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사실상 유럽 팀이다”. 멕시코 대표팀을 이끄는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조추첨 직후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언뜻 칭찬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경계심이 깔려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6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조추첨을 진행했다. 총 42개국이 본선행을 확정한 가운데, 나머지 6개 티켓은 내년 3월 유럽예선 플레이오프와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통해 최종 결정된다.


한국은 A조에 배정돼 개최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덴마크·북마케도니아·체코·아일랜드 중 한 팀이 될 유럽 플레이오프 D 승자와 같은 조에 속했다. 결과적으로 조 구성만 놓고 보면 역대급의 ‘최상 시나리오’라는 평가가 많다. 유럽 강호들과 아프리카 전통 강호들을 피했고, 멕시코 역시 포트1 최상급 전력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의 토너먼트 진출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의 조별리그 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1차전은 6월 12일 – 유럽 PO D 승자전서 올라온 승자와 과달라하라·아크론 스타디움에서 맞붙는다. 그리고 2차전으로 개최국 멕시코와 6월 18일 사포판·아크론 스타디움에서 격돌한다. 그리고 6월 25일 남아공과 BBVA 스타디움·몬테레이에 나선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단연 멕시코전이다. 사포판은 해발 1571m의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로, 멕시코의 고지대 이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현지 언론 역시 한국전에서 ‘홈 어드밴티지’가 최대치로 발휘될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럼에도 아기레 감독의 반응은 생각보다 신중했다.
ESPN은 “일부 멕시코 방송 패널은 조별리그를 ‘쉬운 구도’라고 말했지만, 아기레 감독은 확실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아기레 감독은 조추첨 후 인터뷰에서 “한국과 맞붙어 봤는데 절대 쉬운 팀이 아니다”라며 운을 뗐다. 이어 “그들은 맡은 역할에 충실하고 규율이 뛰어나며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남아공도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을 향해*“사실상 유럽 팀이다. 골키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선수가 유럽에서 뛰고 있다. 체력도 좋고 내가 잘 아는 감독도 있다. 매우 강력한 상대”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한국 선수 대부분이 유럽 무대에서 뛰며 전술·피지컬 체계가 ‘아시아 스타일’의 범주를 넘어서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물론 멕시코가 지나치게 위축된 것도 아니다. 그는 “우리는 홈에서, 우리 국민들과 함께한다. 한국은 훌륭한 팀이지만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덧붙이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양국의 월드컵 역대 전적은 멕시코의 2승 우세다. 1998 프랑스 대회 1-3 패배, 2018 러시아 대회 1-2 패배. 한국 입장에서 멕시코는 매번 뼈아픈 상대로 남아 있다. 멕시코는 남아공과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에서 1-1로 맞붙은 경험이 있으며 당시 지휘관이 바로 아기레였다.
멕시코 대표팀 선수들도 조추첨 결과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장 에드손 알바레즈는 “우리가 개최국으로 이 대회를 맞이하게 되어 영광이다. 좋은 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리미어리그 풀럼 공격수 라울 히메네스 역시 “쉬운 상대는 없지만 이보다 더 나쁜 조도 있었다”며 “조 1위를 목표로 한 경기씩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과 멕시코는 지난 9월 내슈빌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2-2로 비긴 바 있다. 당시 한국은 손흥민과 오현규의 연속골로 역전했으나 종료 직전 산티아고 히메네스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승리를 놓쳤다. 이 ‘전초전’이 남긴 팽팽함이 내년 6월 조별리그에서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멕시코는 개최국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향해 이례적 수준의 경계를 드러냈다. 그만큼 한국의 전력 상승이 객관적 현실이 됐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건 홍명보호가 그 인정을 실전에서 결과로 바꾸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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