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라틴음악에 몸을 맡기고 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능력만 된다면, 리듬만 탈수 있는 영혼의 자유로움이 허락된다면 경직된 현실 속의 부자연스러움을 벗어내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난 4월28일 성남 실내 체육관에서 전국장애인댄스스포츠 국가대표상비군 1차 선발전이 열렸다. 대표선발전이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라 더더욱 관심을 갖게 했다. 장애인 댄스스포츠, ‘이것이 스포츠인가’에 대한 논란은 일단 말자. 당당히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올해부터 채택된 당당한 스포츠의 한 종목이다. 댄스스포츠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이 마당에 하물며 그 앞에 붙는 장애인이라는 수식어는 내가 현장에서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예상도 섣불리할 수 없었다. 개막식행사 입장식을 위해 줄맞춰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은 장애인 비장애인이 뒤섞여 있었다. 워낙 휠체어부문의 참가자가 적기 때문에 비장애인커플도 참가하는 프로 아마 댄스스포츠 선수권대회도 함께 열었기 때문이었다. 경기장은 한마디로 화려한 치장의 도가니였다. 10살도 채 안되는 어린 선수들의 대범한 화장술과 꾸민 것은 어느 연극단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현란했다. 댄스스포츠란 것이 기술만으로 점수를 주는 여타 종목과는 다르게 음악과 의상, 선수들의 표정 연기가 기술과 어우러져야 하는만큼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특징을 잘 살려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런 흔적은 여자선수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였다. 남자선수들도 대부분 포마드로 머리를 비단결로 정갈하게 빗어넘겼고 가슴이 보일 듯 말듯한 펄렁이는 얇은 셔츠, 그리고 몸에 딱 붙는 바지로 남성다움과 몸매의 선을 강조하는 의상으로 휘감았다. 또 눈썹을 정리했거나 피부화장도 뽀얗게 한 선수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치장으로 가득찼다. 개회식을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을 지켜보며 많은 상념이 스쳐갔다. 몸치장 만큼은 차별이 없었다. 커플의 한 명이 휠체어에 앉아있다는 점, 다른 스탠드커플과 키 높이가 다르다는 것 이외에는 그 누구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선수의 의상과 화장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인인데’ 라는 표현을 쓸 이유도 없고 또 한번 뒤돌아보는 시선도 없었다. 당당히 선수로써 기본적인 것에 충실했던거다. 어쩜 선수들은 이 순간의 이 화려한 의상을 위해 출전하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도 잠깐 했다. ^^ 대부분의 편견은 늘 머리 속에서 돌발하지만 막상 그 게 아니구나 여기게 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버린다 개막식의 마지막엔 또 다른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 정정당당히 싸울 것임을 선서는 대표선수로 나선 건 휠체어 댄스스포츠의 지존 김용우 선수였다. 장애인 댄스스포츠 연맹의 이사이기도 한 김용우 선수는 국내 최고의 선수답게 침착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하지만 힘있는 선서를 낭독했다. 여기까지 그 어느 대회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내 머리를 강타하는 그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대표 김 용 우.” 마지막 구절이 읽혀지자 마자 흘러나온 경쾌한 리듬도 솔직히 어색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음악에 맞춰 개회식에 참석한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환호성과 살짝 흥분을 발산하는 외마디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는 짧은 비명을 질렀고 나오는 음악에 박자를 맞추고 손뼉을 치며, 멀끔히 바라보는 있던 관객들이 오히려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원래 음악을 바탕으로 몸으로 연기를 하는 춤꾼들은 이렇게도 표현에 능숙하고 자유로웠던가 싶은 게 경직된 모습에 절어있는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됐다 . 주변을 둘러보니 결코 비장애인들만이 아니었다. 휠체어를 앞뒤로 흔들며 환호를 하는 선수, 휠체어를 한 바퀴 돌리며 기술을 구사하는 듯한 행동 등등 적어도 이 대회가 열리는 체육관 안에서 만큼은 그 어떤 편견도 차별도 없이 누구나가 즐거워 보였다. 