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생활이 시작된 지 벌써 8개월. 혼자 여러 일을 처리하면서 기본도 안 되어 있던 영어까지 완벽하게 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하지만 영어 공부를 포함, 눈 앞에 있는 일에만 대처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신없이 보낸 것 같아 나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생활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면서 정리가 필요했다.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처리하면서 내가 축구계에 무엇으로 공헌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보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현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기간은 이제 4개월이다. 지체하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영국 축구를 가까이서 느끼려고 이곳까지 날아온 나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선택한 풀햄 FC. LG 지사의 도움으로 머물게 된 이곳에서 행복한 일주일을 보낸 경험의 후반전을 이야기 하려 한다. ▲ 2007년 8월 24일 풀햄에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이미 반이 넘어간 시점. 오늘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마케팅 구조를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단계적으로 나뉜 이들의 수익 구조는 첫째로 시즌 티켓과 일일 티켓 판매가 최우선이었다. 수익 구조에서 가장 비중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자국민뿐 아니라 소수 이민족에게도 팬이라면 적극적으로 다가간다는 풀햄은 경기 당일 매니저가 꼼꼼히 경기장을 둘러보고 표가 얼마나 팔렸나 직접 확인한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무가지 같은 곳에 광고를 내기도 한다는 이들은 온라인 회원에게 우편이나 이메일을 통해 클럽소식을 늘상 전하는 일도 소홀하지 않는다. 한번 팬을 영원한 팬으로 만들기 위해, 한 번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지속적으로 경기장에 드나들도록 끊임없이 방법을 연구한다고 했다. 시즌 티켓이 1순위라면 멤버십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회원은 티켓 발매에서 2순위가 된다. 빅게임이 있을 때 티켓 구매 우선권을 차등해서 주는데 그러다보니 멤버십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해외에서 가입하는 팬도 있다고 한다. 구단과 관련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매거진도 멤버십카드 소지자에게 배달된다. 세 번째는 경기장카드다. 경기장에 들어온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이 카드는 3순위에 해당한다. 회원에 대한 등급의 차이는 상위 등급으로 가고픈 팬들의 심리를 이용, 더 많은 수익을 낳을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휴대전화 업체들이 핸드폰 사용 요금에 따라 고객들에게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카드사들도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축구를 더 많이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등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부여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전략이 뭐가 있겠는가. 풀햄이 말하는 수익 구조에서 두 번째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은 기념품 판매다. 팀 관련 기념품을 판매하는 이곳은 올 시즌부터 공식스폰서인 LG의 평이 좋아 판매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특히나 흰 셔츠에 새겨진 LG 로고가 깨끗한 바탕색과 잘 어우러져 인기가 있다고 전했다. 세 번째는 경기장 스카이박스 티켓 판매다. 일등급, 이등급, 삼등급으로 나누어져 각 등급에 따라 가격과 음식, 서비스 내용이 다른 풀햄의 스카이박스는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리버풀, 아스날 등과 맞붙는 경기는 예약이 꽉 찬다고 한다. 관중이 가득 들어선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행운아다. 또한 풀햄 측은 넘쳐나는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축구장 주변 환경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풀햄의 구장은 템즈 강변을 끼고 있는 관계로 경기 전 강에 유람선을 띄울 수 있으며 풀햄은 이러한 이벤트를 적극 활용해 구단 수익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반면 경기가 없는 날은 경기장에서 각종 결혼식과 생일파티, 이벤트 등을 유치, 수익을 창출한다고 전했다. 마냥 그들의 시설들을 부러워 하면서도 인천 유나이티드도 전용 경기장을 건립한다면 이러한 수익구조가 가능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국은 경기장이 해당 도시 시설관리공단의 소속으로 축구단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장을 활용한 부분에 대한 수익은 결국 구단 것이 아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둘러본 곳은 비디오 분석실이다. 들어서자마자 우선 큰 규모에 압도 당한 이곳은 2명의 전담 분석자가 고용된 분석실로 커다란 컴퓨터들이 끊임없이 작동하면서 경기에 대한 분석 자료를 쏟아내고 있었다. 