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이 걸렸다. 1984년 OB 베어스(~1988)에서 처음 감독자리에 오른 이후 태평양(1989~90), 삼성(1991~92), 쌍방울(1996~99) 그리고 LG(2001~2002)를 거치는 동안 단 한번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 못했던 김성근(65) 감독.
그 한을 푸는데 햇수로는 24년, 감독재직 기간만으로 따지면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바쳐야만 했다.
김성근 감독은 망가진 팀을 추스려 단기간에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성적을 내는 데는 일가견을 가진 감독으로 인정받으면서도, 그 동안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끈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진정한 거장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애꿎게도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 투수들을 물량공세로 투입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감독으로 있는 동안 주력투수를 혹사시킨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고, 선수에게 맡기기보다 벤치의 판단과 작전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지나친 관리야구를 한다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어찌 보면 지금은 일반명사화 되다시피 한 ‘스몰 볼’의 원조나 대부(代父)격이었다고도 말 할 수 있겠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지만,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이후 맡고 있던 팀들이 한결같이 향후 몇 년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했다는 사실은 김성근 감독을 난감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이후인 1989년부터 4년동안 OB는 5→7→8→5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태평양은 1991년부터 5→6→8위, 삼성은 1993년부터 2→5→5→6위, 쌍방울을 인수한 SK는 2000년부터 8→7→6위, 그리고 2002년 재임기간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진출을 성사시켰던 LG는 2003년부터 6→6→6→8위를 기록하는 등, 공교롭게도 김성근 감독이 머물렀던 5개팀 모두가 긴 세월 동안 어둠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던 것이다.
2002 한국시리즈에서 LG가 삼성에 2승4패로 분루를 삼키던 해, 기대이상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관리야구가 LG가 추구해오던 자율야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격 경질된 이후, 야인 생활을 접고 2005년 일본프로야구로 건너가 롯데 마린스의 이승엽 전담코치로서 일하는 동안 김성근 감독의 프로야구관은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바로 ‘이기는 야구’에서 ‘재미있는 야구’로의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러던 중 새로이 접목된 야구관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초로의 나이인 60대 중반에 다시 한번 찾아 들었고, 그를 부른 팀은 ‘스포테인먼트’(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를 기치로 내건 SK 와이번스였다.
SK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생각의 변화는 코치 선임에서부터 그대로 나타났다.
1997년 삼성 은퇴 후 자비로 미국유학을 떠났던 이만수 코치와 김성근 감독의 조합이 언론에 발표되자 많은 야구인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유분방한 야구를 표방하는 이만수 코치의 미국식 야구와 아무래도 일본식 야구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어떻게 서로 녹아들 수 있을 지에 대한 염려였는데 결국 기우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서로간의 약점을 보완해 준 최상의 조합으로 귀결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결과가 좋으니까 과정도 좋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야구는 하나의 문화다.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본능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은 한 차원 높은 정신세계를 꿈꾼다. 거기에서 문화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문화는 그것을 감상하고 누리려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간과 돈의 지불을 요구한다. 그 분야에 관심 없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낭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귀한 시간을 할애하고, 주머니를 털어 값을 치르면서 문화의 여러 장르에 다가서는 이유는 뭘까?
문화가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엔 감동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영화나 뮤지컬 또는 미술분야에서 길이 남을 감동적인 대작을 만들어 낸 사람들을 우리는 ‘거장(巨匠)’이라 부른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2007 한국시리즈 벽두에 ‘홈 2연패’라는 충격적이고도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김성근 감독은 양 팀 에이스인 리오스(두산) VS 레이번(SK)의 맞대결을 고집하지 않고 4차전에서 김광현이라는 의외의 카드를 빼들어 열세로 보이던 시리즈의 흐름을 극적으로 대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야구는 물론 선수가 한다. 하지만 그 선수들을 다듬고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작품인 ‘우승’을 만들기 위해 감독은 늘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잘잘못에 따라 승장이 되기도 패장이 되기도 한다.
2007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김성근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 동안 국내프로야구에서 한국시리즈 1, 2차전을 내주고도 역전우승을 차지한 전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의 선택과 능력에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비례해 ‘V1’을 외치며 우승팀 SK를 목 터져라 응원했던 팬들의 감동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성근 감독의 LG를 누르고 우승한 삼성의 김응룡 감독은 당시 이런 말을 남겼다.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라고. 더 이상의 극찬이 필요치 않는 말이었다.
이미 야구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과 수와 이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김성근 감독의 유일한 결함(?)이었던 ‘KS우승’을 장착한 지금, 이젠 그를 거장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문학야구장 외야석 담장에 걸려있던 플래카드 한 장이 경기 내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마침내 신은 그에게 첫 번째 반지를 허락했다’
기쁨에 겨운 SK 선수들의 뜨거운 포옹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 김성근 감독에게 첫 번째 반지를 허락한 것이 아니라, 김성근 감독이 그 첫 번째 반지를 찾아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