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로 썼던 박항서 감독이 이번에는 태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누구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던 시장에 정면으로 뛰어든다. 아세안 축구 전체를 연결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도 함께 품었다.
박항서 감독 소속사 디제이매니지먼트는 25일 “현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월드컵 단장으로 활동 중인 박항서 감독이 태국 2부리그 칸차나부리 파워FC 공식 감독으로 부임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박 감독은 현재 맡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 월드컵 단장 역할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칸차나부리FC와는 7월 월드컵 일정 종료 이후 합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박항서 감독은 이미 아세안 축구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며 2018 AFF 챔피언십 우승,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아시안컵 8강, SEA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여기에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의 FIFA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이라는 새 역사까지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성과는 분명했다. 상주 상무 시절 K리그2 우승과 승격을 이끌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이번 태국행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시장 자체의 특수성 때문이다. 태국은 그동안 한국 지도자들이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던 무대다. 특히 일본 무대를 거치지 않은 순수 한국식 축구 철학을 앞세운 지도자가 태국 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펼치는 건 사실상 처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 감독 역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시간의 흐름이 도전의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걸 삶으로 직접 증명하겠다”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결정에는 오래된 약속도 담겨 있다. 박 감독은 지난 2023년 베트남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한국과 베트남에서는 더 이상 감독직을 맡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한 바 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리와 유산을 후배 지도자들에게 넘기겠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현재 베트남 대표팀은 김상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박 감독은 자신이 성공했던 베트남이 아닌 아직 개척되지 않은 태국 무대를 선택하며 당시 약속을 행동으로 지켜냈다.
칸차나부리FC 역시 단순한 감독 선임 이상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구단은 2024-2025시즌 2부리그 승격에 성공했지만 2025-2026시즌 다시 강등을 경험했다. 그러나 장기 프로젝트 자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태국 내에서도 TOP5 수준 투자 규모를 갖춘 구단으로 평가받는 칸차나부리FC는 박 감독 부임과 함께 1년 내 재승격, 향후 5년 내 태국 최상위권 진입, 부리람 유나이티드와 경쟁 가능한 전력 구축,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까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워놓은 상태다.
이미 팀 정비도 상당 부분 진행됐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출신 이정수 코치가 감독 대행 역할을 맡아 선수단의 70% 이상 구성을 마쳤고 박 감독 합류 전까지 안정적인 체제 전환 작업을 이어왔다.
박 감독은 부임 이후 한국 축구의 선진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식단 및 영양 관리, 체력 강화 프로그램, 비디오 분석, 데이터 기반 운영 시스템 등을 태국 축구 환경에 접목한다는 구상이다.
또 이번 태국행은 단순한 지도자 도전으로 끝나지 않는다. 박 감독은 베트남과의 인연 역시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칸차나부리FC를 중심으로 베트남 전지훈련, 유소년 교류, 유망주 해외 진출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며 아세안 축구 전체 성장에 힘을 보탠다는 계획이다.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이 PSV에서 박지성과 이영표의 유럽 진출을 도왔던 것처럼 박 감독 역시 아세안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 디딤돌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박 감독은 “베트남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제안을 받았지만 태국행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며 “아직 아무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칸차나부리FC가 보여준 장기 비전과 진정성이 내 도전 정신을 다시 깨웠다”며 “한국 축구를 대표한다는 책임감 속에 태국과 베트남, 나아가 아세안 축구를 연결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세안 축구를 뒤흔들었던 박항서 감독은 이제 태국에서 또 다른 역사를 준비하고 있다. / 10bird@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