정면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감독이 전체 분석 내용을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선수 개개인도 피드백이 가능하다. 이 놀라운 시설물은 경기 분석기라고 불리는데 약 1억 6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현재 EPL의 전 구단과 2부리그 상당수 클럽들이 갖추고 있다고 하며 아시아에서는 돈 많은 중동의 몇 나라가 이러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클럽들은 경기 분석기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아직 이러한 기계에 대한 인식이 덜 된 상황이다. 분석기를 언젠가는 한국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특히 대한축구협회가 FC 서울과 협의해 상암 구장에 갖추어 놓고 국가대표 경기나 중요 경기 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풀햄도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경기 당일 전반전이 끝난 뒤 분석 자료가 감독들에게 넘어간다. 이 설비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정밀하게 분석하기 때문에 감독의 작전 구상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선수들의 경기 후 피드백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수비 라인 간격이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센터백하고 사이드백하고 간격이 얼마나 벌어지는지, 선수들이 거리상 얼마나 뛰었는지 등을 분석하는 자료다. 사실 축구는 데이터가 아니므로 영국 축구계도 이러한 분석에 대해 경계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이 일일이 체크할 수 없는 부분을 기계가 분석해주니 좋은 기계임은 분명하다. 한편 이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학생 1명도 그곳에 있었다. 한국의 부름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 2007년 8월 25일 상쾌한 아침을 맞았지만 풀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좀 더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오전 11시부터 각 연령대의 선수들은 이미 열심히 훈련을 받으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의 역할을 빈 틈 없이 수행해내고 있는 모습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아침. 다섯 면의 천연잔디구장과 9세이하, 지역 커뮤니티 소년들이 사용하는 인조구장이 하나, 클럽하우스 뒤에 1군 선수들이 훈련하고 2군 경기를 할 수 있는 스탠드가 설치된 천연구장 1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이 넓은 그라운드에서 동일 시각 각 그룹은 각자 할 일을 수행하고 있으며 코칭스태프들이나 선수들은 어느 그룹 하나 집중력 분산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단지 축구를 위해 그라운드를 누비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웠고 한국에서도 몇 년 후에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광경이었다. 풀햄에는 각 연령별 그룹의 코칭스태프와 빈번하게 의견 교환을 하면서 선수들의 관리를 맡는 전담 매니저가 있었다. 인력이 충분하게 되면 이처럼 다양한 대화창구를 마련할 수 있어 팀 전력에 보탬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풀햄에서의 일주일은 오후에 13세 이하 선수들의 국제 친선경기 관전으로 마무리됐다. FA 규정에 따라 어린 선수들은 일주일에 딱 한 번 경기를 하고 그 날이 토요일이기 때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수요일은 무조건 공부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이들의 경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상황서 기본을 바탕으로 플레이하고 패스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이날도 엿보였다. 당장의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전에서도 기본이 몸에 충분히 배도록 평소에 훈련을 받았던 것. 연습 때는 원터치 컨트롤을 중요하게 여겨 훈련했음에도 경기서는 배운 것을 활용하지 않고 단지 승리를 위해 축구를 한다면 훈련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코칭스태프도 경기 내내 어린 선수들에게 기본을 바탕으로 하는 패스와 공 다루는 기술을 계속 주문하고 있었다. 또한 이 선수들은 절대 상대에게 상해를 가하는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특히 경기 후 서로의 노고와 심판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행동들은 교육적 차원에서 아주 바람직하다고 느껴진다. 축구는 또 다른 형태의 외교라 말할 수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같이 즐길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절실히 느꼈으니까. 비록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과 영국 사이에서 나는 좋은 외교를 펼치다 이곳을 떠났다. 그 이후 찰튼 유소년 팀에서 3개월 정도 다시 유소년 시스템을 배울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지만 풀햄에서의 일주일은 그와는 또다른 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누가 뭐라고 시키지도 않은 영국 유학생활, 내가 공항을 떠나면서 다짐했던 '한국축구를 위해'를 제대로 실천했던 행복한 풀햄에서의 일주일이었다. 정리=제원진 기자 7rhdwn@osen.co.kr
