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유원상은 데뷔 첫 승을 왜 몰랐을까
OSEN 기자
발행 2007.09.19 16: 21

유원상(21)은 왜 자기가 승리투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컨대 자신이 마운드에서 물러난 시점이 경기 초반에 해당하는 3회였다는 점이 승리투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고, 입단 동기지만 대졸신인(고려대)으로 자신보다 3살 위였던 선배 김경선(24)에 대한 후배로서의 무욕(無慾)도 마음 한 켠에 있었던 듯 싶다. 더욱이 김경선 역시 아직 프로에 들어와 1패만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던 터. 이미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김경선이 승리투수인줄 알고 축하인사까지 건넨 마당에 느닷없이(?) 승리투수기록을 다시 선배에게서 본의 아니게 빼앗아(?) 오게 만든 기록원의 결정은 유원상에게는 가혹한(?) 결정이었지만, 구원승리투수를 가름하는 관련 규칙에 의하자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김경선에게 승리투수가 돌아가는 줄 알고 있던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게시판에도 유원상의 구원승에 대해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질문이 여러 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서, 따로 답하기 보다는 이 기회를 통해 구원승에 대해 좀더 심도있는 내용을 다루어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9월 13일에 있었던 삼성과 한화의 대구경기로 돌아가보자. 0-2로 뒤지던 1회말 2사 1루에서 한화 선발 세드릭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얼떨결에 급히 등판한 유원상. 운 좋게도 한화가 돌아선 2회초에 3점을 내면서 3-2로 역전에 성공. 승리투수 결정에 있어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리드시점’이라는 항목을 그가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유원상은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3회말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마정길에 이어 한화의 4번째 투수로서 4회말 1사 2루에서 등판한 김경선 역시 리드상태를 잘 지켜내며 7-3으로 점수차를 벌린 뒤인 6회말, 마운드를 후임투수에게 넘겼다. 경기는 한화의 7-4승리로 끝났고, 남은 것은 이날의 승리투수를 과연 누구에게 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구원승리투수를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는 앞서 언급했듯이 바로 리드시점에 있다. 어느 경기에서건 리드시점이 없다면 팀은 이길 수 없다. 무실점 완투를 하고서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리드시점이 없기 때문이다. 구원승 결정에서도 리드시점을 갖고 있는 투수(이후 동점이나 역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경기의 초, 중반을 따지지 않고 일단 승리투수로 기록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리드시점을 갖고 있는 투수라 하더라도 일시적이거나, 비효과적인 투구를 했다고 기록원이 판단했을 경우에 승리투수 기록을 다른 투수에게 넘길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시적’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아웃카운트의 숫자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리드시점을 갖고 있는 투수가 경기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약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말한다. ‘비효과적’이라는 말의 뜻은 리드시점을 갖고는 있지만, 난조를 보여 팀을 다시 역전의 위기에 봉착하게 만드는 등, 투구내용이 상당히 좋지 못했을 경우다. (한 가지 경우가 더 있긴 하지만, 내용이 장황스러워 적당한 예를 찾게 되면 그 때가서 다시 거론하기로 한다) 다음은 리드시점을 획득한 선발투수가 승리투수를 얻기 위한 최소 필요조건인 5회를 넘기지 못하고 물러난 경우의 구원승 결정 원칙이다. 이 때는 구원 등판한 모든 투수가 리드시점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가 된다. 이런 경우에는 ‘누가 더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는가?’ 라는 잣대를 가지고 승리투수를 결정한다. 우선 투구이닝이 상대적으로 많은 투수가 유리하다. 아무도 리드시점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출발선은 같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투구이닝이 상대적으로 많은 투수가 없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한다면 투구내용을 점검한다. 2이닝 무실점과 2이닝 4실점은 다르다. 투구내용도 비슷하다고 한다면 이 때는 먼저 나온 구원투수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리드시점을 가진 선발이 3이닝을 던지고, 이후 나온 투수 3명(A, B, C)이 2이닝씩 무실점으로 돌아가며 던졌다고 치자. 이런 경우, 투구이닝 차이도 없고, 투구내용도 비슷하지만 우선권은 3명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투수 A에게 있다. 유원상과 김경선의 경우, 리드시점을 선발 세드릭에게 주고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구원승을 결정해보자. 제일 비중이 큰 리드시점은 아무에게도 없다. 투구회수는 유원상이 2⅓이닝(1실점), 김경선이 2⅔이닝(무실점)이다. 투구회수의 차가 거의 없다. 다음은 투구내용을 따져본다. 역시 1실점과 0실점으로 둘 다 내용이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우선권은 먼저 나온 유원상에게 있다. 이젠 당일 경기를 놓고 유원상과 김경선을 대입해보자. 우선 리드시점이 유원상에게 있다. 이 한가지만 가지고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투구회수에 커다란 차이가 없다. 투구내용도 엇비슷하다. 먼저 등판한 투수는 유원상이다. 어느 것 하나도 김경선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리드시점이 없는 김경선은 죽었다 깨어나도 승리투수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있다. 유원상이 1이닝 남짓 던지고 물러나고 김경선이 3~4이닝 정도 던졌다고 가정한다면, 아무리 유원상이 리드시점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구원승은 김경선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더 크다. 경기를 이기는데 김경선의 기여도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유원상의 1이닝은 경기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일시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이 구원승 결정의 대략적인 원칙들이다. 하지만 말로써 설명한 이 모든 원칙들은 그저 원칙일 뿐이다.원칙 선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애매한 상황이라면, 우선 되는 것은 바로 경기장 안에서의 직접적인 느낌이다. 직접 경기를 보고 느낀 담당 기록원의 현장감이 구원승 결정의 키가 된다. 단순한 기록지 상의 투구이닝이나 실점수 등은 의미가 없다. 기록지상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승부처의 맥을 잘 짚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기의 흐름에 동승하는 기록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이날 유원상은 데뷔 첫 승을, 김경선은 꿩대신 닭이라고 첫 승 대신 데뷔 첫 홀드를 따냈다. 둘 다 나이로 볼 때, 지금보다는 장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첫 승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 오늘의 일화가 훗날 그들의 야구인생에 있어 비상(飛上)을 위한 첫 날개 짓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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