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훈련소에서 온 편지 “프로세스 성 단장님…” <야구는 구라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2.10.02 08: 17

국군의 (다음) 날 특집 – 일반병 출신 KBO '진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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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백종인 객원기자] 국군의 날이 하루 지났다. 장병들의 수고에 고개 숙이는 날이다.
스타급 프로야구 선수라면 국제대회 성적을 통해 병역 특례를 적용받기도 한다. 또는 국군체육부대(상무)나 경찰청(2019년 야구단 해체)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간다.
이도 저도 안되면 일반병으로 입대해야 한다. 한창 뛰어야 할 나이에 경력의 단절이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이겨내고 성공한 선수들이 제법 있다. 어른들 말씀 틀린 게 없다. 군대 갔다와서 철든 경우다. KBO리그의 진짜 사나이들이다.
국방부 편지지 한 페이지를 꽉 채운 사연
‘To 프로세스 성 단장님.’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다. 롯데 성민규 단장이 자신의 SNS에 올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훈련병 황성빈이 보낸 사연이다. 국방부 편지지 한 장 분량을 꽉 채웠다. 검은색 볼펜으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내용은 이렇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지 정확하게 16일이 되었습니다… 참 다행인 게 바로 옆자리인 103번 훈련병이 사회에서 트레이너 공부를 하던 동생이라 개인정비 시간, 주말에 같이 맨몸운동이라도 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입소 후 화장실을 단 한번도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해서 죽을 맛입니다. (중략) 야구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빗자루를 배트 삼아 돌려보기도 하고, 양말을 말아 공처럼 던져보기도 합니다. 지금 간절한 마음을 절대 잊지 않고, 2022년부터는 그라운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조심스럽게 약속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황성빈은 소래고-경남대를 졸업하고 2020년 드래프트에서 2차 5라운드에 지명됐다. 이후 성 단장의 제안에 따라 곧바로 입대해, 경기도 양주의 제8기동사단에서 근무했다. 2021년 10월 말에 전역해, 자신의 약속대로 올시즌 맹활약 중이다. 빠른 발과 정확한 타격, 근성 있는 플레이로 사직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이제까지는 프로 입단 후 3~5시즌을 뛰다가 병역을 마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황성빈 이후, 이를 성공 모델로 삼는 경우가 생겼다. 올해 롯데 유니폼을 입은 외야수 김동혁(제물포고-영동대)이 비슷한 케이스다. 현재 제5보병사단에서 근무 중(2023년 전역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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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X의 비밀 작전 - 냉동 치킨을 제거하라
성공한 ‘예비역 병장’은 광주에도 있다. KIA 유격수 박찬호다. 상무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뒤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으로 배치됐다. 청와대 외곽을 지키는 곳이다. 서울 도심에 있지만 산속 생활이다. GOP처럼 한번 들어가면 4개월 동안 초소를 지킨다.
마찬가지로 내무반과 작은 연병장이 훈련 캠프다. 달리기, 팔굽혀펴기, 허공에 빈 스윙이 전부다. 마침 고교 동문인 김호재(삼성)가 선임병이었다. 친구가 병장이 되자 함께 캐치볼도 가능했다.
가장 큰 성과는 PX에서 이뤄졌다. 매일 찾아가 특별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냉동 치킨 제거 작전이다. 방법은 먹어서 없애기다. 덕분에 ‘군대 밥으로는 쉽지 않은(?)’ 벌크업을 이룰 수 있었다(어디까지나 본인의 주장이다). 입대 전 65kg에서 제대할 무렵에는 78kg까지 불렸다. 취약점인 스윙 파워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스스로 밝히는 위기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KIA의 우승 순간이다.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TV로 보던 중 막판에 점호가 걸렸다. 끝까지 못 보고, 결과를 다음 날 아침에야 알았다. 간절히 꿈꿨던 시간이었다. 그걸 함께 하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컸다. ‘군대 괜히 왔다’는 후회를 느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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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병, 훈련소 조교, 갑판병, 박격포병
이 밖에도 만기 전역한 예비역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요즘이다. 이글스의 거포로 성장하는 김태연이 그 중 한 명이다. 경기도 파주 1사단 전차대대가 근무처였다. 보직은 탄약병이다. 무거운 전차용 포탄을 한 발 한 발 열심히 날라야 했다. 와중에 “탄약도 중요하지만, 배트 휘두르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기억이다.
내무반에서 곁눈질로 야구 중계를 봐야 했다. ‘저 상황에서 투수는 어떤 공을 던질까. 내가 타석에 있다면 뭘 노려야 할까.’ 이런 궁리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부대장이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 개인 레슨도 부탁할 정도였다. 그는 박찬호와 반대다. PX 냉동음식을 끊고 체중관리에 집중했다. 덕분에 뾰족한 턱선을 되찾았다. 제대 후 복귀전 첫 타석에 초구를 담장 너머로 날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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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좌완 손주영이 같은 사단 출신이다. 그는 경비병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초소 근무로 이력이 난 하체 근육을 바탕으로 볼에 힘이 붙었다. 제대 후 선발의 한 축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팔꿈치 수술에서 재활 중이다.
롯데 외야수 고승민의 주특기는 81mm 박격포다. 완전체 중량이 50~60kg 가량 나가는 중화기다. 다리, 포열, 특히 포판은 혼자서 버거운 무게다. 그걸 메고 다닌 것 자체가 강훈이다. 희한하게도 팀 선배 정훈, 김도규도 같은 주특기다. 아무래도 운동 좀 했다는 이력 덕인 것 같다.
NC 내야수 최보성은 상륙함 노적봉함의 갑판병이었다. 삼성의 우완 문용익은 논산훈련소 조교 출신이다. 한화 외야수 이원석도 5사단 신병교육대 조교였다. 또 NC내야수 박준영, KT 외야수 김태훈 등이 만기 제대한 일반병 출신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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