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치' 노덕 감독 "전여빈과 나나, 보는 내내 부러웠어요" [인터뷰 종합]
OSEN 연휘선 기자
발행 2022.10.12 13: 31

쉽지 않은 길을 담담하게 갔다. '글리치'의 노덕 감독이 모험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수했다.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글리치'는 외계인이 보이는 지효(전여빈 분)와 외계인을 추적해온 보라(나나 분)가 흔적 없이 사라진 지효 남자친구의 행방을 쫓으며 미확인 미스터리의 실체에 다가서게 되는 4차원 그 이상의 추적극을 그린 드라마다. 작품을 연출한 노덕 감독은 12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작품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OTT가 없던 시절이었고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상태에서 접어놨던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만신'이 끝나고 이 기획안이 저한테 들어왔는데 제가 5~6년 전에 기획한 아이템과 너무 비슷해서 당연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이 내가 연출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만들텐데 그러면 내가 아류, 표절 소리를 들을 게 분명해서 남이 연출할 바에는 내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특히 노덕 감독은 작품을 SF,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장르적 특색에 가두지 않으려 했다. 그는 "이 작품은 개인적인 이야기"라며 "작품의 형식보다는 인물이 중요했기 때문에 중심에 인물을 두려는 노력을 했다"라고 밝혔다. "한 개인이 가진 고민을 담고 싶었고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겐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 이에 그는 "보시는 분들도 이 것이 SF,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장르적인 부분보다 인물에 중점을 두시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작품을 따라가주시면 감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신선한 매력을 선사한다. 이와 관련 노덕 감독은 "1부에서 소개되는 '어른'이라는 키워드가 이 작품을 소개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철이 들어야 하는 게 우리 모두이지만 바뀐 게 없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나. 아무리 나이를 먹고 결혼하고 애를 낳아도 늘 처음 하는 일들을 하고 서툴기도 하고. 그것들을 스스로 알고 있는데 상대방을 어른 대접하고 어른인 척 하면서 살고 있는 거다. 그런 삶을 사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서 이게 내 진짜 모습일까 의심을 품고 사는 거라고 봤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지효가 보라를 만났을 때 철 들지 않은 진짜 모습이 나오는 게 재미있었다. 지효가 보라와 함께 있지 않을 때 1부의 모습과 보라와 마음이 통하는 5부에서의 잠입할 때 말도 안 되는 트릭을 써서 들어가는 게 재미있었다. 그때 지효가 어린 아이로 돌아갔다. 보라도 마찬가지다. 대본을 보면서도 대사가 버튼이 많더라. 상식적으로 나이 서른 먹은 여자가 그럴 수 있나 싶었는데 의미적인 관점에서 여기까지 가야지 이 친구들이 어린아이들의 장난 같은 순간이고 흥미진진한 것에 빠져있다고 보여줄 수 있어서 상식과 조금 다른 순간들이 있어서 이 친구의 어린 아이 같은 순간들을 보여주는 게 의미 있다고 봤다"라고 설명했다. 
작품은 제목처럼 '글리치' 장르의 음악으로 색다른 묘미를 전하기도 한다. 이에 노덕 감독은 "음악은 달파란 음악감독님과 톤을 어떻게 잡을지 초반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저도 그렇고 워낙에 하나의 범주로 몰아가거나 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음악을 갖고 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음악 감독님이 멜로디가 아니라 사운드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좋았다. 우리는 음악적 멜로디가 필요한 게 아니라 어떤 소리를 담는지가 중요했다. 그런 맥락에서 달파란 음악감독님의 판단에 100% 의존하면서 작업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장르와 작품의 메시지 사이 균형점에 대해 "장르적 긴장감이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서 들어간 건 아니었다. 지효가 자신한테 믿음이 생겨서 '외계인이 있나 보다, 내가 호산나인가 보다'라는 말도 안 되는 확신이 생기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위기에 빠진다. 불확실한 믿음을 갖고 달려나가는 행동에 대한 댓가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갔을 때 이 것도 아니었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내 의심은 끝이 나지 않을 거라는 바닥 같은 순간에 처했을 때 그때야말로 선물처럼 깨달음이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은유적인 게 있었다. 장르 때문에 이야기 전개를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인물의 모험을 어떻게 보여주고, 이 모험의 끝에 이 친구가 얻는 깨달음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노덕 감독은 "맥락을 찾으려고 했다. 이 것이 편의점이나 종로 골목이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런 비주얼이 나온다는 맥락을 가져가려고 했다. 애초에 기획 안에는 '일상과 모험'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를 하기 때문에 콘셉트를 글로써 작가가 주면 저는 그 맥락이 잘 구현되게끔 선을 찾으려고 했다"라고 했다. 
