방송 보고 ‘나 되게 좋은 곳에서 일했구나’ 알게 됐다. 그분들이 저를 선택해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김석윤 감독도 배우들이 엄청 신뢰하는 감독 아닌가
저는 행운아다. 다 좋은 감독님을 만났으니까. 그런데 김석윤 감독님은 그중에서도 너무 감사한 분이다. ‘기억’ 때 박찬홍 감독님이 너무 아버지 같아서 현장 내내 감동이었는데 김석윤 감독님은 다른 의미의 아버지 같다. 위트 넘치고 재밌다. 현장 분위기는 항상 유쾌하게 이끌고 배우들을 섬세하게 챙겨주셨다. 끊임없이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는데 단순히 눈높이 맞추는 수준이 아니라 세심하게 존중해 주시고 궁금해하신다. 무엇보다 왠만하면 두 테이크에 끝날 정도로 빨리 찍으시더라(웃음). 현장에서 콘티도 주셨다. 콘티 주는 드라마 현장은 처음이었다. 다음에 감독님 작품 또 하고 싶다.
-캐릭터가 다 너무 사랑스러운데 고르라면 또 조태훈을 하겠나
구씨도 멋있지만 염창희를 하고 싶다. 저도 카메라 앞에서 까불고 싶다. 항상 정적이어서(웃음). 유학파, 재벌3세, 실장님 이런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는데 실제로 저는 동네 형 같고 소박하다. 염창희가 전기차 산다고 까부는 거 나도 잘할 수 있는데. 고급스러운 슈트보다 트레이닝복 헐렁헐렁하게 입고 연기하고 싶다.
-뒷심을 보였지만 시청률 면에서 아쉽지 않나
초반엔 다들 아쉬워했다. 제 인생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인데 그 때도 시청률이 막판에 올라가더라. 시청률이 안 나오는 이유가 설명 안 되는 드라마다. 그래서 시청률이 의미없는 작품이다. 저도 입소문 탄 걸 실감할 정도니까. 숫자 몇 개로 찍힌 시청률은 의미가 없다. 시청자 입장에서 닿아있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 나누며 증폭 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기대하고 이야기 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됐다.
-‘나의 해방일지’는 이기우에게 어떤 작품일까?
데뷔한 지 20년이 됐지만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다. 안 가 본 길이 너무 많다. 20년을 연기했다는 자부심과 대견함도 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고 넓고 길다는 걸 아니까 꾸준히 하게 되는 것 같다. 20년간 이러저런 역할로 먹고 살았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역할로 먹고 살 수 없지 않나. ‘나의 해방일지’는 20년 만에 만난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 이후 제 인생이 달라졌다고 10년 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적으로든 연기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현장에서 얻어온 게 너무 많다. 어떤 어른이 멋있는 건지 너무 큰 자양분이 됐다.
-이기우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
아무래도 생활하는 근거지가 강남이라 ‘나도 저런 집에 살고 저런 차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연예인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직업이지만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다. 돈이 전부가 아닌데 돈 없으면 안 되니까 경제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했다. 그런데 해방구를 찾았다. 최근에 미국 여행을 한 달 넘게 다니면서 만난 분들에게 많이 얻었다. 작은 행복을 추구하려는 태도 자체가 저의 해방구가 됐다. 캠핑은 저의 서식지에서의 이탈 해방도 있지만 자연에 가면 연기자가 아닌 이기우를 맞이하는 해방감이 느껴진다. 미국 서부 아래에서 위로 훑으며 다녔는데 유기견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쌓이다 보니까 선진국 문화를 보고 배웠다.
-누군가를 추앙하게 된다면 이기우는 어떤 스타일인지
실제 저는 구씨 같은 스타일은 아니다. 성격적으로 표현도 잘한다. 거창한 거 말고 사소한 거라도 챙겨주고 가꿔주려고 해서 자존감을 높여주고 추앙 받는 무엇이 되게끔 노력하는 편이다. 적극적이고 따뜻한 추앙 스타일이다.
-몰아볼 시청자들에게 정주행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한 번에 너무, 캐릭터들의 대사나 역할에 공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감하기 쉽지 않은 대사도 많고 일상 대화를 택했지만 철학적인 대사가 많으니까. 이 드라마가 좋다고 해서 한 번에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느린 드라마니까 쉬어가면서 보면 더 이해하기 쉽고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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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네버다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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