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정근우의 극적 반전,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
OSEN 기자
발행 2007.05.24 09: 47

흔히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이야기 한다. 야구와 사람의 인생이 어디가 닮아서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 한 선수가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플레이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여준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20일, 정근우(SK)는 채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지옥과 천국을 넘나들었는데….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현대전서 팀 승리를 목전에 둔 9회초 2사 후, 유격수 정근우는 상대팀의 마지막 타자였을 브룸바의 평범한 땅볼타구를 뒤로 빠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실책이 빌미가 되어 바로 다음 타자인 송지만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해 경기는 동점이 되고 말았다. 이날 선발투수였던 레이번의 7승까지 함께 날아가는 순간(기록상 레이번이 패전투수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 연승기록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이었다. 정근우의 심정이 어땠을 지는 자명한 일. 결국 2-2 동점으로 접어든 연장 10회 말, 사태의 주범으로 몰린 정근우가 2사 후 타석에 들어섰다. 모두들 연장 11회를 생각하고 있었을 즈음, 정근우는 상대 선발 캘러웨이를 상대로 전혀 예상치 못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며 팀 승리의 수훈갑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만일 경기를 졌더라면 깊은 침묵에 빠졌을 그가 당당하게 히어로의 자격으로 인터뷰까지 하게 되는 극적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미운오리 새끼가 순식간에 백조로 변했다고나 할까. 이날 정근우가 경기 중 저지른 실수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서 팬들은 경기를 이기고 졌다는 사실보다 여운이 남는 그 무언가를 마음에 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인생과 많이 닮았다는 것도. 만일 야구가 단순한 점수내기 게임이라고 한다면 야구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없다. 점수를 뽑아내고 경기를 승리로 만들어내기까지 그 이면에는 선수들의 피와 땀이 섞인 노력, 때론 좌절의 아픔과 고통이 담겨있기에 보는 사람들에게 행위 이상의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야구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의 닮은 꼴을 찾자면 참으로 많다. 한번 실패하더라도 또다시 기회가 온다는 점. 때론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지만 그 슬럼프를 빠져 나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점.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그 실수를 거울삼아 무언가를 배워나가야 한다는 점. 현재에 집중하고 다가올 일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겐 기회가 오지 않으며, 설령 기회가 온다 해도 준비가 안되있는 자는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점. 냉혹한 승부의 세계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 등등…. 어제와 오늘, 같은 장소에서 늘 같은 형식의 야구경기가 벌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야구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응해 나가는 경험의 연속이다. 프로원년부터 2006시즌까지 치른 정규리그 경기수(1군)가 1만1372경기나 되지만, 내용이 일치하는 경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비 A 도르프만, 칼 쿠엘 공저)이라는 저서에서는 ‘야구는 철저한 심리전이며 자기와의 싸움, 그리고 인간적인 성취를 담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타이 콥은 ‘선수의 팔다리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짐 울포드 또한 ‘야구의 90%는 정신적인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인생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하지 않던가. 야구와 인생 모두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이런 관점에서 정근우는 적어도 끝내기 홈런을 친 그 날 만큼은 심리전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으며, 성취까지 함께 이뤄냈다고 하겠다. 그런데 정근우가 보여준 반전에 대한 기억은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지난 해(2006) 4월 26일, 3-2로 앞서 있던 경기(광주 KIA전, 7회 말 2사 만루)에서 자신의 플라이타구(좌익수) 포구 실책으로 인해 경기가 허망하게 뒤집히자(3-4), 하늘이 무너지는 듯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려 버렸던 정근우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다음날 이후 그는 한동안 대주자로만 기용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시즌 초반 덮쳐온 시련을 잘 극복한 끝에 2006 골든글러브 수상(2루수 부문)과 함께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이라는 인생 최고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이외에도 한국프로야구사에 있어 재기(再起)의 대명사인 불사조 박철순, 무려 7년간의 기나긴 재활 끝에 마운드에 서고 있는 이대진, 아무데서도 지명 받지 못했지만 좌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발 첫 승이라는 열매를 딸 수 있었던 조성민, 연습생으로 출발해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장종훈과 박경완. 그들이 걸어온 고단했던 야구인생의 길은 지금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 커다란 용기를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경기가 거의 끝나갈 즈음이면 들려오던 어느 해설위원의 짧지만 힘이 담겨있던 멘트 하나가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야구는 몰라요!”. 그렇다. 인생도 모른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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