더불어 그는 "영화를 보면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외계인들이 등장하지 않나. 그 인물이 우주선 안에 들어가고 우주 공간이고 하면 어떤 생명체가 나타나면 외게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사람은 편의점에 갔는데 이상한 형체가 있으면 시청자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었다. 외계인 같은 사람이 있어야 공간감이 주는 이상한 게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편의점이 중요한 거다. 외계인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것에 신경을 뺏기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형적인 외계인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자유자재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10부에서는 자유롭게 형상화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글리치'에서는 장르적 특성보다 지효와 보라의 버디무비라는 점이 강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극 중 둘의 관계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가운데 노덕 감독은 "처음부터 둘의 관계를 열어두진 않았다. 동창이고 친구고 단순하게 접근했다. 그런데 지켜보면서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하고도 많은 회차가 남은 상황이라 어디까지 갈 것인지 얘기했다. 작가의 관심사는 이들의 관계가 어디까지 가느냐에 있지 않았다. 현장에서 연출할 때 수위 조절 면에서 궁금했던 거였다. '파이트 클럽'처럼 사실은 한몸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효가 어렸을 때 생각해낸 가상의 친구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거기까지 생각하니 관계적으로 열렸다. 애초에 한명일 수 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고 감정적으로 깊은 관계일 수도 있고 거기까지 생각이 열리니까 이걸 규정한다는 관계가 좁은 의미로 느껴졌다. 그래서 자유롭게 해방됐다"라며 했다.  
나아가 그는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개척해야 하는 길이라 쉽지 않았다"라며 웃었다. 다만 그는 "'이 모험을 같이 떠나자'고 제안을 하는 건데 원하지 않을 사람도 있는 거다.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있었다"라며 "대중적인 작품을 지향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시작했다. 거기에 대해서 확인하는 시간들을 갖고 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노덕 감독에게 작품 속 지효처럼 외계인 같은 존재는 무엇일까. 노덕 감독은 "저도 모험을 떠났다. 이 작품으로"라며 "지효가 의심하는 것처럼 의심과 번미의 시간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정확한 답이 있고 그 답을 지향하면 좋은 작품이 된다는 종류의 작품이 아니다. 지효와 같은 루트를 탄 것 같다. 저의 외계인은 제 작품이다. 그리고 무형의 시청자. 시청자의 실체를 규정하긴 어려우니까"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촬영하며 어려웠던 순간들에 대해 "모든 에피소드마다 저만의 숙제가 있었다. 새로운 대본을 받을 때마다. 가장 크게 왔던 것들은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는 것이 어려웠다"라며 "미술감독님이 10회 차에 지병으로 동라가시면서 처음부터 '글리치' 콘셉트를 공유했던 파트너가 없어졌다. 또 그 분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가지면서도 작품을 마쳐야 하는 숙제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4부 예배당 장면을 뒤로 미뤄놨는데 그 후에도 새로운 공간들이 열리면서 톤과 의미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가 벅차게 다가왔다"라며 "지효의 집 같은 세트는 미술감독님이 디자인을 해놓고 갑작스럽게 지병으로 가신 거라 그 분의 디자인, 드레싱, 에너지가 그 안에 다 있다고 느꼈다. 촬영 때마다 마음이 묘했다"라고 고백했다. 
그런가 하면 노덕 감독은 "이 작품을 하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연출을 한다는 것과 배우를 한다는 게 비슷한 직업인 것 같다. 한 명은 카메라 앞, 한 명은 카메라 뒤에 있지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이다. 그 순간 어떤 연기를 할지, OK를 외칠지 결정을 하는 거다. 의지할 데 없는 심정적으로 비슷한 직업이라 생각했다. 거기서 오는 외로움들이 있다. 각자가 가진 외로움이라는 게 자기 안에서만 잘해도 외롭고 못해도 외롭고 자기와의 싸움이 동반되는 것 같다. 옆에서 믿어주는 존재가 하나 있다는 게 어마어마한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누군가한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그는 "저도 이 작품을 하면서 영화보다 두세배 걸리는 시간을 쏟으면서 제 내면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났고 배우나 스태프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전에는 제 작품을 열심히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연출을 했다면 이번에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 친구들과 스태프들이 가진 고민에 내가 누군가의 '보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하는 부분이 누군가에게도 생긴 것 같다. 확실히 그게 힘이된다는 걸 체감했다. 그런 면에서 터닝 포인트가 됐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노덕 감독은 "현실적으로 믿음을 주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라며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 거로 버티는 거다. 나 잘할 수 있을거라고 세뇌하듯이 버티는 거다. 현실적으로는. 저도 보라가 있으면 좋겠다. 지효 옆에 보라가 있는 걸 볼 때마다 '나도 나의 보라를 갖고 싶다'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만신'과 '글리치'까지 연달아 SF장르에 도전한 것에 대해 "다음은 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단 CG는 하고 싶지 않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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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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