지금까지 대회 개회를 알리는 자리에서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대회의 성적을 떠나 순위를 떠나 즐길수 있는 종목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 외국의 대회장에서나 볼수 있는 이런 행동을 우리나라의 한 체육관에서 우리선수들에게서 느낄 수 있다는 게 뿌듯함마저 들게 했다.(외국선수들의 경기외적인 면에서 여유있는 모습이 늘 부러웠다. 경직돼 있지 않은 즐기려는 모습 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 지, 감정을 표출하는 간단한 포즈 하나가 이런 표현의 의지를 끌어오게 하는 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음 역시 예술적 재능을 갖춘 이들의 대회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갑자기 오늘 취재는 뭔가 색다른 것이 나올 거라는 직감을 받게 됬다. 개막식 이후 장애인 선수들의 경기가 먼저 펼쳐졌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이동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음악의 빠르기와 박자에 맞춰 움직여 연기를 해야 하는 댄스스포츠가 사실 체질에 맞지 않으면 제아무리 기술이 좋거나 힘이 좋아도 할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명과 스피커의 찢어지는 듯한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긴 채 상대선수와 호흡을 맞추며 춤을 춘다는 것이 굉장히 민망한 일 그 자체인데, 하물며 성치 않은 몸을 관중들에게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용기 백배의 선수들은 나보다는 몇 배나 더 크고 튼튼한 심장을 갖고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해봤다. “이번대회 처음 참가하세요?” 그럴 거라는 직감이 들만큼 아직은 풋풋한 새내기인 듯한 한 중년의 남자 선수에게 말을 걸었다. “네, 하다보니까 욕심이 생겨 나오게 됐는데 막상 무대에 서려니 떨리네요, 하하.” 라틴종목 쌈바 한 종목에 출전한 박기용 송시정 커플은 인천을 대표해 나섰다고 했다. 박기용 씨는 “이 댄스스포츠를 시작한지 몇 달 안됐지만 자신처럼 휠체어 생활을 하는 다른 분들도 좀더 많이 관심을 갖는다면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며 재밌다는 말을 연발했다. 모두 스물두 쌍이 참가한 이번 장애인 댄스스포츠 국가대표선발전은 사실 선수를 뽑는 것엔 큰 의미가 없다. 선발전에 뽑힐 선수는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앞서 선수 대표로 나왔던 김용우 선수와 스탠딩 파트너 김지영 커플!! 3년째 아시아 최정상을 지키고 있는 국내 최고의 휠체어 댄스스포츠의 지존이다.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 6위를 기록중이다. 한국국가대표로 별 이변이 없는 한 올해도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할 것이다. 김용우 선수의 파트너 김지영 씨는 국제대회에 늘 외롭게 단 둘이 출전하는 것에 익숙해 있긴 하지만 어서 빨리 우리나라의 다른 커플들도 외국대회에 함께 출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회 성적면으로는 세계적이지만 참가선수의 수에서는 기가 눌려 참가할 때마다 외롭다”면서 “한국선수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고 싶다”며 웃었다. 대한장애인 댄스스포츠 연맹의 허영국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이 집안에서 좀처럼 집밖으로 나서지 않는 현실 속에서 댄스스포츠는 장애인들의 취미생활과 여가에 더없이 좋은 종목이며 재활에도 큰도움을 준다고 했다. 이번 대회는 앞으로 엘리트선수로 육성할만한 선수들의 수준을 점검하고 발전 가능성을 찾는데 목적을 두었다며 전체적으로 기량이 발전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부터 전국체전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만큼 각 시도별로 활성화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는 늘 보잘 것 없다고 판단하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지나친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청각이 살아있다는 것, 보고 느낄 수 있는 눈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뇌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미량의 호르몬까지도. 대회는 대회 이상의 의미였다. 서로의 무대를 바라봐 주고 인정해주고 당당히 꾸미고 나서는 용기를 가르쳐준다. 어디서 어떻게 사려졌는지 모를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기도 하고 욕심과 목표를 향해 전진하게 만드는 의욕도 꿈틀거리게 한다. 진정한 사회통합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이 장애인 댄스스포츠는 그 어느 종목에서 볼수 없는 신세계다. 꿈의 무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는 종목이다. 이렇게 인간적이고 평등한 스포츠를 본적이 있는가! 홍희정 KBS 스포츠전문 리포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